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일본으로 가져간 가야 금관. 사진제공=문화재제자리찾기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총독부를 움직여 유물들을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해서 도굴하기도 하고, 발굴해놓은 유물들을 매입했다고 한다. 그가 썼던 <오구라컬렉션 목록> 서문을 보자.
“일본 고대사 중에는 의외로 조선의 발굴품과 고미술품을 근거로 하여 비로소 명확해질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에 놀랐다. 나는 이런 견지에서…(중략) 가능한 조선의 옛 기물을 계통적으로 정비, 보존하는 것은 일본 고대사를 천명하는 것만이 아니라…(중략) 문화연구에 공헌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수년에 걸쳐 이 수집에 미력을 다해 왔던 것이다”(<한겨레21>, 2011. 1. 14. ‘일본에 갇힌 1144점의 문화재’).
그는 특히 임나일본부설 등 일본과 우리나라의 관계를 밝히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실제로 오구라 컬렉션 목록에는 가야 유물이 ‘임나(任那)’라는 분류 명으로 253점이 남아 있다.
‘임나’는 일제의 식민사학 이래 일본 사학자들이 붙여준 ‘가야’의 별칭이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은 <일본서기(日本書紀)> 중 고대 일본 신공황후(神功皇后)의 삼한 정벌 설화를 바탕으로 한 학설이다. 일본이 고대에도 임나일본부라는 기관을 설치해 한반도 남부를 식민 지배했으므로 일제의 한반도 식민통치가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일본서기>는 임나일본부가 4∼6세기경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국호는 7세기 중엽 이후에나 성립되었다. 이런 이유로 2010년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양국 학자들은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를 쓰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런데도 일본 문화청은 홈페이지에서 오구라컬렉션의 삼국시대(통상 가야를 삼국에 포함시킨다) 유물들의 출처를 ‘임나’로 표기하고 있다. 막상 유물의 소장처인 도쿄국립박물관에서는 출처를 ‘한국 창녕’으로 표기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제 ‘임나’라고 분류된 오구라컬렉션 가운데 포함된 가야 금관 이야기를 해보자. 한국은 세계 최고·최대의 금관 보유국이다. 청동이나 구리로 만들거나 금도금한 ‘금동관’ 등은 금관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금관은 삼국시대 유물로 분류한다. 중국식 제도와 복식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통일신라시대부터는 금관을 만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출토된 금관의 수는 13개다. 그중 9개(신라 6개, 가야 3개)가 한국에서 출토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오구라컬렉션에 포함되어 있다.
이 금관은 가운데에 작은 초화형(草花形, 풀모양) 세움 장식이, 좌우에는 두 가닥의 풀잎 모양의 세움 장식(立飾·입식)이 부착되어 있다. 가야금관은 신라의 금관처럼 도식적이지 않으며, 풀잎 모양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6세기 무렵 대가야 왕의 금관으로 추정되는데, 가야의 빼어난 공예기술과 예술적 안목을 보여준다.
가야금관이 일본 땅에 유배된 것도 억울한데, 문화청 홈페이지에 ‘임나’ 출토 유물로 분류되어서 역사왜곡의 물증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가슴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혜문 스님이 지난 4월 14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박물관협의회(ICOOM)를 방문해 앤 캐서린 로버트 하우글루스틴 ICOOM 사무총장에게 청원서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구라컬렉션 반환을 추진 중인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의 혜문 스님은 지난 4월 국제박물관협의회에 오구라컬렉션 반환 청원서를 전달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2월에 도쿄국립박물관을 대상으로 소장품 소장을 중지하라는 내용의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도쿄 지방재판소가 ‘1965년 한일 협정으로 최종적으로 타결된 문제이므로 반환의무가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도 오구라컬렉션 유물을 목록화하고 그 유통 경로, 소장처까지 추적한 자료를 만들어 지난 7월 29일 <오구라컬렉션,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사회평론)를 발간했다. 민관이 힘을 합쳐 꾸준하게 연구하고 협력해야 잃었던 우리 문화재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가야금관」, 「임나일본부설과 가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가야 시대의 진해(加耶 時代의 鎭海)」, 한국학중앙연구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자료정보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