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사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가운데, 서초동 주변에서는 여권 실세들의 비리 내용까지 은밀하게 나돌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일요신문 DB
그러나 검찰 일각에선 정치적 의도가 담긴 수사에 대한 반발 기류도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집권 후반기 어김없이 등장하는 여권 실세들의 비리 내용이 조금씩 새 나오기 시작한 것 역시 이와 맞물리며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3월 이완구 전 총리는 부정부패 척결을 부르짖으며 강력한 사정드라이브를 예고했다. 이에 발맞춰 검찰도 포스코, 자원외교 비리 등 동시다발적 수사를 진행하며 다급하게 움직였다. 지난 정권 실세들 이름이 무더기로 거론되며 검찰이 이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지난 정권을 겨냥한 ‘기획 수사’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여권 핵심부가 야심차게 꺼내든 사정 카드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자살로 급제동이 걸렸다. 오히려 성 전 회장이 남긴 이른바 ‘친박 8인 리스트’는 박근혜 정부에 치명상을 입혔다. 박 대통령이 ‘차기’ 주자로까지 생각했던 이완구 전 총리는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 기록을 남긴 채 물러났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장면이 요즘 다시 연출되고 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지난 9월 1일 “올 3월 이후 부패척결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사회 전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고질적 적폐와 부정부패는 아직 근절되지 않고 있다”면서 “부정부패 척결은 검찰의 존재 이유이자 검찰 최고의 임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완구 전 총리가 일성을 던지던 모습과 별반 다름없다. 여기엔 박근혜 대통령 의중이 반영돼 있다는 게 중론이다. 윤호석 평론가는 “사정 카드는 대통령에겐 가장 강력한 무기다. (성 전 회장 자살로) 잠시 접어뒀지만 집권 중반기 국정 장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꺼내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상대로 검찰 움직임 역시 빨라졌다. 검찰은 9월 1일 서울중앙지검 특수 1~4부에 검사 7명을 추가하는 등 인력을 대폭 강화했다. 본격적인 사정을 앞두고 화력을 보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수뇌부가) 지금 진행 중인 수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특수통들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실제로 충원된 면면을 보면 수사를 잘한다는 평을 듣는 검사들이 대부분”이라면서 “올해 연말 검찰총장을 비롯한 주요 지휘부가 교체되기 때문에 그 전까지 실적을 내야한다는 조급함도 밑바탕에 깔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특수 수사가 정치권과 대기업 비리를 주로 다룬다는 점에서 2차 사정 정국의 주요 타깃이 어디인지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인 모습이다.
현재 특수부의 주요 수사 건은 다음과 같다. 특수 1부(농협중앙회 및 대한체육회 비리), 특수 2부(포스코 및 정준양 전 회장 비리 관련 의혹), 특수 3부(KT&G), 특수 4부(국회의원 입법로비). 하나같이 폭발성이 큰 사안들이다. 하나만 제대로 수사해도 ‘대어’가 걸릴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 정준양 포스코 전 회장, 민영진 전 KT&G 사장 등 수사선상에 오른 이들 모두 대표적인 ‘MB맨’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자금 현황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는 검찰은 지난 정부 실세들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박 대통령, 황교안 총리, 김현웅 장관 등의 부정부패 척결 발언에 이은 특수부의 발 빠른 행보가 MB 정권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특수부 수사 종착지가 전 정권 실세들이 조성한 비자금 저수지를 찾는 것이란 얘기가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는 또 다른 수사는 바로 특수 4부의 입법 로비 의혹이다. 앞서 특수부는 박기춘 무소속(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한 바 있다. 현재 특수 4부는 새정치민주연합 중진급 의원 한 명이 특정 단체로부터 돈을 받고 이 단체에 유리한 법안을 발의했다는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야권에선 ‘표적 수사’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검찰은 “원칙대로 수사할 뿐”이라며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또 수사팀은 해당 중진 의원뿐 아니라 같은 당의 여러 의원들이 여기에 연루됐다는 첩보를 입수해 확인 작업 중에 있다. 새정치연합의 한 재선 의원은 “검찰이 지금 여러 명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야말로 흉흉한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우병우 민정수석, 박성재 지검장.
민감한 사안 때문인지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는 “우 수석과 박 지검장 간에 핫라인이 구축돼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수부 지휘 체계의 가장 윗선인 박 지검장이 청와대 민정수석 아래에 있는 상황이라고 들었다”면서 “올해 연말 검찰총장을 노리고 있는 박 지검장으로선 박 대통령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우 수석 지시를 거부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선 지금의 사정 드라이브에 대한 비판도 심심찮게 들린다. 앞서의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포스코 수사에 착수한 지 6개월이 넘었지만 주요 피의자 영장이 계속 기각되는 등 부실한 부분이 너무 많다. 처음 떠들썩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실적을 내고 있다. 이는 애초에 무리한 수사를 벌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진행 중인 KT&G나 농협 역시 수사에 애를 먹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지금 특수부 칼이 무뎌졌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데 이는 수사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검찰 신뢰만 추락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실 지난 3월 이완구 전 총리의 부정부패 척결 선언 직후 시작된 경남기업 수사 당시에도 비슷한 기류가 형성된 바 있다. 성 전 회장 자살 이후 검찰의 수사 행태가 도마에 오르자 내부에서 정치 논리에 움직였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던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경남기업 수사는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조차 고개를 갸웃거렸던 건이다. 성 전 회장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별건 수사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라면서 “이번에도 수사를 밀어붙이다 자충수를 둘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가 박 지검장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사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김진태 총장의 경우 힘이 상당 부분 빠져 있는 상태다. 대신 박 지검장의 경우 차기 후보군 중에서도 가장 앞서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 총장이 현재권력이라면 박 지검장은 미래권력인 셈이다. 여권 핵심부 입장에선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을 감안한다면 믿을 만한 검찰총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박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의 한 원로 역시 “차기 총장 발탁의 최우선 기준은 현 정부에 대한 ‘로열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박 지검장을 바라보는 검찰 내부 시선이 싸늘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검찰 일각에서는 현재의 사정 정국이 계속될 경우 정권 4년차에 흔히 터져 나오는 대통령 친·인척과 실세들 비리 사건으로 번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 정권을 잡기 위해 시작한 경남기업 수사가 ‘성완종 리스트’로 친박에 불똥이 튀었던 것처럼 무리한 사정 드라이브가 여권 핵심부에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통상 검찰은 여야를 막론하고 광범위한 정치권 동향과 첩보를 수집한다. 여기엔 정치인 비리도 포함된다. 이는 검찰총장에게 ‘직보’된다. 그동안 임기 말에 터졌던 정권 실세들 비리 대부분은 검찰이 이미 갖고 있었지만 눈치를 보다 시기를 조율했던 것들이다. 그것도 아니면 아예 폐기되는 것도 적지 않다. 이는 지금의 검찰이 야권 또는 지난 정권 비리뿐 아니라 ‘현 정부 X파일’도 갖고 있을 것이란 추측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수사는 생물이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특수부가 활발히 움직이면 여권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면서 “인정하기 싫지만 검찰은 정치적 속성이 강한 집단이다. 향후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돌변할 수 있다.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이 검찰을 통제하기란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권 출범 후 핵심 친박 인사들 비리도 꾸준히 확보해왔다. 몇몇에 대해선 바로 내사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검찰이 그동안 작성했던 수많은 보고서 중엔 핵심 친박 인사들 비리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얼마 전부터 일부 내용이 서초동 주변에서 은밀히 나돌고 있다. 여기엔 지난해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논란이 됐던 참모그룹 ‘십상시’ 이름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판도라 상자’가 조금씩 열리고 있는 셈인데, 현재의 사정정국과 맞물리면서 향후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