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노인 폭행사건으로 2년간 칩거했던 배우 최민수의 방송복귀는 또다시 PD 폭행사건에 휘말리며 위기를 맞았다.
최민수는 촬영을 지휘하던 PD 가운데 한 명인 A 씨의 턱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촬영 현장에는 수십 명의 스태프가 있었지만 폭행은 미처 말릴 새 없이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관계자 등에 따르면 당시 A 씨는 평소 거친 표현을 쓰는 최민수에게 발언의 수위를 조금 낮춰 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접한 최민수가 격하게 반응하면서 마찰을 빚었다.
폭행 사건으로 이날 예정된 촬영은 취소됐고 A 씨는 곧바로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다. 구체적인 피해 정도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공개된 촬영 현장에서 일어난 폭행으로 인해 A 씨는 물론 스태프들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당시 사건 현장에는 상당히 많은 목격자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 폭행 사건은 순식간에 외부로 알려졌다. 하지만 방송사인 KBS와 프로그램 외주제작사인 코엔은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선을 긋기 바빴다. “현장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당사자끼리 원만히 해결했다”고도 덧붙였다. 피해자인 A 씨는 병원에서 치료까지 받는 상황이었지만 그보다는 ‘최민수 폭행’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는 걸 극도로 꺼리는 듯한 인상까지 줬다. 사건 무마에 급급한 모습은 오히려 더 큰 비난을 자초했다.
제작진 내부에서는 2008년 최민수가 노인폭행 사건을 일으키고 2년여 동안 칩거했던 점을 들면서, 그를 걱정하는 동정론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이 같은 대응은 오히려 여론을 냉각시킨 결과로 이어졌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더 챙기는 듯한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급기야 폭행 가해자를 TV에서 보고 싶지 않다는 여론이 거세지면서 방송까지 결방되는 파행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비난이 잦아들지 않자 결국 최민수는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 A 씨가 <나를 돌아봐>의 외주제작사 코엔에 소속된 연출자라는 점에서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긴다. A 씨는 폭행 피해 사실이 공개된 직후 취재가 시작되자 “그런 일(폭행) 없다”고 사건 자체를 부인해왔다. 병원 치료까지 받는 상황이었지만 그 사실마저도 감췄다. 방송가에서는 “독립 PD의 처지에서 누구라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비하·막말 논란에 이어 촬영 중 폭행사건으로 다시 한 번 도마에 오른 KBS 예능 <나를 돌아봐>는 지난 23일 최민수의 프로그램 하차를 결정했다.
연예계 한 관계자는 “A 씨는 예능 프로그램 연출로 잔뼈가 굵은 실력자다. 그런 연출자마저도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위치였을 것이다. 방송사가 ‘갑’이라면 외주사가 ‘을’, A 씨는 그 아래 놓인 ‘병’에 해당하는 상황이지 않았겠느냐. 폭행 사건을 덮으려는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아래서 A 씨가 자신의 피해사실이나 입장을 밝히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본다”고 밝혔다.
만약 A 씨가 외주제작사가 아닌 KBS 소속 PD이었다면 상황이 달라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2010년 7월, KBS에서는 비슷한 일이 일어난 바 있다. 하지만 대처법은 전혀 달랐다. 당시 KBS 1TV 드라마 <근초고왕>의 주인공을 맡고 있던 배우 감우성이 연출자를 폭행하고 폭언까지 일삼아 논란에 휩싸였다. 감우성은 이를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당시 KBS 드라마국의 PD들은 방송사에 감우성의 <근초고왕> 출연을 배제해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결국 감우성은 <근초고왕> 이후 4~5년 동안 드라마 출연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건 이후 KBS에는 한 번도 출연하지 못했다. 이번 최민수 폭행 사례와는 전혀 다른 대응이다.
또 이번 사건을 우발적인 단순 폭행 사건으로 보지 않았다. 제작 현장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고질병이라고 짚었다. 협회는 “현장에서 계속 욕설을 한 스타 최민수가 독립PD에게 행한 ‘갑질’로밖에 볼 수 없다”며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을 때마다 지금처럼 원만히 해결했다고 알리며 방송사와 제작사, 가해자가 우월한 지위와 힘을 이용해 힘없는 약자를 굴복시킨 선례가 있었기에 같은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