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 신인드래프트가 끝났다. 10개 구단에서 선발된 2차지명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야구장 밖 생활과 가정환경까지 본다
잘 뽑은 선수 하나가 앞으로 구단의 10년 성적을 좌우할 수도 있다. 그래서 스카우트들은 1년 내내 전국의 야구장을 누비고, 매의 눈으로 선수들을 하나하나 살핀다. 선수를 뽑을 때는 당연히 실력과 재능이 영순위. 팀에 현재 어느 포지션의 선수가 가장 필요한지, 또 가까운 미래에 어떤 선수들이 남아 있을지 두루 고려해 신중하게 유망주들을 고른다.
군 제대 후 맹활약 중인 신인왕 후보 구자욱.
성적 못지않게 중요하게 보는 부분도 있다. 인성과 가정환경이다. 엄청난 재능을 지니고도 야구 외적인 문제로 실력 발휘를 못한 선수들이 종종 존재했기 때문이다. 최고의 하드웨어와 강속구를 갖췄던 A 선수는 어두운 가족사와 과거 폭행 전과 때문에 모든 구단이 지명을 망설였다. 결국 한 팀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 잘 키우면 엄청난 선수가 될 것”이라며 큰 맘 먹고 지명했지만 거센 비난 여론에 부딪혀 곧 방출해야 했다.
최근 야구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화제에 올랐던 B 선수도 고교 시절 촉망받는 타자였지만, SNS(사회관계망서비스)로 소위 ‘사고’를 끊임없이 치고 감독에게 항명해 많은 구단의 리스트에서 삭제됐다. 일말의 기대감으로 B 선수를 선택했던 또 다른 용감한 구단 역시 1년도 안 돼 팀에서 내보냈다.
이런 과정에서 오히려 평판이 와전돼 억울한 누명을 쓰는 선수도 생긴다. 신고선수 신화를 썼던 C 선수도 그랬다. 고교 시절 발목을 다친 뒤 “프로에 갈 때까지 다시 부상을 당하면 안 되니 경기 중에도 빨리 뛰지 마라”는 감독의 지시를 받고 일부러 1루까지 슬렁슬렁 뛰었다가 스카우트들 사이에 “재능은 차고 넘치는데 게으르고 투지가 없다”고 소문이 나 지명을 받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는 야구밖에 모르는 연습벌레였다.
2006년 2차지명 1순위로 삼성에 선발된 차우찬. 그는 팀 내에서 사람 좋고 예의 바르기로 첫 손에 꼽히는 선수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류 감독은 이밖에도 “뽑을 당시에 얼마나 잘했는지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얼마만큼 성장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것도 선수를 스카우트할 때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그래서 요즘은 감독이 직접 선수를 보고 선발하는 케이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넥센은 구단주인 이장석 대표가 신인드래프트 테이블에 스카우트팀과 동석해 지명을 진두지휘한다.
이장석 대표는 고교 야구에 대해 웬만한 감독 뺨치는 식견과 안목을 뽐낸다. 거액의 외부 FA(자유계약선수)를 영입하기 어려운 구단 특성상, 신인을 육성해 1군 전력으로 키우는 일이 중요하기에 더 그렇다. 넥센에서 한현희, 조상우, 김하성까지 매년 주목할 만한 신인들이 ‘툭’ 튀어나오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넥센은 이번 드래프트에서도 1라운드부터 6라운드까지 모두 고교 졸업예정 투수로만 선발하는 과감함을 보였다. 올 시즌 마운드 때문에 고생한 이 대표의 승부수다.
# 신고선수 자리도 경쟁 치열한 시대
신인드래프트가 열리는 날이면, 고교 유니폼을 입은 선수 여러 명과 가족들이 직접 현장을 찾기도 한다. 대부분 프로 지명을 확신하는 이들이다. D 야구 관계자는 “어느 정도 전국적으로 인정받은 선수들은 지명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다. 몇 라운드에서, 어떤 팀에, 전체 몇 순위로 지명을 받느냐를 놓고 자존심 싸움을 벌인다”며 “한 라운드씩 뒤로 밀릴 때마다 계약금이 수천만 원씩 깎여 나간다. 억대 계약금을 받고 싶으면 1·2라운드 정도 안에는 이름이 불려야 하기 때문에 선수나 부모들 모두 초조하게 기다린다”고 귀띔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프로 계약금은 야구선수 한 명을 물심양면으로 키워낸 부모가 그 희생에 대해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다. 선수가 은퇴할 때까지 평생을 따라 다니는 훈장이자 꼬리표이기도 하다. 돈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그리고 이름이 더 먼저 불리면 불릴수록, 입단 이후 코칭스태프의 관심과 기대를 받을 가능성도 더 많아진다.
물론 어느 팀 유니폼을 입게 되는지도 중요하다. E 구단 관계자는 “지명 받는 선수들도 이미 프로야구 10개 구단에 자신의 포지션이 필요한 팀이 어디인지, 그리고 자신의 포지션에 어떤 선배들이 뛰고 있는지 다 파악하고 있다. 이미 자신을 지명할 팀들도 대충 예상하고 드래프트에 참가한다”며 “아무래도 투수가 약한 팀에 뽑힌 투수들은 좀 더 희망을 가질 것이고, 주전 유격수가 허약한 팀에 뽑힌 유격수는 곧바로 자리를 잡아 보겠다는 의지가 더 클 것이다. 반대로 내야 자원이 풍부한 팀에 선발된 내야수들은 상대적으로 좌절을 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명회의가 끝날 때까지 자신이 호명되지 않는다면? 남은 선수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E 관계자는 “예전에는 대부분 대학에 진학했다. 실제로 고교 졸업 후 지명을 받지 못했다가 대학에서 실력을 발휘해 4년 뒤 높은 순번으로 선발된 선수들이 적지 않았다”며 “그러나 요즘은 대학은 거의 최후의 보루다. 신고선수로라도 프로에 발을 들여 놓으려 하는 선수들이 더 많다”고 했다.
이유가 있다. D 관계자는 “냉정하게 말해 선수들이 옛날처럼 프로 유니폼을 입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기고 신기해하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TV만 틀면 메이저리그 경기가 나오고, 그 안에서 KBO리그 출신인 류현진과 강정호가 맹활약하고 있는 시대 아닌가”라며 “요즘은 고교 선수들도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면 프로 선수들처럼 세리머니를 한다. 프로와의 벽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충분히 길을 뚫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고 귀띔했다.
F 야구 관계자 역시 “손시헌(NC), 김현수(두산), 서건창(넥센)처럼 어렵게 시작한 선수들이 충분히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며 “이제는 지명을 못 받은 선수들도 곧바로 각 구단 트라이아웃을 알아보고, 구단들도 좋은 신고선수 영입에 심혈을 기울인다. 대학이라는 명예와 4년의 기다림보다 실리를 먼저 챙기려는 세대다”라고 증언했다.
물론 무조건 프로의 문부터 두드리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G 야구 관계자는 “사실 신고선수로 입단해 빛을 본 선수들보다 그렇지 못하고 금세 유니폼을 벗는 선수가 훨씬 많다”며 “오히려 대학에 가서 꾸준히 경기에 나갔다면 4년간 더 성장할 수도 있는 선수들이 프로에 곧바로 갔다가 경쟁력이 없어서 더 빨리 은퇴하는 일도 많다”고 했다.
이런 현상 때문에 대학 야구의 수준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여러 차례 나왔다. 특히 왼손 투수와 오른손 거포는 웬만하면 프로에서 다 뽑아가기 때문에 대학 야구에서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결국 대학에서 야구부원들에게 주는 혜택도 점점 적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학교에서 장학금을 주는 선수의 숫자가 턱 없이 줄어들었고, 학점 2.0 이상을 받지 못하면 다음해 선수 등록을 못 하는 제도도 생겼다. 학창시절 늘 야구만 하던 선수들이 이제 오전과 오후로 운동과 학업을 각각 나눠서 하거나 1주일에 3일 훈련과 3일 수업을 병행해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선수들이 ‘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뗀 채 계약금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한 신고선수의 길로 접어든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밀려나는 노장들 구단 프런트 자리 ‘똑똑’ 프로야구 10개 구단이 새로 맞아들일 식구들을 모두 선택했다. 이제 지명된 신인 선수들은 저마다 꿈에 그리던 프로 생활을 준비하는 설렘으로 가득 찰 시기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일부 선수들은 서서히 정든 유니폼과 작별할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이 때문에 구단들은 보류선수 명단을 제출하기 한참 전에 방출 대상자들에게 미리 통보한다. 다른 소속팀을 찾을 수 있는 길을 하루라도 빨리 열어주기 위해서다. 나이가 꽉 찼는데 아직 보여준 게 별로 없는 선수들은 그 시기가 왔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어떤 신인들이 뽑혔는지 명단만 봐도 자신의 운명이 짐작이 간다. 한때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로 군림했던 베테랑 선수들 역시 현 소속팀에서 더 이상 기회가 없다고 판단하면 먼저 방출을 요청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적을 노릴 수 있는 선수들은 극히 한정적이다. 대부분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한다. 가장 좋은 케이스는 소속팀에서 프로야구 코치로 남는 것, 그 다음이 구단 프런트로 변신해 일단 다른 분야의 경험을 쌓는 것이다. 그동안 팀 성적에 공헌을 많이 했던 선수들에게 구단이 해줄 수 있는 배려다. 또 대학이나 고교에서 지도자 자리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도 행운이다. 다만 이런 기회 역시 야구를 어느 정도 잘했던 소수의 선수들에게만 열려 있다. 대부분의 무명 선수가 녹록지 않은 현실과 맞닥뜨린다. 야구와 관련한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거나, 그것도 아니면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다른 길을 열어야 한다. 그래서 겨울이 더 추워진다. 심지어 요즘은 시즌 도중에도 신고선수를 정식선수로 전환시키기 위해 기존 선수를 방출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많은 구단이 이런 경우를 대비해 보류선수 몇 자리를 아예 비워두곤 하지만, 지정된 인원 65명을 꽉 채워 시즌을 시작했던 한화는 개막 이후 총 다섯 명의 선수를 내보냈다. 투수 임경완, 마일영, 정민혁과 내야수 전현태, 외야수 추승우가 그들이다. 그 자리에는 투수 박한길이나 내야수 임익준처럼 정식선수로 등록된 선수들이 이름을 올렸다. [은] |
하위 라운드 선수들 희망가 신고출신 김현수 두산의 간판으로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그럼 한국은 어떨까. 올해 대한야구협회에 등록된 66개의 고교팀 등록선수는 2351명. 지난해 졸업생 가운데서는 614명 중 61명이 프로 지명을 받았다. 10%가 프로행에 성공했으니 미국보다 비율만으로는 훨씬 높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 중에서 1군 붙박이 주전 선수가 나올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프로 유니폼을 입긴 했어도, 프로 지명은 끝이 아니라 진짜 경쟁의 시작이라는 의미다. 한화 김태균, SK 김광현, KIA 양현종, 삼성 김상수처럼 1차지명으로 연고지역 구단의 선택을 받은 선수들은 확실히 출발부터 유리하다. 코칭스태프와 팬들의 집중적인 관심 속에 한껏 기량을 펼쳐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렇다고 모든 1차지명 선수가 이들처럼 프로 정상급 선수로 자리를 잡는 것은 아니다. 고교 시절 혹사로 인해 정작 프로에 와서는 부상으로 신음하는 선수들도 있고, 꾸준히 1군에서 경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도 끝내 성장하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다. 반대로 신인드래프트에서 고배를 마셨던 선수들이 오히려 끈기와 노력을 앞세워 프로에서 성공하는 일도 많다. ‘화수분 야구’로 유명한 두산이 대표적인 요람이다. 간판타자 김현수는 신고선수 출신이고, 에이스 유희관은 2차지명 6라운드에서 선택된 선수다. 주전 포수 양의지는 8라운드, 주전 2루수 오재원은 9라운드, 주전 중견수 정수빈은 5라운드에서 각각 뽑혔다. 이뿐만 아니다. 삼성 장원삼은 현대가 2002년 2차지명 11라운드에서 마지막으로 고른 카드였다. 같은 팀 주전 포수 이지영과 주전 중견수 박해민도 신고선수 출신이다. 현재의 지명 순위가 10년 후의 운명까지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