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안익태 기념 음악회 공연 중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미리 약속이라도 한듯 청중과 합창단이 하나가 되어 애국가 4절을 제창하는 모습이 장관을 이뤘다. 이종현·최준필 기자
2500석에 달하는 콘서트홀 객석은 안익태 음악을 듣기 위해 찾아온 청중들로 가득 메워졌다. 정의화 국회의장,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홍구 전 총리, 김덕룡 전 의원 등 귀빈들도 대거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또 안익태 선생 외손자 미구엘 익태 안 씨가 부인과 함께 참석해 더욱 의미를 더했다. 안 씨는 “이러한 뜻 깊은 음악회에 개최하고, 초청해주셔서 감사하다”라며 “아주 뜻 깊은 자리였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음악회는 국내 최정상급 지휘자로 꼽히는 정치용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지휘를 맡고 수원시립교향악단을 중심으로 국립합창단, 숭실대콘서트콰이어가 출연했다. 여기에 소프라노 한예진,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테너 강무림, 베이스 임철민 등 유명 성악가와 안희찬 교수가 트럼펫 솔로이스트로 참여했다. 특히 음악회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참여합창단 220명이 무대를 꽉 채워 청중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9세부터 83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한 국민참여합창단은 이번 음악회를 위해 올여름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음악회는 1부 축하 공연과 2부 안익태 기념 공연으로 열렸는데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 애국가가 연주됐다. 정치용 교수가 지휘하는 수원시립교향악단 연주에 맞춰 국민참여합창단이 노래를 시작하자 객석의 모든 청중들도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애국가를 불렀다.
2015 안익태 기념 음악회를 찾은 많은 관객들이 함께 온 일행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등 공연의 여운을 즐기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안익태 기념 음악회인 만큼 그 시작이 애국가인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청중과 합창단이 하나가 되어 애국가 4절을 제창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음악회 사회를 맡은 양종아 아나운서는 “미리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관객들까지 일어서서 불러 깜짝 놀랐다”라며 “이번 음악회가 더욱 뜻 깊어지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1부 공연은 트럼펫 솔리스트 안희찬 교수가 입장하며 시작됐다. 이날 안 교수는 베니스의 사육제에 의한 트럼펫 환상곡과 변주곡을 연주했다. 곡이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그의 운지법도 점점 현란해졌고 관객들은 숨죽여 이를 지켜봤다. 첫 무대로 트럼펫 연주가 선보인 것은 안익태의 음악 인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안익태가 처음 음악에 심취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트럼펫 때문이었다고 한다. 트럼펫 소리에 매료돼 아버지에게 트럼펫을 선물 받은 것이 안익태 음악 인생의 시작점이었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대표적인 트럼펫 곡인 아르방의 베니스 사육제에 의한 환상곡과 변주곡이 트럼펫 연주된 것이다.
이어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은 클래식에 관심이 많지 않은 일반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곡이다. 공연은 소프라노 한예진,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테너 강무림, 베이스 임철민 등 유명 성악가와 국립합창단, 그리고 숭실대콘서트콰이어가 함께 꾸몄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3분간 기립박수로 응답했고, 누군가는 쉴 새 없이 환호를 보냈다. 베토벤 곡이 무대에 오른 것 역시 안익태 때문이다. 안익태는 생전에 베토벤을 매우 좋아했으며 깊이 공부를 하기도 했다. 특히 1936년 비엔나에서 세계적인 지휘자 헬릭스 바인가르트너의 문하에서 베토벤의 교향곡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했다.
2부 공연은 안익태 곡들로 구성됐다. 첫 곡은 ‘포르멘토르의 소나무.’ 웅장한 선율과 함께 격정적으로 시작되는 ‘포르멘토르의 소나무’는 이후 서정적이며 낭만적인 흐름으로 이어지다 다시 초반부 웅장한 선율의 격정적인 연주로 마무리되는 곡이다. 특히 중반부의 금관 악기와 바이올린의 고음 연주가 만들어 내는 서정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이어 소프라노 한예진과 베이스 임철민의 ‘흰 백합화’, 메조소프라노 김선정과 테너 강무림의 ‘아리랑 고개’가 이어졌다. 두 곡 모두 민요 ‘아리랑’과 ‘도라지타령’ 등에서 선율을 따온 곡들이라 친숙한 느낌이다.
마지막 곡으로 안익태 일생 역작이자 이날 음악회의 하이라이트인 ‘한국 환상곡’이 연주됐다.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연주와 국립합창단, 숭실대콘서트콰이어 그리고 이날을 위해 맹연습을 한 220명의 국민참여합창단이 무대에 나섰다. 28분에 달하는 한국 환상곡은 우리의 굴곡진 역사를 표현하는 듯 때론 청초하고 깨끗하게, 절정에서는 웅장하면서도 무겁게, 마지막엔 ‘희망’이 담겨 있었다. 특히 곡의 막바지 부분 ‘만세, 만세’ 파트에서는 온몸의 전율이 날 정도였다. 곡이 끝나기도 전에 모두가 기립했고, 환호를 넘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감동이 물결쳤다. 관객들 일부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렇게 음악회는 막을 내렸고, 그곳에 있는 모두는 하나가 됐다.
특별취재팀
공연의 백미 국민참여합창단 연예인도 유명인도 없지만…음악열정 똘똘 진짜 ‘국민합창단’ 이번 음악회의 ‘백미’는 단연 국민참여합창단이었다. 일반국민 220명을 모집해 구성한 국민참여합창단은 남녀는 물론, 최연소 9세부터 최고령자 80세까지 세대를 아울렀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참가자들은 김호식 지휘자의 지도하에 총 6회 20시간의 맹연습을 거쳤다. 홍보효과를 위해 유명인사와 연예인들이 대거 참여하곤 하는 여타의 이벤트성 국민합창단과는 달리, 이번 안익태 음악회를 위해 모인 국민참여합창단은 그야말로 순수 국민합창단으로서 의미를 더했다. ‘국민참여합창단’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일요신문>은 음악회를 전후해 합창단원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음악회 막이 오르기 직전까지도 단원들은 이미 닳아버릴 대로 닳아버린 악보를 들고 마지막 연습 중이었다. 합창단 대기실은 이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클래식 메카인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다는 것에 다들 들떠있었다. 경기도 구리에서 왔다는 박수제 씨(68)는 “평소 클래식에 관심이 깊었다. 모집 공고를 보자마자 무작정 나 홀로 지원했다”라며 “무엇보다 한 평생 한 번 서기도 힘든 예술의전당의 무대에 선다는 것에 감격스럽다”라고 말했다. 단원 중에선 경남 통영에서 올라온 참가자도 있었다. 서울에서 무려 6시간이 넘는 거리지만 이날 공연을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박광옥 씨(59)가 그 주인공.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지역 교회에서 지휘 봉사를 하고 있다는 클래식 마니아 박 씨는 “이번 음악회 준비 과정은 때론 벼락비와 뙤약볕에 맞서는 힘든 과정이었지만, 너무나 보람된 시간이었다”라며 “무엇보다 안익태 선생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이 뜻 깊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합창단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단원들은 가평소년소녀합창단원 어린이들이었다. 최연소 9세부터 15세까지 총 33명의 어린이들은 합창단 맨 앞에 자리했다. 이들을 이끌고 참가한 정민희 지휘자는 “우리 아이들은 연습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빼 먹지 않고 성실히 참여했다”라며 “사실 ‘한국 환상곡’은 아이들에게 쉽지 않은 곡이었지만, 연습하러 오가는 시간 내내 수다 떨었던 것 까지 하나하나가 다 좋은 경험이었고 추억이었다”라고 말했다. 공연을 마치고 나온 최인채 씨 가족은 공연장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 중이었다. 최 씨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과 아내까지 일가가 총 출동했다. 가족이 모두 무대에 섰던 만큼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최 씨는 “무엇보다 두 딸에게 좋은 경험이었고, 우리 가족에게 영원히 기억될 순간”이라고 감격해 했다. 이군자 씨(73)는 평소 합창단 활동을 하던 친구들과 함께 국민참여합창단에 참여했다. 이 씨는 “무엇보다 친구들과 함께해 너무 행복했다”라며 “죽기 전에 이 무대에 올랐다는 것이 너무나 감격스럽다”라고 전했다. 이 씨는 가족들에 둘러싸여 듬뿍 축하를 받고 있었다. 특별취재팀 |
귀빈들 만나보니 정의화 국회의장 “우리의 애국가 우리가 지켜야” 안익태의 대표적 전기 <안익태 그 영광과 슬픔> 저자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안익태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직접 만난 일이 있다. 그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얼마 있지 않아 안익태 추모 음악회를 서울 광화문에서 하는 것이다. 그제야 ‘아 안익태 선생이 돌아가셨구나’라고 느꼈다. 제네바에서의 만남이 마지막이 된 셈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김 전 국장은 “안익태 선생은 세계적인 작곡가이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살아 있을 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국내 음악가들의 시샘으로 변방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살아 있을 때 좀 더 잘해드렸어야 하는 마음이 든다. 이제라도 이렇게 기념 음악회를 성대하게 개최하니 참으로 뜻 깊다”라고 덧붙였다. 이이재 새누리당 의원도 “최근 <연평해전>이란 영화가 젊은이들 애국심을 고취시켰는데, 오늘 공연도 애국심을 느끼게 하는 음악회라는 점에서 시의 적절하고 의미가 있다”며 음악회를 높게 평가했다. 애국가에 대한 즉석 난상토론도 이어졌다. 애국가 작사가가 윤치호인지, 안창호인지부터 애국가가 현재 공식 국가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점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이들은 애국가를 공식 국가로 지정해야 한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참석한 정의화 국회의장은 “애국가를 공식 국가로 지정하는 법률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현재는 관습법으로 국가로 지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우리의 소중한 애국가를 더욱 지킬 필요가 있다”라고 전했다. 최근 완성된 <안익태 도록>도 단연 화제였다. ‘안익태 전문가’로 꼽히는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음악사 전공)와 안익태 기념재단이 함께 제작한 <안익태 도록>은 안익태의 생전 언론보도들과 각종 사진, 역사적 자료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이를 본 참석자들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안익태의 생애와 업적에 더욱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의화 의장은 “안익태 선생을 단순히 애국가 작곡자로 보는 인식을 넘어 세계적인 작곡가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릴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안익태 선생 서거 50주년을 맞아 <일요신문>과 안익태 기념재단이 개최한 이번 음악회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번 음악회를 후원한 문화체육관광부 김종덕 장관은 “애국가가 아직 법에 의해서 국가로 정해지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국가가 아닌 건 아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서 이런 공연을 하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공연을 문체부에서 후원하게 돼 저희도 기쁘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나가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2015 안익태 기념 음악회에는 정의화 국회의장,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 문희상 새정치연합 의원,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 황인자 새누리당 의원,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 이이재 새누리당 의원, 이홍구 전 총리, 장상 전 민주당 대표, 김덕룡 전 의원, 김종덕 문화체육부 장관, 한헌수 안익태기념재단 이사장(숭실대학교 총장), 박종순 숭실대학교 이사장, 미구엘 안 유족대표(외손자), 심상기 서울미디어그룹 회장, 신상철 일요신문 대표 등이 참석했다. 특별취재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