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35℃를 웃도는 폭염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무더위 휴식시간제’ 라는 제도를 통해 실외 노동자들의 휴식을 권고하고 있으며, 육군훈련소에서도 야외 교육 훈련을 취소하고 실내에서 정신 교육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런데, 축구 경기는 예외인가 보다.
인천의 한 경찰서 소속의 의경이 폭염 속에서 열린 체육대회에서 축구를 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숨진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추계중등연맹전의 경우 가장 뜨겁다는 오후 1시부터 3시 사이에 경기가 진행되기도 했다.
물론 프로 유스팀 대회인 K리그 U-18챔피언십 경기가 열리고 있는 포항에서는 저학년 경기까지 포함해서 전 경기가 야간 경기로 진행되는 특별히 예우 받는 선수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원 축구팀 선수들은 폭염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적인 열정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열정으로 버티기엔 탈수현상이 올 수 있는 높은 기온이고, 열사병으로 사망자가 나올 정도의 위험한 날씨이다.
현행 교육부와 축구협회 규정상 전국대회는 방학 중에만 열릴 수 있다.
따라서 가장 추운 동계에 춘계연맹전이, 가장 더운 하계에 추계연맹전이 열리는 등 실시 계절과 대회 명칭이 맞지 않는 웃기는 상황이 매년 계속되고 있다.
더위를 무릅쓰고 무리하게 대회를 치러야 하는 것이 일정상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폭염 시간대를 피하고 야간 경기를 대폭 확대해야 할 것이다.
각종대회 유치 및 전지훈련 등을 명목으로 막대한 국비를 들여 만들어 놓은 지방 소도시의 야간 조명탑은 도대체 언제 쓸려고 만들어 놓은 것인가?
사용하지 않을 것을 왜 설치했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폭염엔, 고품격 럭셔리 ‘야간 골프’ 라며, 필드 안에서 골프를 즐기는 사람은 10명도 채 안 되는 상황에서도 밤새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켜놓은 골프장들이 즐비하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야간에 공놀이를 하고, 돈 없고 힘없는 우리 아이들은 땡볕에서 공을 차야 하는 이 분통 터지는 현실에 대해 대한축구협회의 높으신 어르신들은 왜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는가?
성인 축구무대인 K리그, 내셔날리그, K3리그도 한 여름에는 폭염 속 사고와 경기력 향상 및 관중들을 고려해서 야간 경기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제 축구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유.청소년 선수들이 한낮 폭염 속에서 경기를 치르게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또한, 무리한 대회 일정도 문제다.
대진운이 안 좋은 팀은 하루 휴식도 없이 연속으로 경기를 치러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저학년 대회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잘하는 2학년 선수들은 하루에 저학년 경기에도 출전하고, 바로 고학년 경기에도 출전하는 등 혹사를 당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한 경기를 치른 이후 48시간 동안은 경기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선수들의 피로회복을 고려한 규정이다. 하지만 우리 학원축구대회의 현실은 FIFA의 규정도 철저하게 무시하는 대회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체육전문가들은 35℃의 고온에서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전력 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5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호흡을 조절하며 천천히 경기를 하더라도 체력 소모는 극심하며, 땀이 많이 흘리게 돼 수분의 탈수현상도 심각한 지경에 달해 쉽게 지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이에 따라 공격형 축구보다는 안정된 수비를 바탕으로 짧은 시간에 순발력 있는 공격과 체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롱패스에 의한 상대 문전 접근을 시도하는 팀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에는 수준 높은 기술 축구보다는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통해 체력과 정신력을 단련시킨 팀이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며,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 축구의 발전에도 좋지 못한 현상일 것이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전국대회 입상실적이 대학입시에 반영되는 상황이고, 학생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상황이라면 현실적으로 방학 중에 전국대회를 치룰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계방학 때 치러지는 대회는 야간경기를 대폭 확대해서 진행해야 할 것이며, 한여름에도 30℃를 밑도는 시원한 태백, 평창 등 강원도 고지대에서 개최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간 폭염 속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그라운드를 종횡누진 누비고 있는 어린 선수들의 열정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다음 번 대회부터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개최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김정훈(축구칼럼니스트, KS리서치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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