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질을 개선하고 느리게 편집한 국과수 영상. 박 경사가 팔을 비틀렸다며 허리를 숙이고 비명을 지를 당시 박 씨(맨왼쪽 인물)는 상체를 세운 채 다른 경관을 보고 있었다. 왼쪽은 ‘할리우드 액션’ 직전 박 씨와 박 경사가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런 삶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난 2009년 6월 27일은 박 아무개 씨(53)와 최 아무개 씨(여·52) 부부가 귀농한 이후 처음 이수한 ‘숲 해설가’ 수료증을 받은 날이다. 동시에 이들 부부의 삶을 풍비박산 낸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이날 박 씨 부부는 함께 숲 해설가 수료 회식에 참석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운전은 술을 마시지 않은 아내 최 씨가 했다.
한적한 밤길, 갑자기 최 씨가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세웠다. 경찰의 음주 단속이었다. 최 씨는 2차선을 주행하고 있었는데, 경찰이 튀어나와 차를 멈춰 세운 것. 그 도로는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곳이었다. 술에 취한 박 씨는 화가 났다. 그리고 경찰에게 “야, 이 XXX야 뭐 하는 거야”라고 욕을 하며 소리쳤다.
경찰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 바깥으로 끌려 나온 박 씨와 경찰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박 아무개 경사(당시 경장)가 박 씨 부부에게 수첩과 볼펜을 들고 다가왔다. 그런데 박 경사의 오른손이 박 씨에게 닿는가 싶더니, 갑자기 “아…, 아…” 하는 비명과 함께 박 경사가 허리를 90도로 깊게 숙였다. 이 상황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 있던 또 다른 경찰이 “현행범으로 체포해”라고 소리쳤고 박 씨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됐다.
검찰은 “박 씨가 경찰의 오른팔을 잡아 뒤로 비틀어 바닥에 넘어뜨렸다”며 박 경사의 진술과 촬영한 영상을 증거로 박 씨를 기소했다. 법원은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박 씨는 경찰에게 욕설을 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경찰의 팔을 잡아 뒤로 비튼 적은 없다”고 주장하며 정식 재판을 요청했다. 박 씨는 무죄 입증을 자신했다. 대법원까지도 변호사 없이 재판을 진행했다. 하지만 대법원 역시 경찰 진술과 촬영 영상을 근거로 원심을 확정했다.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 씨의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아내 최 씨가 출석했다가 위증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것이다. 최 씨는 법정에서 “남편이 경찰의 팔을 꺾는 것을 보지 못했고, 팔을 꺾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최 씨에게 위증 혐의로 징역 2년을 구형했다. 법원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다시 1심부터 대법원까지 이어졌다. 병설유치원 교사였던 최 씨는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유로 24년간 이어온 교육공무원직에서 파면됐다.
그것도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박 씨가 위증 혐의로 기소됐다. 박 씨가 아내 최 씨의 위증 재판 항소심 증인으로 나서 “아내의 말은 사실”이라고 증언한 게 문제가 됐다. 1심에서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됐다. 검찰은 300만 원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박 씨가) 죄를 뉘우치지 않고 있다”며 200만 원을 더했다.
그런데 지난 8월 19일 열린 항소심에서 대반전이 일어났다. 박 씨에게 남은 사실상 마지막 재판. 박 씨 변호인은 ‘사건 동영상의 화질 개선’을 요청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촬영 영상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화질을 개선하고 속도를 6분의 1로 느리게 편집한 영상을 제출받았다. 그런데 이 영상에서 그동안 알려진 내용과는 정반대의 모습이 드러났다. 개선된 영상을 보면 박 씨는 상체를 거의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뒤로 젖히고 있으며, 시선은 박 경사가 아닌 다른 경찰관들의 얼굴을 향해 있었다.
재판부는 이러한 내용 등을 종합해 “박 씨가 경찰의 팔을 잡아 비틀거나 한 일이 없음에도 갑자기 무슨 이유에서인가 폭행을 당한 것인 양 행동한 것으로 볼 여지가 높다”며 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 씨가 경찰의 팔을 꺾은 게 아니라 오히려 경찰이 ‘할리우드 액션’을 했다는 쪽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그동안 박 씨의 공무집행방해 혐의와 박 씨 부부의 위증 혐의의 주요 증거였던 촬영 영상이 오히려 박 씨의 무죄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인정된 순간이었다.
재판부는 팔이 꺾였다고 주장한 박 경사의 진술도 믿기 어렵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박 경사는 사건 발생 당일엔 “오른팔을 잡혀 뒤로 비틀어졌고, 땅에 넘어지는 피해를 당했다”고 진술했지만 정식 재판으로 넘어간 후인 지난 2010년 5월 법정 진술에서는 “땅에 넘어지지는 않은 것 같다”고 답하는 등 지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박 씨 부부의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면서 진술을 계속 바꿨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박 경사가) 사소하다고 볼 수 없는 상당히 의미 있는 부분에서 수시로 진술을 번복하고 있다. 박 경사의 변화무쌍한 진술은 함부로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밝혔다.
박 씨의 변호를 맡은 박훈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박 경사가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해 입건한 건수가 상당히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법정에서 박 경사에게 따로 물어보니 ‘맞다. 한 달에 6~7회 된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항소심 판결에 대해 박 경사는 말을 아꼈다. 박 경사가 근무하고 있는 경찰서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전화통화에서 “박 경사는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이 사건의 본질은 공무집행방해가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이 됐다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다. 무죄 판결은 재판진행 과정에서 검사가 인지한 위증 사건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 우리 경찰관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번 판결에 대해서는 검찰과 이야기해야 한다. 박 경사가 해명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6년간 박 씨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아내 최 씨는 교직을 잃고 대인기피증이 생겼고 귀농을 꿈꾸던 박 씨는 막노동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야 했다. 고3이던 아들은 전신탈모를 앓았다. 이 사건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 8월 26일 밤, 박 씨의 위증혐의 항소심 판결에 대해 상고했다. 박 씨 가족의 삶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박 씨는 지난 8월 28일 <일요신문>에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잘못된 부분은 사법부에서 바로 세워줄 거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겁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