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비리는 족벌 황제경영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롯데그룹 지분은 0.05%밖에 안 된다. 가족지분을 전부 합쳐도 2.4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개 계열사를 416개의 순환출자로 묶어 경영을 좌지우지했다.
둘째 비리는 골목상권 침해다. 롯데그룹 주요업종은 식품과 유통이다. 이는 우리나라 골목시장의 전통적인 업종으로 서민들의 생계수단이다. 롯데그룹은 관련업종의 계열사를 만들어 영세 상인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셋째 비리는 독과점 횡포다. 롯데그룹은 해당 업계에서 독과점위치를 차지하고 납품업체에 부당한 거래를 강요하여 부당이득을 취하는 반면 계열사들에게는 일감 몰아주기 특혜를 준다는 불만을 샀다.
넷째 비리는 정부 지원을 집중적으로 받는 것이다. 롯데그룹은 서울 소공동 국립도서관 자리에 최고급 호텔을 세웠다. 또 잠실, 영등포 등 지하철 요지에 백화점을 지어 막대한 이익을 벌고 있다. 무엇보다도 안보문제로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서울공항 활주로까지 바꾸어 국내 최고층 제2롯데월드 빌딩을 건축 중이다.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이 끝나면 이러한 불공정비리는 그대로 세습될 수 있다.
롯데그룹 사태는 재벌그룹들의 부당한 세습이 우리경제에 얼마나 큰 문제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벌그룹들은 우리 경제를 인질로 잡고 있다. 이미 정부의 통제가 어려울 정도다. 정치권력은 선거를 치르면 바뀐다. 그러나 재벌그룹은 무궁하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선거 때 제시한 공약에 따라 경제민주화를 요구하지만 재벌그룹들은 경제 불안과 경쟁력 하락을 내세워 거부한다. 심지어 투자를 못 한다고 반발까지 한다. 경제가 재벌그룹들의 불공정비리를 허용하는 덫에 걸린 셈이다.
이런 구조 하에 어떻게 창조경제를 실현하고 국제경쟁력을 기를 것인가? 어떻게 중소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 어떻게 국민소득을 증가시키고 가계부채를 갚을 것인가.
우리 경제는 롯데그룹 사태를 근본적인 재벌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현행법으로 부족하다. 재벌개혁을 위해 우선, 모든 계열사에 대한 지배구조를 공시하고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 한다. 동시에 주주권을 강화하고 이사선임과 이사회기능을 정상화하여 책임경영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더 나아가 세습경영체제를 해체하고 공개경쟁을 통한 경영승계를 공식화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계열사들을 독립적인 전문경영체제로 운영해야 한다.
국회는 머뭇거리면 안 된다. 공정거래법, 상법 등 관련법을 과감하게 개정하여 한시 바삐 경제를 재벌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이것은 쓰러지는 국민경제를 살리는 데 국회가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이필상 서울대 겸임교수, 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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