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KBO리그 최초 4년 연속 홈런·타점왕을 노리고 있는 박병호는 지난 7월 타율 0.357에 10홈런 31타점을 기록해 월간 홈런·타점 1위에 올랐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 MLB와 KBO리그 ‘7월의 사나이’
“박병호의 메이저리그행은 강정호한테 달렸다!”
넥센 히어로즈 염경엽 감독이 올해 초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때부터 즐겨 쓰던 말이다. 분명 강정호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메시지였지만, 강정호는 그 부담을 껴안고 메이저리그 데뷔해인 올 시즌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중심 타자로 성장 중이다.
강정호의 상승세가 계속되면서 팬들의 눈은 박병호에게 쏠렸다. 이미 애리조나 전지훈련 때부터 박병호를 보기 위해 텍사스 레인저스, 시카고 컵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등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넥센 캠프를 찾았고, 시즌 중에는 메이저리그 구단 20여 곳의 스카우트가 넥센의 홈인 목동구장을 찾아 박병호를 지켜봤다.
강정호는 7월 동안 타율 0.379를 기록하며 NL 신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강정호와 박병호는 뜨거웠던 7월을 상으로 보상받았다. 강정호가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7월의 신인으로 뽑힌 다음날, 박병호도 KBO리그 7월의 MVP를 수상했다. 강정호는 메이저리그 첫 시즌 초반 약점으로 지적되던 변화구 대처 능력까지 향상되면서 7월 한 달 동안 타율 0.379(87타수 33안타) 홈런 3방에 9타점을 올리며 내셔널리그 신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이 기간 출루율은 0.443, 장타율은 0.621을 기록했다.
박병호는 KBO리그 출입기자단 투표에서 치열한 접전 끝에 유효표 28표 중 10표(35.4%)를 획득, 각각 9표(32.1%), 8표(28.6%)를 획득한 삼성 구자욱과 박석민을 간발의 차로 제치고 7월 MVP의 주인공이 됐다. 올 시즌 KBO리그 최초의 4년 연속 홈런-타점왕을 노리고 있는 박병호는 지난 7월 총 20경기에 출장해 84타수 30안타 타율 0.357에 10홈런 31타점을 기록하고 월간 홈런, 타점 1위에 올라 무서운 기세를 뽐내고 있다.
# 박병호가 만약 LG에 남았다면?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하진 않았지만, 박병호의 마음은 일본 대신 미국으로 무게추가 기울어진 것으로 보인다.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미국과 일본 모두 해외진출 대상으로 고려 중이라고 말했지만 이미 그의 눈은 메이저리그를 향해 있었다.
박병호도 처음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진 않았다고 한다. 넥센이 해외 전지훈련을 애리조나에서 치르면서, 텍사스 레인저스 선수들과 함께 훈련장을 나눠 쓰면서, 그리고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만나고 추신수와 새로운 인연을 맺으면서 그는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자신의 미래를 준비했다. 이전 박병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해외진출 준비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얘기를 전한 바 있다.
“내가 만약 넥센이 아닌 LG에 계속 머물렀다면 지금과 같은 기회가 찾아왔을까 싶다. LG 시절 2군에서 6년을 보냈는데, 그런 시간들을 겪으며 ‘감히’ 해외진출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넥센으로 트레이드됐던 게 내 야구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매일 경기에 나가면서 새로운 행복을 맛봤고, 그 행복을 오래 느끼고 싶어 내게 주어진 ‘자리’를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 했다. 2011년 7월 31일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이후 그 해 잔여 경기를 다 뛰었고, 이후 3년간 전 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햄스트링이 올라오면 붕대를 감고 지명타자라도 시켜달라고 우기면서까지 경기에 나갔다. 그런 몸부림들이 성적으로 이어졌고, 해외진출을 생각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 강정호 “병호 형은 준비된 메이저리거”
“내가 갑자기 메이저리그에 온 케이스라면 병호 형은 준비된 메이저리거다. 미국 진출을 위해 평소 영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외국인 선수들과 제일 많이 대화를 나눈 선수가 병호 형이었다.”
지난해 끝내기 홈런을 친 후 동료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는 박병호.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피츠버그에서 만난 강정호는 기자에게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자신보다 박병호가 메이저리그에서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병호가 외국인 선수들과 친분을 나눈 배경에는 영어 학습을 위한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곁들였다. 이에 대해 박병호는 외국인 선수들과의 대화는 ‘콩글리시’이고 자신은 이런 콩글리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프로 입단했을 때부터 외국인 선수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들의 언어가, 문화가 궁금했던 탓이다. 넥센으로 팀을 옮긴 이후 브랜든 나이트를 만났고, 지금은 밴 헤켄과 오랫동안 함께 지냈는데, 밴 헤켄과의 대화는 나이트가 통역을 해줬고, 지금은 밴 헤켄이 나와 콩글리시로 대화한다.”
강정호는 피츠버그 구단에 박병호에 대한 홍보를 자처하고 나섰다. 닐 헌팅턴 단장에게 ‘한국의 넥센 팀에 나보다 더 야구 잘하는 선수가 있는데, 그가 박병호다. 그를 꼭 피츠버그로 데려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전했다고 한다.
“피츠버그 스카우트 팀에서도 병호 형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더라. 병호 형이랑 피츠버그에서 같이 뛸 수 있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진심으로 형이 우리 팀에 오길 바란다. 병호 형이랑 자주 연락하는데 그때마다 묻는 게 그 투수의 공은 어땠느냐, 공이 얼마나 빨랐느냐 하는 내용들이다. 아침에 방송되는 메이저리그 중계를 놓치지 않고 시청할 만큼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많다.”
박병호는 메이저리그 경기를 볼 때마다 가장 관심을 둔 부분이 강속구 투수들을 상대하는 타자들의 타격폼이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시속 145㎞ 이상의 공을 때릴 때 중심이 뒤에 남아 있어 상체가 뒤집어지는 듯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150㎞ 이상의 공이 일반적인 메이저리그에서 자신이 생존하려면 강속구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내가 타격할 때 약간 뒤로 넘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방망이를 멀리 뻗으면서 뒤로 밀리는 힘을 이겨내려는 방법이었다. 145㎞까지는 잡을 수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른 공이 들어오면 밀리는 경향이 있다. 스윙 궤적을 짧게 하고, 포인트를 앞에 두고 치려고 신경 쓰고 있지만 쉽진 않다.”
지난해 상대 팀 에이스들에게 유독 고전했다고 판단한 박병호는 스프링캠프 동안 과감히 타격폼 수정에 나섰다. 주위에선 박병호의 타격폼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냈지만 그는 타격폼 변화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홈런 31개로 1위에 올라 있다. 일부 팬들은 박병호의 홈런에 대해 목동 구장을 홈으로 쓰기 때문이라고 그 가치를 폄하했다. 박병호로선 그런 일부 비판적인 시선이 신경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성적을 내며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 보낼 준비를 하는 염경엽 감독
박병호가 자신이 친 홈런타구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시선은 벌써 태평양 너머를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염 감독은 오래전부터 박병호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프링캠프 때부터 1루수 박병호를 3루수에 세우며 수비 연습을 시켰고, 시즌 중에도 박병호에게 3루 수비 연습을 강조했다. 이유는 메이저리그 팀들마다 붙박이 1루수가 존재하는 터라 도전하는 입장인 박병호가 좀 더 다양한 카드를 가지려면 1, 3루를 두루 맡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박병호 또한 염 감독의 의중을 읽고 긍정적인 태도로 3루 수비 연습을 소화했다.
염 감독은 박병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면 강정호 못지않은 좋은 플레이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야구에 대한 박병호의 감각, 태도, 욕심, 준비 과정이 치밀하고 철저한 터라 메이저리그 세계에서 강한 생존력을 선보일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높였다.
박병호는 공식적으로 발표하진 않았지만 강정호가 소속돼 있는 메이저리그 에이전트사 ‘옥타곤’과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타곤의 앨런 네로 에이전트가 넥센 이장석 대표와 두터운 친분이 있고, 이로 인해 강정호가 옥타곤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한 바 있다.
최근 피츠버그의 클린트 허들 감독은 강정호의 활약에 고무적인 반응을 나타내며 현지 기자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얘기 속에 박병호의 미래가 그려진다.
“정호 강이 한국에서 5번을 쳤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4번 3번을 친 선수는 도대체 누구야?”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