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직을 상실한 박기춘 의원(왼쪽)과 한명숙 의원. 새정치에서는 이들 외에도 중진급 의원 여러 명이 검찰 수사와 재판에 얽혀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검풍의 시작은 무소속 박기춘 의원이었다. 2011년부터 올해 2월까지 분양대행업체 대표로부터 3억 58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 의원은 지난 18일 결국 구속됐다. 박 의원에 대한 의혹은 지난 7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이후 7월 말 검찰에 소환된 박 의원은 2주 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고,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후 구속이 결정됐다.
박 의원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속전속결’이다. 3선인 박 의원은 당 사무총장, 원내대표 등을 역임한 야권 내 무게감 있는 중진이다. 하지만 워낙 구체적으로 혐의가 드러난 까닭에 당 차원에서도 박 의원을 방어할 순 없었다. 그만큼 검찰 수사가 매섭게 진행됐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새정치연합 한 관계자는 “박 의원 스스로가 혐의를 인정한 만큼 당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느냐. 참 씁쓸한 단면”이라고 전했다.
박 의원으로 인한 충격파가 애써 식을 즈음 새정치연합에서는 또 다른 ‘한 방’이 찾아왔다. 이번엔 당 중진인 한명숙 의원이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된 것이다. 지난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의원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 80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한 의원은 2007년 3월부터 8월까지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불법정치자금 9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는 무죄, 2심에서는 유죄가 선고된 한 의원은 대법원 확정 판결로 결국 의원직을 상실하게 됐다. 재판을 방청한 문재인 대표는 “정말 참담한 심정”이라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문 대표의 말처럼 새정치연합의 내부 분위기는 말 그대로 ‘참담’ 그 자체다. 그동안 여러 중진급 의원들이 검찰 수사망에 올랐지만 법적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중진인 박 의원을 시작으로 한명숙 의원마저 의원직을 상실하자 야권을 겨냥한 사정정국이 본격화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현재 새정치연합에서는 중진급 의원만 ‘10여 명’이 검찰 수사와 재판에 얽혀있거나 처벌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박지원 의원(3선)은 ‘저축은행 금품수수’ 혐의로 최근 2심에서 일부 유죄가 인정돼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문희상 의원(5선)은 처남 취업청탁 문제로 수사망에 올라 검찰 소환이 예정돼 있다. 당 대표를 지낸 김한길 의원(4선)은 ‘성완종 리스트’ 건과 관련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밖에 신계륜 의원(4선), 김재윤 의원(3선), 신학용 의원(3선)은 ‘입법 로비’에 연루돼 재판 중이다. 가히 ‘서초동발 야권 중진 수난시대’라고 평할 만하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검풍’을 막을 야권의 방패가 너무나 부실하다는 점이다. 새정치연합은 잇따른 검찰 수사를 ‘신공안탄압’으로 규정해 강력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특히 최근 검찰이 문희상 의원에 대한 소환 방침을 정한 직후, 당내 ‘야당탄압대책위원회’ 위원장인 이종걸 원내대표의 주재 하에 비공개 대책회의를 두 차례나 연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자리에서 검찰 수사가 이젠 ‘도를 넘었다’는 데에 공감대를 형성했으나, 막상 뚜렷한 대책은 없었다는 게 당 내부의 평가다.
새정치연합 한 중진 의원은 “검찰이 야권을 탄압한다는 인식을 줘야하는데 대부분 개인비리이니 마땅한 대응 방법이 없다. 그저 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무리한 수사라는 주장만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도부 차원에서 다른 차원의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일각에서는 여권과 비교해 검찰이 지나치게 편향적인 수사를 하고 있는게 아니냐며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현재 여당 내 중진 중에선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과 이완구 전 총리, 홍준표 경남지사 정도가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 모두 혐의가 어느 정도 드러난 만큼 수사망이 점차 좁혀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결국은 ‘구색 맞추기 수사’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검찰 출신인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검찰로서는 야당 거물급 인사들만 수사하기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여권 인사를 수사 대상에 포함시켜 균형을 맞추려는 모습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야당 쪽이 더 위태로울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결국 현재 상황에서 여야 정치권 모두 검찰의 사정태풍을 정면으로 맞고 있다는 시각에는 이견이 없다. 중진급 외에도 새누리당은 송광호 의원과 조현룡 의원(철도비리), 박상은 의원(해운비리), 심학봉 의원(성폭행 의혹)이 수사선상에 올라 있으며, 새정치연합은 이종걸 원내대표, 강기정 의원, 문병호 의원(국정원 여직원 감금), 권은희 의원(국정원 댓글 사건 위증), 김현 의원(대리기사 폭행 연루)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야당의 한 법사위 관계자는 “아무래도 검찰과 법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총선을 앞두고 ‘총선용 기획수사’가 아닌지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새정치 경기 북부 심상찮다 터줏대감들 위기…지각변동 예고 이번 검찰발 사정태풍 속에서 가장 주목되는 지역은 ‘경기 북부’다. 새정치연합의 경기 북부지역구 현역 의원들이 수사망에 오르면서 내년 총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문희상, 윤후덕. 5선 중진인 문희상 의원(의정부갑)은 ‘처남 취업 청탁’ 의혹으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라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내년 총선 도전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새정치연합 입장에서는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하던 두 의원이 흔들리면서 위기감이 엄습하고 있다. 또한 윤후덕 의원(파주갑)이 변호사 딸 대기업 특혜 채용 논란에 휘말리면서 당 윤리심판원 심사를 받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경기북부는 의원뿐만 아니라 기초단체장들도 대거 비리에 연루되어 있는 모양새다. 이번 계기로 총선 전에 대대적인 물갈이를 할 필요가 있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