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의 경복궁 옆 송현동 부지 개발 사업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대한항공 측은 현행법에 걸려 발목이 잡힌 한옥호텔을 빼고 복합문화 허브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방침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2기, 문화융성 방향과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문체부는 “대한항공이 서울 경복궁 옆 송현동 부지에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도심형 K-컬처밸리 일환으로 복합문화 허브공간 ‘K-익스피리언스(Experience)’를 짓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도 “전시관·공연장 등을 포함해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의 건물을 구상하고 있다”며 “경복궁과 북촌 한옥마을 등을 연결해 다양한 볼거리와 쇼핑시설을 한 공간에 밀집시켜 문화체험관광의 랜드마크를 조성하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송현동에 호텔을 건립하는 것은 여러 여건상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호텔을 제외하고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며 “오는 2017년까지 1차 공정 완료가 목표”라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지난 2008년 옛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가 있던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일대 부지 3만 6642㎡를 삼성생명으로부터 2900억 원에 사들였다. 당초 대한항공은 이 부지에 7성급 한옥호텔을 짓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그러나 이 땅은 풍문여고 등 3개 학교가 인접해 있었고, 학교 주변 200m 내에는 관광호텔을 짓지 못하게 하는 현행법에 발목이 잡혀 7년째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난항을 겪어 왔다. 이런 와중에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이 터지면서 사업에 급제동이 걸렸다. 이후 대한항공이 호텔 건립 계획을 접고, 복합문화공간 건립으로 선회하면서 송현동 개발 사업은 다시금 탄력을 받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하지만 조 전 부사장은 ‘땅콩회항’ 사건이 터지자 대한항공을 비롯해 한진그룹의 계열사 왕산레저개발, 한진관광, 한공종합서비스 등 모든 보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칼호텔네트워크의 대표이사와 등기이사에서도 물러났다.
다만 조 전 부사장은 보직에서 물러났지 지분까지 모두 내놓은 것은 아니다. 칼호텔네트워크 지분 100%는 한진칼이 보유하고 있다. 한진칼의 최대주주는 조양호 회장으로 보통주 17.83%(940만 9517주)와 우선주 2.40%(1만 2901주)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조 회장의 자녀 3명은 각각 보통주 2.5%씩 나눠갖고 있다. 또한 조 전 부사장은 지난 1월 칼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후임으로 자신의 측근인 김재호 한진칼 경영관리팀장을 선임했다. 이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 대표이사로 복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게 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송현동 부지 개발 사업은 대한항공 호텔사업을 담당한 조 전 부사장이 추진해오던 것인 만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개발 사업이 잘 진행되면 나중에 조 전 부사장이 경영에 복귀하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송현동 부지는 대한항공이 매입한 것으로, 개발사업도 대한항공이 진행한다. 칼호텔네트워크는 인천하얏트호텔 운영을 위한 계열사로 송현동 부지 개발사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이번 사업은 조양호 회장이 직접 진행한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현직에서 물러나 경영에 아무런 관여를 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계에선 조 전 부사장의 복귀설과 관련한 뒷말이 나돌고 있다. 그룹 내부에서도 조양호 회장이 복귀설 논란에 휩싸이는 등 ‘조현아 복귀설’을 부추기는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실제로 ‘딸 바보’로 알려진 조 회장은 조 전 부사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 한 달 만인 지난 6월 ‘복귀설’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조 회장은 지난 6월 16일 프랑스 르부르제공항에서 열린 파리에어쇼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땅콩회항’ 사건 이후 후계구도에 대한 질문에 “덮어놓고 다음 세대에 기업을 넘겨주는 게 아니라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세 명 각자의 전문성을 살리겠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장녀 조현아 전 부사장을 비롯해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등 모두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따라서 조 회장이 ‘세 명’이라고 언급한 것은 조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를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면서 ‘조현아 복귀설’에 불을 지핀 꼴이 됐다. 이에 대해 당시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의 발언은 자녀들에게 후계승계와 관련해 그동안 늘 해왔던 원론적인 이야기”라며 “조현아 전 부사장의 복귀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도 아니고, 먼 훗날 나중에 경영에 복귀할 것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경복궁 옆 호텔’ 정말 포기할까 안 하겠다는 얘긴 안하네 ‘경복궁 옆 7성급 한옥호텔’은 대한항공의 숙원 사업이었다. 학교 주변 200m 내에는 관광호텔을 짓지 못하게 하는 현행법에 발목이 잡히자, 조양호 회장은 청와대 간담회에서 “특급관광호텔의 건립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법개정을 건의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문체부의 ‘국정2기, 문화융성 방향과 추진계획’ 발표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일단 호텔 건립은 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다. 이는 7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대한항공에서 나중에 호텔 건립을 재추진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지난 18일 문체부의 발표 자리에서 ‘호텔 건립이 무산된 것인가’라는 질문에 “호텔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즉답을 피했다. 또한 대한항공의 다른 관계자는 “호텔 건립을 안 하겠다거나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땅콩회항’ 사건과 재벌에 대한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을 피한 뒤, 나중에 상황에 따라 법 개정을 통해 호텔 건립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재계 관계자도 “대한항공 측이 이미 땅을 매입하면서 29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투입한 만큼 호텔 건립을 쉽게 포기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성명을 통해 “문체부가 대한항공과 추진하겠다는 한국문화 체험공간 ‘K-익스피리언스’는 대한항공이 추진하던 한옥호텔과 그 규모와 구성에서 대동소이하다. 나중에 호텔로 바꾸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며 “문체부의 발표는 사실상 대한항공의 호텔 건립 신호탄이며, 문체부와 특정 재벌의 유착”이라고 비판했다. [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