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순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회’의 총선 공천 룰이 드러나면 친노와 비노 간의 전면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진은 친노 진영의 수장 문재인 대표(왼쪽)과 비노계의 대표 주자 박지원 의원.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9월 중순이면 베일에 싸인 새정치연합 ‘김상곤 혁신위원회’의 총선 공천 룰이 드러난다. 그간 혁신위 내부에서 ‘호남 물갈이’,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출신) 하방론’ 등이 제기된 만큼, 친노계와 비노계의 전면전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완패로 끝난 지난 4·29 재·보궐선거에 버금가는 ‘미증유의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야권 분열의 잔혹사가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탈당 도미노의 둑은 터졌다. 지난 10일 새정치연합 전북 당원 100여명의 탈당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당시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정치연합이 정체성을 잃었다”며 “당원과 민심의 뜻에 따라 새로운 정치세력이 태동하길 기대한다”고 탈당을 전격 선언했다. 전북의 야권 성향이 광주·전남보다 약하지만, 엄연한 호남의 한 축이다. 이들의 탈당 사건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특히 전북 당원 탈당을 주도한 정학영 전 순창군수 예비후보는 천 의원과 연대설에 휩싸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친척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정 전 장관과 상의하지 않았다”면서도 정 전 장관의 합류를 희망했다. 전북 당원 집단 탈당에 ‘천정배·정동영’ 신당의 그림자가 보이는 셈이다.
비노계 내부에선 또 다른 증언이 흘러나왔다. 천 의원이 전북 당원 집단 탈당을 사전에 인지했다는 것이다. 시점은 탈당 2주 전인 7월 28일이다. 천 의원 측은 전북 당원 100여 명의 탈당 움직임을 인지하고 천 의원에게 관련 보고를 했다. 천 의원이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각에선 탈당그룹이 향후 천정배 신당의 조직을 뒷받침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들이 천정배 신당에 합류한다면, ‘천정배·정동영’ 연대설의 그림은 더욱 구체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천 의원 측은 “이들과 우리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친노계 관계자도 “(전북 탈당 100여 명은) 영향력 없는 인사들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했다.
하지만 야권그룹은 급박하게 움직였다. 특히 비노계 내부에선 4·29 재보선부터 현재까지는 이른바 ‘군불 때기’에 불과했다면, 9월은 ‘플랜B’를 구체화해야 하는 시점이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박지원 의원 등 광주·전남권 현역 의원 12명과 이종걸 원내대표, 문병호·최원식 의원 등은 지난 8일 호남권 회동을 가졌다. 광주·전남권과 수도권 비노계가 집결한 것이다. 이들은 ‘문재인 퇴진’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문재인 체제로 20대 총선을 치르긴 어렵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호남계 좌장격인 박지원 의원은 신당 참여에는 유보적 입장을 보이면서도 “크건 작건 신당 창당은 불가피하다”고 신당론을 불을 지폈다. 일각에선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 측근인 문병호 의원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중도 신당론이 전방위로 확산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느슨한 연대를 하던 호남그룹과 수도권그룹이 구체적인 연대전선을 꾀하자, ‘포스트 문재인 체제’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는 점이다. 핵심은 비상대책위원회, 선거대책위원회 등 조속한 과도기 체제로의 전환이다. 호남의 김동철 의원은 “당을 차기 대선 주자급 인사들을 전면에 내세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자”고 문 대표에게 제안했다. 이들은 지난달 24일 단독회동을 가졌다. 수도권의 핵심 비노인 김영환 의원도 이에 동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총선 공천룰 공개 이후 계파 갈등이 정점에 다다르면 친노계가 혁신위를 방패 삼아 비노계의 공세를 차단하려 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왼쪽)과 문재인 대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비노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김상곤 혁신위의 혁신 활동이 끝나는 대로, 비대위를 꾸리자는 것”이라며 “문 대표를 끌어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내 대권주자들과 합의체 체제로 당을 운영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친노 독식 체제를 끝내고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정세균 의원을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을 대선 판으로 불러내자는 얘기다. 비노계인 강창일 의원도 과도기 체제의 한 형태인 조기 선대위를 주장했다. 비노계의 ‘플랜 A’가 신당을 고리로 한 문재인 체제의 힘 빼기에 국한했다면, ‘플랜 B’는 김상곤 혁신위 활동 마감을 전후로 과도기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셈이다.
특히 비노계 내부에선 ‘광주·전남의 박주선-전북의 유성엽-부산 조경태’ 의원 등의 움직임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간 문 대표와 각을 세웠던 비노 3인방이 분당·신당론에 가세할 경우 야권발 정계개편의 소용돌이는 한층 격화될 수밖에 없다. 박 의원 측은 폭염정국 초반인 지난 7월 당원 100여 명을 이끌고 탈당한 정진우 전 사무부총장과 연락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박준영 전 전남지사도 이달 말께 ‘신민당’ 창당을 검토 중이라며 “당내 추가 탈당자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야흐로 야권 신당 빅뱅의 계절이다.
이 경우 야권발 정계개편의 큰 줄기는 △천정배 신당 및 천·정(천정배·정동영) 연대 △박주선 의원 등 복수의 비노계 신당 △박준영 전 지사가 추진하는 신민당 등으로 분화할 것으로 보인다. 비노 신당이 창당된다면,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정계복귀설도 한층 힘을 받을 전망이다. 일각에선 친노계가 ‘문재인’ 체제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형성한 데 반해, 비노계가 지나치게 분열됐다고 평가 절하한다. 새정치연합 중도파 한 관계자는 “실제 신당 및 분당 여부는 확언할 수는 없지만, 비노계가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더라도 결국에는 큰 틀에서 ‘헤쳐모여’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노 내부는 발끈했다. 비노계가 원하는 것은 결국 ‘6 대 4’ 등의 지분 나누기가 아니냐는 격한 반응도 쏟아졌다. 이들은 비상대책위를 주장하든 선대위를 주장하든 ‘문재인 체제’ 흔들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친노계 한 관계자는 “당 전권이 김상곤 혁신위에 있는 상황에서 비노계가 무슨 안을 낸다고 한들, 동력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은 간명했다. 김상곤 혁신위는 중진 등 다수의 물갈이를 주장하는 반면, 비노계는 문 대표 1인 체제의 종식을 원한다. 전자가 당 체질 개선에 방점을 찍었다면, 후자는 얼굴 바꾸기다. 완전히 다른 흐름이다. 이들은 섞일 수 없다. 한쪽은 당의 구심점으로, 다른 한쪽은 당의 원심력으로 작용한다. 캐스팅보트는 친노계 등이 쥐고 있다. 세력을 통한 구도 선점 및 인물 구도에서 친노계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친노계가 김상곤 혁신위를 방패삼아 비노계의 원심력을 꺾을 수 있다는 분석과 같은 맥락이다. 친노계의 ‘플랜 B’가 ‘문재인-김상곤’의 전략적 제휴라는 얘기다. 86그룹 한 관계자는 “친노계와 혁신위는 공동운명체다”라고 단언한 뒤 “10월 재보선도 불투명하고 연말정국만 끝나면, 바로 총선 체제다. 세몰이할 환경자체가 조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