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정부의 대숙청 기간 고려인을 비롯, 무고한 인민들이 처형된 장소. 이곳 중앙에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설치된 초라한 추모비가 자리하고 있다.
당시 대숙청의 명목은 ‘스파이 제거’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론 스탈린 독재정권을 강화하기 위한 반대 세력 제거와 공포를 통한 독재의 공고화가 주목적이었다. 가까운 정적들은 물론 죄 없는 농민들, 특히 고려인을 비롯한 소수민족들도 마구 죽여 나갔다. 이를 주도했던 니콜라이 예조프 당시 공산당 내무위원회 의장(별명 ‘피의 난쟁이’)은 “무고한 사람 열 명이 죽어도 스파이 한 명을 놓치면 안 된다”는 말을 남겼다. 그 만큼 잔인했다.
연해주의 고려인들 역시 이 광풍을 피하지 못했다. 1937년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는 물론 수많은 고려인들이 스파이 혐의 등을 이유로 처형됐다. 김경천, 주세죽, 김단야 등 소련에서 활동하던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 역시 이 광풍에 의해 처형되거나 시베리아의 머나먼 수용소로 끌려갔다.
취재진이 찾은 ‘둡기’에서도 이곳 러시아인들은 물론 무고한 고려인들도 잇따라 처형됐다고 한다. 둡기는 우수리스크 시내와는 한참 떨어진 음산한 외곽이었다. 널찍한 평원에 이제는 드문드문 풀이 자라 옛 모습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그나마 옛 처형장소 중앙에는 훗날 소련 정부가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설치한 추모비가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다.
1993년, 소련의 후신 러시아 옐친 정부는 당시 스탈린 정부의 광풍에 따른 무고한 고려인들의 희생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했다. 현재도 이곳 러시아와 주변국에선 역사적 아픔을 안은 50만 명의 고려인이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