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가 위치한 변호사회관 전경(위)과 대한변리사회 전경. 최근 변호사들과 변리사들이 불꽃 튀는 영역 다툼을 벌이고 있다. 임준선·박은숙 기자
대한변호사협회도 같은 시기 “변리사 시험을 즉시 폐지하라”는 성명서로 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대한변협은 “변리사는 소수의 변호사만 있었던 시대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것일 뿐”이라며 “변호사가 연간 2500명씩 대량 배출되는 상황에서 변리사의 시대적 소명이 끝났다”고 강조했다. 대한변협의 이효은 대변인은 “기존 변호사 업무에서 떼어놨던 변리사 영역을 변호사가 다시 흡수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싸움이란 건 무조건 다 돈 때문 아니겠나.”
전문직의 정점에 있는 양측이 서로를 몰아붙이는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 21일 익명을 요구한 A 변호사는 <일요신문>과 만나 솔직한 심정을 털어 놓았다. 변리사로 1년간 활동하다가 로스쿨을 졸업, 변호사로 ‘전향’한 그는 “변리사들이 더 잘 번다고 하면 변호사들은 당연히 치고 들어간다”며 “그 핵심에 변리사 자격자동부여가 있다. 그런 가능성은 변리사들에게 굉장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자동자격을 폐지할 경우 변호사의 변리사 시장 진입 장벽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다. 반면 유지할 경우 로스쿨 변호사들이 변리사 업무영역에 물밀듯이 들어올 수 있다. 이 싸움의 핵심은 “변호사가 변리사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느냐”다.
변리사들은 산업재산권 대리 업무를 지금껏 자신들이 담당해왔고 앞으로도 그 업무는 변호사들이 대체할 수 없는 ‘고유’영역이라 주장한다. 반면 변호사들은 일반 법률사무가 자신들의 직무이며, 특허 업무는 법률사무의 일부라고 반박한다. 더구나 이공계 졸업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변리사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본다.
B 변리사는 “변호사들은 특허와 상표, 디자인 부분에 대한 기술적 이해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며 “변리사들은 90%가 이공계 출신이라 다르다. 변호사들은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A 변호사는 “변호사 중 변리사 업무를 보는 이들이 상당수”라며 “변리사 시험 과목이 특허와 상표, 디자인 보호법인데 이런 건 금방 공부하면 할 수 있다”고 맞섰다.
과연 누구의 주장이 맞을까. 양측은 같은 통계도 다르게 해석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3번의 변호사시험에서 지식재산권법을 선택한 로스쿨생은 5%가 채 되지 않았다. 올해 로스쿨의 이공계열 합격자는 전체 정원대비 7%에 불과했다. C 변리사는 “이공계를 전공하고 지식재산권법을 선택한 로스쿨생은 통계상으로도 극소수”라며 “변호사들의 주장은 완전 엉터리”라고 강조했다. 반면 D 변호사는 “로스쿨생들은 시험 합격을 위해 수월한 과목을 선택하는 것일 뿐, 향후 진로하곤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변리사들은 고객을 위해서라도 변리사법 제3조를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변리사회 관계자는 “보통 지방의 개인 발명가나 기업가는 변호사를 우리와 같은 변리사라고 생각을 한다”며 “그렇게 믿고 출원을 의뢰했다가 나중에 등록이 안 되는 피해사례들도 꽤 있다”고 밝혔다.
변호사들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대한변협 측은 “변리사들은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대리권이 없기 때문에 의뢰인 입장에서 변호사를 선임할 수밖에 없다”며 “의뢰인이 변리사에게 돈을 주고 소송을 위해서 변호사를 또 수임해 이중적인 비용지출이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어줬을까. 지난 2010년 헌법재판소는 변리사법 제3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변리사 2차 시험 응시자들은 자동자격부여조항 때문에 평등권을 침해받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변리사는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특허청과 법원에 관한 사항을 주로 대리하고 있다”며 “이 같은 권리와 의무에 관한 법률사항의 대리 역시 변호사의 주요 업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변호사 승.’
양측의 치열한 싸움은 국회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변리사법 제3조 2호를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기 때문. 아이러니하게도 이 의원은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로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다. 이상민 의원실 관계자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고 해서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는데 변리사자격을 주는 건 과잉특혜다”고 강조했다. 해당 개정안은 현재 산업통상자원소위에 상정됐다.
지난 7일 국회 산자위 소위 제3차 회의에서 대한변협과 변리사회는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대한변리사회 고영회 회장은 “변호사 시험과 변리사 시험에서 겹치는 과목은 단 두 과목이다”며 “이를 이유로 자동자격을 주는 것은 아주 비정상이다”고 밝혔다. 반면 대한변협의 채명성 법제이사는 “이미 많은 변호사들이 특허출원뿐만 아니라 지적재산권 소송 업무를 대리하고 있다”며 “문제가 없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아직 최후 승자의 윤곽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변리사는? 변리사는 산업재산권의 취득이나 분쟁해결에 관한 업무를 담당한다. 고객이 특허가 될 만한 아이디어나 기술을 가져오면 변리사는 산업재산권 출원에 필요한 자료를 만들어 특허청에 제출한다. 출원에서 등록까지 모든 과정을 대리한다. 물론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에서 심판과 소송 대리도 하고 있다. |
변호사, 법무사·세무사와도 갈등 까닭 ‘변호사 파이만 어마어마…’ 지난해 12월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은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국민들이 대법원 사건의 소송 대리인으로 변호사를 필수적으로 선임하도록 하고, 선임을 못할 경우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에 대해 대한법무사협회는 서민에게 소송비용을 가중시킨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대한법무사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변호사에 맡기라니…. 국민은 무능력자인가”라고 반문하며 “소송비용 마련조차 쉽지 않은 이들에게 법무사 아닌 변호사를 찾으라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고 비판했다. 지난 2월, 인천지방법무사회 소속 법무사 250명은 홍 의원의 사무실 앞에서 개정안 폐지를 촉구했다. 세무사와 변호사들의 갈등도 진행형이다.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자동 부여하도록 규정한 세무사법 제3조 때문이다. 대법원이 2012년 세무사 시험에 떨어진 변호사는 세무사 등록을 할 수 없다고 판결해 사실상 효력을 잃었지만 세무사들은 자동자격 부여의 완전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세무사법 제3조를 폐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