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관은 만약 대표팀에 선발된다면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할 것이라며 한 단계 성장하는 기회로 삼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올 시즌 부상 전까지 단 한 번도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았다. 더욱이 15승을 거두며 다승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시즌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의례적인 인사치레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진심으로 우리 팀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어떤 투수들보다 난 수비와 타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에 대한 마음을 표하고 싶은데 직접 하려니 낯간지럽고, 그래서 수훈 선수 인터뷰 때마다 열심히 그 마음을 전한다. 다른 선수들은 가식이라며 거부하지만 말이다(웃음).”
―지난 9일 LG전에서 7이닝 1실점 역투로 팀의 9-1 승리를 이끌었다. 그런데 등판 3일 전, 러닝 도중 왼쪽 발목을 다친 상태에서 등판을 강행했다. 더욱 놀라웠던 건 이날 올 시즌 최다 투구인 115구를 던졌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건가.
지난 9일 LG와의 잠실 라이벌전에서 유희관이 시즌 15승을 올리고 팬들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내딛는 발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6일 부상을 당했을 때는 상태를 보고 등판 여부를 결정하려 했다. 무엇보다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통증은 참고 견뎌볼 생각이었다. 무조건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밖에 안했다. 그리고 아프다고 중간에 교체될 ‘꼼수’ 피우지 말고 이왕 올라간 거, 던질 수 있을 때까지 마운드를 지키자고 결심했다. 무엇보다 경기가 박빙으로 흘러갔다. LG 선발투수인 류제국 선배가 호투를 펼치고 있어 나도 통증을 잊고 혼신의 힘을 다해 던졌다. 게임할 때는 통증 자체를 느끼지 못했다.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마운드를 내려오는데 안도감을 느낀 나머지 뛰어서 내려오다가 통증이 재발되고 말았다. 내 부주의로 부상 부위가 악화되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다.”
―현재 15승을 올렸고, 앞으로 남은 등판에서 20승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추측한다. 토종 20승 투수는 1999년 정민태(현대) 이후 무려 16년 만에 볼 수 있는 대기록이다. 지금까지의 추세대로라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기록일 것 같은데.
지난 6월 3일 KIA전에서 8이닝 1실점 후 교체되면서 동료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주위의 기대는 크지만 개인적으로 그 목표를 정해 놓지 않았다. 2013년에는 군 제대 후 첫 시즌이라 개막전 엔트리에 진입하는 게 목표였다(10승 7패, 평균자책점 3.53). 지난 시즌에는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는 게 목표였는데 운 좋게 달성할 수 있었다(12승 9패, 4.42). 올 시즌에는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자는 것 외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지 못했다. 그런데 15승을 달성한 것이다. 20승은 내게 꿈의 숫자다. 그런데도 주위에선 벌써부터 20승과 200이닝을 자주 언급한다. 숫자에 얽매이다 보면 이상하게 흔들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하던 대로’ 이 흐름을 이어나가고 싶다.”
―최근 ‘2015 프리미어 12’ 대표팀 선발과 관련해 유희관을 뽑아야 하느냐, 뽑지 말아야 하느냐는 찬반양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찬성하는 쪽은 대한민국 최고의 좌완 투수이자 제구력이 뛰어난 선수라는 점 때문에, 반대하는 쪽은 시속 150㎞에 육박하는 빠른 공에 어렵지 않게 대처하는 일본과 쿠바 등 강호들을 제압하기엔 구속이 너무 느리다고 지적한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얘기들이 자주 나오니까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지만, 최대한 경기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감사하더라. 내가 어느새 그런 위치에 올라가 있구나 싶어서. 어떤 논란이든 ‘유희관’이란 선수들 두고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다. 내가 야구를 못하고 있다면 팬들 사이에서 이런 논란도 제기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얼마 전 김인식 대표팀 감독님이 말씀하신 대로 대표팀 선발 여부는 감독님과 기술위원회에서 결정할 일이다. 난 우리 팀이 포스트시즌 4강을 넘어 우승을 하는 데에만 신경 쓰고 싶다.”
‘말발’ 좋기로 유명한 유희관이 퓨처스올스타전에서 일일 해설위원에 도전했다.
―만약 메이저리그나 쿠바의 강타자들을 상대하면 어떠할 것으로 예상하나.
“동료 선수들과 그 부분과 관련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과연 느린 구속이 국제무대에서 통할 수 있을지 여부를 놓고. 대부분 ‘통한다’라고 얘기해준다. 내 동료니까 용기를 주기 위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 또한 외국인 선수들을 상대할 때 내 공이 뒤처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선수들 중에도 150㎞/h의 공에 대응하는 강타자들이 많다. 만약 대표팀 선발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내 야구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싶다. 상상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힘 좋은 외국인 선수들이 내 느린 공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기도 하고(웃음).”
―어느 인터뷰에서 가장 까다로운 타자로 이용규(한화)와 서건창(넥센)을 꼽았더라. 둘 중에서 더 까다로운 타자를 꼽는다면?
“서건창이 이용규 선배보다 내 공을 더 잘 공략하는 편이다. 타율도 더 높을 것이다. 내 공을 잘 치는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면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매 타석에서 안타를 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매번 삼진을 잡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크게 긴장하진 않는다. 내 공을 잘 치는 타자라고 생각하고 신경 썼다가 오히려 다음 타자한테 크게 맞을 수도 있다.”
―양현종(KIA), 김광현(SK) 등 상대팀 에이스와 맞붙을 때 더 흥이 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난 기분파다. 주목을 받고 관중들이 많아야 흥이 난다. 상대팀 에이스와의 매치업에는 언론의 관심도 크고, 야구장을 찾는 팬들도 더 많아진다.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두산과 LG전처럼 말이다. 그래서 에이스들과 맞붙는 걸 즐긴다. 결과는 나중 문제다. 이왕이면 강한 상대랑 붙는 게 더 흥미진진하다.”
―가장 잊지 못할 피홈런의 악몽을 꼽는다면?
“지난해 5월 9일 잠실 삼성전이었다. 그 경기 선발로 등판에 홈런 4방을 두드려 맞았다. 우스갯소리로 경기 후 목에 담이 걸렸다고 말했을 정도다. 계속된 홈런 타구를 쳐다보다가(웃음). 2회 박석민 선배에게 솔로포를, 3회 나바로 선수에게 다시 솔로포를, 5회 또 다시 박석민 선배에게 좌월 투런호를, 7회 최형우 선배에게 우월 투런포를 맞고 이승엽 선배 타석에서 교체돼 내려왔다. 처음 홈런이 나왔을 때는 그런가보다 했고, 2개째는 어이없었고, 3개째는 화가 났고, 4개째 홈런에선 내 자신을 향해 실소했다. 야구 인생에서 쉽게 나오기 어려운 장면들인데, 지금 이렇게 편하게 회상할 정도가 된 걸 보면 시간이 흐르긴 흐른 모양이다.”
―만약 자신이 타석에 섰다고 가정하고, 상대 투수가 유희관이라면 어떻게 공략해 나갈 것 같나.
“그걸 얘기하면 ‘영업 비밀’이 다 노출되는 것 아닌가(웃음). 그러나 누구나 다 아는 부분이기도 해서 고민하지 않고 말하겠다. 내가 투수 유희관을 상대한다면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 같다. 투수는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잡으려 하고, 카운트가 유리해지면 더욱 자신감 있게 던질 수밖에 없다. 그런 투수를 상대할 때는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
지난 2012년 11월 5일, 유희관은 자신의 모바일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이런 글을 올렸다.
“내 이름 세 글자를 기억해둬라. 곧 야구계를 흔들어 놓을 테니까.”
당시만 해도 줄곧 2군에서 머물다 상무 제대 후 2013 시즌을 기다리고 있던 터라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유희관의 이 글은 비웃음을 사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유희관은 2013 시즌부터 성적으로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야구계에 ‘느림의 미학’이란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도 유희관 때문에 등장했다. 몸 안의 ‘개그 본능’과 화려한 입담으로 방송 해설위원 영입 영순위에 꼽히는 그는 발목 통증을 딛고 조만간 마운드에 복귀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인터뷰 ‘후’ 효린을 시구자로 강추함돠~ “주목받는 걸 즐기는 나로선 무플은 최악의 상황이다. 어떤 내용이든 관련 댓글이 많아야 기분이 좋다. 악플조차 고마워하는 선수는 흔치 않을 것이다(웃음).” 선수는 성적이 좋으면 ‘악플’도 점차 좋은 댓글로 바뀐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유희관이었다. 엉덩이, 뒤태 등 외모와 관련된 험담들이 승수를 쌓으면서 칭찬으로 바뀌고 있는 걸 지켜보면서 유희관은 새로운 기쁨을 만끽했다. 만으로 29세의 나이. 결혼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난 지금 당장이라도 좋은 여성이 있다면 결혼하고 싶다. 아기를 워낙 좋아해서 하루 빨리 결혼해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게 목표다. 그런데 야구보다 더 어려운 게 결혼인 것 같다.” 한 인터뷰에서 걸그룹 씨스타의 효린을 이상형으로 꼽았던 유희관은 언젠가 자신의 이상형을 직접 만나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구단 관계자가 효린을 시구자로 섭외해주기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양의지 포수와 볼배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유희관. 2013년 연봉 2600만 원, 2014년 1억 원, 2015년 2억 원의 몸값을 받고 있는 유희관. 2600만 원에서 1억 원의 연봉은 두산 구단 역사상 최고 인상률인 285%나 오른 액수였다. 유희관도 생애 처음으로 억대 연봉 대열에 진입했다. “1억에서 2억 원을 받을 때보다 2600만 원에서 1억 원을 받을 때가 더 행복했다. 내 노력과 가치가 돈으로 인정받는 것 같았고, 꿈의 ‘억대 연봉’을 나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 후론 돈에 대해 욕심을 내지 않고 있다. 성적이 좋으면 돈은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희관은 배터리를 이루고 있는 포수 양의지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전했다. 양의지는 자신이 좀 괜찮은, 퍽 쓸 만한 투수로 성장할 수 있게끔 이끌어준 ‘은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내가 가장 의지하는 선수가 의지이다”라고^^.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