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박 시장의 고발로 인해 지난해 11월 선거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7인에 대한 공판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대권주자가 연루된 재판 관련 보도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 대해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장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피고인들은 주신 씨의 MRI는 대리인을 통해 촬영된 100% 가짜라는 입장을 거둘 생각이 없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주신 씨의 치아를 치료한 문 아무개 치과의사의 증거조작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지난 17일 열린 4차 공판에서는 세브란스 방사선사가 병역 브로커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길고 긴 증인신문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정작 이들을 기소한 검찰 입장을 어떨까. <일요신문>은 지난 11일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를 살폈다. 검찰은 주신 씨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피고소인들의 ‘대리신검’ 주장에 대해서는 “합리적 근거가 없이 제기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주신 씨 병역비리 의혹과 관련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 중 하나는 ‘보험증번호 조작’이다. 피고소인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박 시장의 경기고등학교 선배인 문 치과의사가 주신 씨를 진료했다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신청한 요양급여청구서에 기재된 의료보험증 번호가 당시 존재하지 않고 미래에 취득한 번호이거나 주신 씨가 피부양자로 되어 있지 않은 박 시장 단독 보험증번호가 입력돼 있다는 것이다. 이에 피고소인들은 문 씨를 증거위조로 별도 고소한 상태다.
이에 대한 검찰 의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문 치과의원에서 사용한) 보험급여 청구 프로그램은 보험가입자 정보가 수회 변경되었을 경우, 보험증번호는 최근의 3개까지만 저장하고 그 이전의 정보는 삭제되는 구조로, 박주신의 과거 진료에 대한 보험급여 청구 내역을 2014년에 조회했을 시점에는 이미 박주신의 보험증번호가 수회 변경되어 박주신으로 저장되어 있는 3개의 보험가입자 정보 중 가장 가까운 시점의 보험증번호인 ‘8012xxxxxxx’(재)희망제작소로 기재되어 화면에 표시된 것이며, (중략)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심평원에 보관된 요양급여청구서에는 그 당시 존재하는 유효한 번호로 심사청구가 접수되어 처리된 것으로 나와 있고 다만, 박주신이 피부양자로 등록되지 않은 보험증번호가 입력된 상태는 문 치과의사가 제출한 자료와 같이 심평원에서 압수한 자료에도 동일하게 입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두 가지 주장 중 무엇이 진실인지 판별하기는 아직 이르다. 피고소인들의 주장대로 치과의사가 박 시장 쪽과 짜고 거짓자료를 제출했을 수도 있지만 검찰 측 주장대로 단순한 오류를 부풀려 의혹을 제기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해당 재판의 경우 이같은 사소한 대립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피고소인들은 주신 씨의 지난 2012년 연세세브란스 신체검사가 ‘제3자에 의한 대리신검’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당시 촬영이 이루어진 세브란스 본관 4층 74번방과 구조적으로 약간 격리된 73번방에 제3자가 들어가 방사선사들과 공모하여 73번에서 제3자를 찍은 영상을 74번 MRI 기기로 전송함으로써 대리검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재판 당시 증인으로 출석한 세브란스 영상의학 전문의는 74번 MRI와 73번 MRI 기기는 제조사가 달라 화면이 육안으로 구별이 가능해 피고인들 주장과 같은 방식의 대리촬영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변호인 측은 “어떠한 방법으로 제3자에 의한 대리 신검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세브란스병원 PACS 시스템에 저장되어 있는 박주신 MRI 피사체가 박주신의 것이 아닌 제3자의 것”이라며 이번에는 ‘PACS 시스템‘이라는 것을 집중 추궁한다.
이에 대해서도 검찰은 “피고인들은 제3자에 의한 대리신검이 어떠한 방법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주장을 한 것이므로, 이는 스스로 허위사실 인식에 대한 범의를 자백한 것”이라고 반박하는 식이다.
특히 피고인들 가운데 영상의학 권위자라는 양 아무개 박사의 경우 MRI 기기의 ’골수신호강도‘에 의한 연령측정이 100% 오류가 없는 의학적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증인으로 출석한 세브란스 윤 아무개 교수는 “의학에서 100%란 있을 수 없으며 의료 영상의 피사체 상태와 실제 해당 환자의 신체적 상태 등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학적인 부분에 대한 이견은 재판의 핵심 사안인 만큼 최근 검찰과 피고소인들 사이에서는 기존 자료를 토대로 한 감정신청을 놓고 이견이 엇갈리는 중이다. 피고소인들은 검찰 측이 제기하는 방식의 신체감정은 진실을 밝히는 데 쓸모가 없다며 방어권 차원에서 자신들이 지정한 곳에 감정을 맡겨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취재 결과, 피고소인들은 사실 감정에 관해 한 차례 실수를 범한 바 있다. 지난 7월, 재판부는 한 피고소인의 요청에 따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촉탁을 의뢰했다. 세브란스 신검 당시 서울시 공무원이 촬영한 동영상 속 인물과 한 종합편성채널 기자가 촬영한 인물이 동일인인지 여부와 함께 주신 씨의 귓볼 등이 확대된 실물사진과 X-ray상 신체적 특징을 비교 감정해 동일인 여부를 밝혀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에 국과수는 재판부에 “실물사진과 X-ray 사진을 비교하며 동일인지 여부를 추정하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피고소인들 사이에서 더 이상 ‘동영상 속 남성’이나 ‘주신 씨 귓모양’을 주된 근거로 삼지 않는 것에는 이러한 배경도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자 변호인은 주신 씨와 비슷한 귀를 가진 일반 시민을 모아 X-ray를 찍은 뒤 주신 씨의 경우와 비교하는 등 아예 새로운 전략을 짜고 있기도 하다.
검찰은 의견서에서 “세브란스에서 이루어진 박주신에 대한 신체검증은 피고인들의 주장과 같이 제3자를 대리로 촬영하여 전 국민을 기망할 수 있을 정도로 치밀하게 기획된 바 없으며, (중략)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즉, 병원의 의사, 방사선사, 간호사, 병무청 소속 직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 관리공단, 서울시 소속 직원, 언론인들이 소위 ‘침묵의 카르텔’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상정하기 어려운 가정이 성립되어야 가능하다”고 결론 맺었다.
그러면서 검찰은 박 시장 측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피고소인들의 의혹 제기가 수년간 이어진 상황에서 유독 선거를 앞두고 고발 조치 등으로 적극 대응한 뒤, 선거가 끝나면 고발을 취소해버리고 처벌불원서를 제출하는가 하면, 검찰 기소에 대해 “무리한 기소” “이미 끝난 사안”이라며 증인소환 협조요청까지 완강히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판과정에서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신문태도에 비쳐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지난 17일 열린 4차 공판에 참석한 세브란스 방사선사의 경우 사실상 ‘병역 브로커’로 낙인 찍혀 자신의 월급 및 차종, 자녀들의 학원비, 개인 SNS에 올린 여행 사진 등 속속들이 추궁당했다. 참관인들은 재판장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증인의 증언이 나올 때마다 탄식하거나 종종 욕설을 내뱉는 광경도 목격할 수 있었다. 박 시장 쪽에서 증인 출석에 응하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검찰 역시 “아들의 증인출석 협조요청을 거부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이해한다”면서도 “박주신 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사건의 종국적 해결을 위해 필요하다는 변호인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할 근거는 없다고 생각한다. 원할한 증인소환 절차가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끝맺는다.
한편, 주신 씨 병역의혹 관련 선거법위반 5차 6차 공판은 내달 21일과 24일에 열린다. 다음 공판에는 앞서 언급한 문 치과의사가 증인으로 나와 또 한 번 양측 간 치열한 공방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