다만 이번 사건은 포인트가 ‘합의’가 아닌 ‘진술번복’이다. 현재까지 이번 사건 피해자의 진술번복은 금전적인 대가 등이 오간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알려지고 있어 검찰 수사를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연예계가 이번 사건의 경찰 수사 등 초기 흐름에 신경 쓰는 까닭은 바로 앞으로 발생할 지도 모르는 연예인 성범죄 사건도 비슷한 흐름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입장에서 심학봉 의원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사건 자체는 중요한 관심사가 아닙니다. 대신 이번 사건이 어떤 형태로 진행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연예인 성범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그 연예인이 성범죄를 저질렀는지 자체는 대중도 그리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사건이 초기에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느냐가 중요하고 대중도 거기에만 집중합니다. 나중에 정작 판결이 나올 즈음 대중은 이미 다른 이슈에 관심을 집중할 뿐 사건 자체에는 관심도 없거든요. 이번 사건을 경찰 조사까지만 보면 과거 합의에 의한 고소 취하처럼 피해자의 진술 번복으로 무혐의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드러났어요.”
한 중견 연예기획사 대표의 말이다. 연예계에서 대표적인 리스크 매니저로 불리는 인물로 과거 소속 연예인이 대형 리스크에 휘말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해낸 뒤 다른 연예인이 리스크에 직면할 때 뒤에서 많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는 심 의원 사건이 추후 성범죄에 휘말리는 연예인들이 어떻게 해당 리스크를 극복할지에 대한 힌트를 보여주고 있다고 얘기한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성범죄의 친고죄 조항 폐지는 유일한 탈출구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아무리 힘겨운 과정을 거칠 지라도 피해자와 합의만 이뤄지면 고소를 취하해 사건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피해자 설득 및 합의가 가장 중요하고 언론 대응이 그 다음으로 중요했죠. 그렇지만 친고죄 조항이 폐지되면서 합의가 이뤄질지라도 사건 종결이 되지 않아 재판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가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강제로 성행위를 한 것이 아니며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진술이 나오면서 경찰은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한 뒤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과거에는 이미 종결된 사건이지만 친고죄가 폐지돼 검찰 송치가 이뤄졌죠. 그럼에도 피해자와 합의하면 진술 번복으로 무혐의가 될 수 있다는 길은 열린 셈입니다.”
심 의원 사건은 검찰이 수사에 돌입했다. 비록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지만 검찰은 베테랑 검사들을 투입해 철저한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또한 검찰 수사에선 성폭행이 있었는지와 함께 진술 번복 과정에 회유나 협박이 있었는지도 주요 수사 대상이 된다. 연예관계자들은 검찰에서도 수사 결과가 무혐의로 나와 기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향후 연예계에서 성범죄가 발생할지라도 비슷한 형태로 사건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얘기한다. 친고죄 조항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피해자와의 합의가 유일한 해결 방법일 수 있다는 것.
이처럼 행여 발생할지 모르는 연예인 성범죄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측면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연예관계자들도 있다. 성범죄 친고죄 폐지로 거액의 합의금을 노리고 연예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소위 ‘꽃뱀’이 부활의 기지개를 펼 수도 있다는 우려다. 한 연예기획사 임원의 얘기다.
“과거 합의에 의한 소 취하로 마무리된 연예인 성범죄 가운데는 억울한 연예인들도 많았습니다. 일단 성범죄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되면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는 급락합니다. 물론 재판까지 가서 무죄를 받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지만 경찰을 거쳐 검찰, 다시 재판까지 가는 동안 이미지는 재기가 힘들 만큼 추락합니다. 그러다 보니 최대한 빨리 합의로 무마했던 것입니다. 성범죄에 연루된 연예인 본인은 그런 합의를 반대하며 억울해 하지만 그런 일은 빨리 마무리할수록 이미지 추락도 최소화할 수 있고 활동 재개 시점도 빨리 잡을 수 있어 매니저들이 그런 방법을 설득하게 됩니다. 그만큼 그런 사건에서 연예인은 사실 무조건 피해자 입장입니다. 이제 친고죄 폐지로 합의를 해 소를 취하해도 수사가 계속되는 만큼 거액의 합의금을 받고 소를 취하해 주면 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꽃뱀은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상황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합의금을 받고 진술을 번복해주는 방식을 활용하려는 꽃뱀들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