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구파발 검문소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를 관할한 은평경찰서가 사건축소 의혹을 받고 있는 가운데, 서울경찰청은 감찰조사에 착수했다. 사진은 뉴스화면 캡처.
지난 8월 25일 오후 5시께 서울 은평구 진관동 구파발 군경합동검문소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 검문소 제1생활실에서 박 아무개 경위(54)가 자신이 휴대하고 있던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꺼내 실탄을 발사해 박세원 상경의 왼쪽 가슴을 맞힌 것이다. 동료 의경의 119 신고로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박 상경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
경찰은 사고 직후 ‘조끼에서 권총을 빼다 우발적으로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곧 박 경위, 박 상경과 현장에 같이 있었던 의경들을 조사한 후에는 ‘장난으로 의경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는데 실탄이 발사됐다’고 말을 조금 바꿨다. 이어 경찰은 브리핑을 통해 권총 장전이 잘못돼 공포탄이 아닌 실탄이 나간 것으로 보인다며 박 경위에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박 경위의 행동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다.
경찰 조사결과 박 경위가 갖고 있던 38구경 리볼버 권총 탄창에는 12시 방향에 첫 번째, 2시 방향에 두 번째 실탄이 장전돼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총기 관련 규정에 따르면 총 6발이 들어가는 38구경 권총 탄창은 12시 방향의 첫 번째 약실은 비워두고 두 번째 약실은 공포탄, 3~6번째 약실은 실탄을 장전하도록 돼 있다. 38구경 권총은 엄지손가락으로 노리쇠를 뒤로 당겨 장전(칵킹·Cocking)하면 탄창의 2시 방향(두 번째 약실)에 있는 총알이 반시계 방향으로 자동 회전해 12시 방향의 첫 번째 약실로 들어가 격발 대기 상태가 된다.
원칙대로라면 격발했더라도 공포탄이 발사됐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박 경위의 총엔 두 번째 약실에 실탄이 들어 있었고 결국 참사가 발생했다. 박 경위는 경찰 조사에서 “권총 노리쇠를 기준으로 탄창의 첫째, 둘째 칸은 비어 있고 셋째 칸은 공포탄, 넷째 칸부터는 실탄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고 방아쇠를 당겼는데 실탄이 발사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경위는 17년 전 총기관리 규정이 바뀐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박 경위가 경찰로 채용된 지난 1989년에는 격발 시 가장 먼저 총탄이 발사되는 약실(두 번째)을 비워둬야 했다. 하지만 지난 1998년 7월 규정이 바뀌면서 이 자리에 공포탄을 넣고 시계방향으로 연이어 실탄 4발을 약실에 넣도록 됐다. 그나마 박 경위는 자신이 잘못 알고 있던 규정조차 지키지 않았다. 사건 당시 그가 쥐고 있던 권총의 탄창은 평소보다 반시계 방향으로 두 칸씩 돌아가 있었다. 즉 첫 격발 때부터 실탄이 발사되게끔 돼 있던 것이다. 통상 전임자로부터 근무 교대 시 반드시 권총의 장전 순서와 위치, 총탄 종류 등을 확인해야 하지만 이를 사실상 건너뛴 탓이다.
경찰이 사용하는 38구경 리볼버 권총. 범행에 사용된 총기 아님.
박 경위는 의경들이 생활실에서 자신만 빼놓고 빵을 먹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자 의경들을 일렬로 세운 뒤 “나 빼고 간식 먹었다”, “총은 이렇게 나가는 거야”라며 박 상경을 향해 격발했다. 특히 그는 경찰이 자체적으로 권총의 방아쇠 부분에 고정해 놓은 고무 패킹까지 제거하고 총을 쐈다. 과거에도 박 경위는 두세 차례 의경들을 상대로 이 같은 위험한 ‘권총 장난’을 친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당시에는 고무 패킹은 제거하지 않아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았다. 경찰 생활 26년의 베테랑이 장전 순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고무 패킹을 제거한 후박 상경의 가슴 부위로 총구를 겨눴다는 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군인권센터는 8월 26일 구파발 검문소 총기사고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가해자인 경찰관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는 점만 봐도 경찰의 제식구 감싸기”라며 “의경의 죽음을 외면하는 경찰의 축소 수사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박 상경의 동국대학교 동문들도 27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비통함을 말하기 전에 이 죽음을 축소하려는 경찰 수사를 믿을 수 없다. 장난이고 실수라고 하기엔 석연찮은 부분이 너무 많다”며 “명백한 가혹행위이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명백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미필적 고의란 자신의 어떤 행위로 인해 범죄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렇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그 행위를 행하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박 경위가 과거 몇 차례 우울증을 앓은 전력이 있는 것은 물론 지난 1996년과 2009년 각각 복무이탈과 품위손상행위로 인해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는 등 문제가 많았다는 사실도 드러나면서 경찰의 부적절한 직원 관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다른 경찰 간부는 “박 경위는 영남 지역에서 징계를 당하고 검문소로 왔다고 하더라. 이번 총기 사고 전에도 해당 검문소에서는 최근 탈영병도 발생했다. 평소 욕을 자주 하고 ‘시한폭탄’이라는 별명까지 붙어 있던 인물”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애초 사고 위험이 다분한 직원을 검문소에 보내 총기를 다루게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밖에 경찰의 부실한 총기 관리 교육 및 실태 등이 근본적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박 경위는 조울증이 있었다고 한다. 경찰에서 정기적으로 적성검사를 실시하지만 형식적이라 박 경위같이 총기를 다루기 위험한 인물들을 걸러내지 못한다. 근무 교대할 때 총기 등을 형식적으로 인수인계하고 잘 확인도 안 한다”며 “또 경찰 사격장에 가면 일단 공포심부터 든다. 총이 고정이 안 돼 있는 등 총기 안전 관리 실태가 엉망이다”고 말했다.
범죄 심리 전문가인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54세이고 경력 20~30년의 경찰이 장전 순서를 몰랐다는 것도 의문이고, 만약 몰랐다고 하더라도 안전장치인 고무 패킹을 왜 뺐느냐를 생각하면 상당히 어이없는 일이다. 총기 안전 관련 기본 수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며 “그렇다면 이번 행위가 ‘죽어도 상관없다’라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논리적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 박 상경과 박 경위의 평상시 사회적 관계가 어땠느냐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