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클로드 슈미트는 <유령의 역사>를 통해 중세의 종교문화와 유령에 관해 널리 퍼졌던 그 시대의 믿음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중세 서구사회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맺고 있던 관계를 생생하게 재구성해낸다.
사람이 죽은 뒤에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 나타난다는 ‘유령’이나 ‘귀신’에 관한 믿음이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그 만큼 ‘유령’이나 ‘귀신’은 오싹하지만 사람들에게 친숙한 존재다.
자신의 원한을 갚아달라고 하소연하기 위해 산 자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원혼’도 있고,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무서운 ‘악령’도 있다. 산 자의 피를 빨아먹으려고 주검들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좀비’나 ‘강시’도 있고, 사랑하는 연인의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애절한 유령도 있다. 바다에는 영원히 뭍에 정박하지 못하고 떠다녀야 하는 ‘유령선’이 있고, 강이나 못의 깊은 물속에서는 그곳에 빠져 죽은 ‘물귀신’들이 산 자들을 붙잡아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이처럼 ‘유령’은 언제나 우리의 삶과 가까이 존재했으며, 상상력의 주요한 원천이 되어왔다. 모든 상상이 그러하듯이 유령에 대한 ‘사회적 상상’도 그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삶과 사고를 반영할 뿐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오늘날 유령과 같은 죽은 자의 귀환에 관한 상상은 유독 서구 기독교 문화에서 풍부히 존재한다. 합리주의를 내세운 문화의 특징과는 반대로 오히려 초자연적 존재에 대해 너무 쉽게 믿는 경향마저 보여 유령에 관한 믿음이 기독교 문화가 지닌 고유한 특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세 초기까지만 해도 기독교 문화는 죽은 자가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을 단호히 부정했다. 죽은 자의 귀환에 관한 믿음이나 의식을 고대 이교의 잔재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기 1000년 이후에는 상황이 바뀌어 유령이야기가 수록된 문헌들이 급증했다. 그리고 교회가 오히려 앞장서서 유령에 관한 이야기들을 퍼뜨리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령이야기가 죽은 자를 위한 전례를 장려하고, 신앙심을 높이고, 수도원과 같은 종교기관으로의 기부를 촉진해 사회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중세에 유령을 묘사한 도상들도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중세의 문헌들에는 유령을 묘사한 삽화나 가장자리 그림 등이 풍부하게 존재하는데, 저자는 그러한 묘사에서 사용된 표현기법을 6개의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유령을 부활한 인물처럼 묘사하는 ‘라자로 유형’이고, 둘째는 살아 있는 인간처럼 묘사하는 ‘생자형’이다. 유령을 벌거벗은 작은 아이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영혼형’도 있으며, 오늘날 만화나 판타지영화 등에 묘사되는 것처럼 흐릿한 반투명의 존재로 묘사하는 ‘환영형’도 있다. 유령을 부패된 상태로 움직이는 시신으로 묘사한 ‘시신형’도 있으며,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나타낸 ‘불가시형’도 있다.
이 책은 유령을 소재로 중세 사람들이 내면에 지니고 있던 세계관과 가치관, 상상력 등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어 중세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지적인 성찰로 우리를 안내해준다. 게다가 중세의 다양한 문헌들에 수록된 유령이야기들을 풍부하게 맛볼 수도 있다. 그리고 유령과 같은 상상의 산물로도 역사 서술이 가능할 뿐 아니라, 그러한 ‘사회적 상상’이 인간의 인식태도와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처럼 이 책은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학문적 성취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장클로드 슈미트 지음. 주나미 옮김 오롯. 정가 2만 50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