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천정배 의원(왼쪽)이 신당 창당을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추석 전 신당 플랜을 공개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표(오른쪽)는 “신당이나 분당은 야권을 분열시켜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어서 성공하지 못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신당 플랜 공개 시점은 ‘추석 전’이다. 신당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1차 분기점을 ‘추석 민심’으로 잡은 셈이다. 천 의원 측 관계자는 “이번 추석 민심은 20대 총선의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귀띔했다. 천 의원이 추석 전 승부수를 띄운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초읽기에 돌입한 천정배 신당의 출현으로 9월 정국은 야권 발 정계개편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전망이다.
고민은 많았다. 나설 수도 안 나설 수도 없었다. 애초 천 의원이 잡은 신당 데드라인은 8월이었다. 천 의원 측 내부에선 법조인 중심의 신진 인사를 전진 배치한 뒤 신당추진위원회를 띄우며 ‘뉴 DJ’ 플랜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천 의원이 직접 나섰다. 폭염정국 한복판에서 천 의원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진보적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을 두루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선 ‘박주선 신당’을 비롯해 전남·북 그룹, 외부에선 전직 당직자 탈당 그룹이 움직였다. 하지만 원심력은 점차 약화됐다. 비노계인 박지원·김한길 새정치연합 의원 등의 탈당 움직임은 둔화했다. 친노계 패권주의에 반발해 당무를 거부한 주승용 최고위원은 8월 23일 복귀했다.
그 사이 박근혜 정부는 전격적으로 ‘8·25 남북 합의’를 이뤄냈다. 정권 출범 이후 줄곧 대북 강경노선으로 대치국면을 만들었던 박근혜 정부가 극적인 남북 대화의 길을 연 것이다. 보수진영의 대통령이 ‘보수판 햇볕정책’의 시대를 열자 국정 지지율은 50%를 돌파했다.
야당의 존재감은 바닥을 쳤다. 새정치연합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존재감 낮은 야권이 정국 주도권을 실기하게 됐다”면서도 “정점을 향해 치달았던 당의 원심력이 같이 떨어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푸념했다. 그만큼 야권 발 정계개편의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와중에 천 의원이 승부수를 띄웠다. 사실상 정치생명을 건 도박이다. 천 의원 측 관계자는 “추석 전에 발표하는 것은 확실하다”며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털어놨다. 다만 10월 재보선을 뒤흔들려던 전략은 내년 4월 총선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야의 ‘암묵적 담합’으로 10월 재보선이 축소된 만큼 20대 총선에서 승부를 결정짓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당 플랜은 1·2차로 나누기로 했다. 1차 플랜 공개는 국정감사 전인 7∼9일 사이에 발표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추석 직전으로 다소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차 발표에는 법조인과 시민사회단체,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스포츠 스타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발표 장소를 호남이 아닌 ‘서울’로 정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되는 ‘호남 자민련(자유민주연합)’에 대한 비판을 불식하기 위한 행보로 관측된다.
천 의원 측은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회’ 활동이 마무리되는 ‘10월 중순∼11월’ 창당 발기인 대회를 열 계획도 세웠다. 적어도 내년 2월 전 창당 작업을 마무리 짓겠다는 것이다. 당명은 ‘평화통일민주당’ 등의 아이디어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980년 신군부독재 시절 DJ의 평화민주당과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을 연상케 한다. ‘야당 60년사’ 복원에 돌입한 새정치연합과의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선전포고로 읽히는 대목이다.
비노(비노무현)계 움직임은 한층 빨라졌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9월 2일 한 좌담회에서 “당 혁신은 실패했다. 낡은 진보를 청산하고 새로운 인재를 수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정배 신당을 관망하던 박주선 새정치연합 의원은 친노(친노무현)계 좌장인 문재인 의원이 광주·전남 언론사 기자단과 간담회를 가진 9월 1일 “친노 패권주의와 혁신은 양립할 수 없고, 친노 패권주의가 청산되지 않는 한 당에서 함께 동거할 수 없다”며 문 대표 사퇴를 촉구했다. 문 대표가 “당내 분당은 없다. 제대로 단합하고 혁신해 내년 총선을 이기고 정권을 되찾아오라는 것이 국민이나 호남 민심”이라고 하자 “친노의 오만”이라고 반박한 것이다.
‘탈당 1순위’ 박주선 의원과 천정배 의원 측은 내년 4월 총선 직전 ‘비노 연대’를 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친노계는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문 대표는 자신의 사퇴론을 주장하는 비노계를 향해 ‘지도부 흔들기’라고 규정한 뒤 “신당이나 분당은 야권을 분열시켜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어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범친노계 관계자는 탈당·신당 그룹을 겨냥, “성공할 수나 있겠느냐”며 “호남이란 기득권을 포기하는, 용기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힐난했다.
다른 관계자는 천정배 신당의 실패 요인으로 △차기 대권주자 결여 △약한 조직력 △창당 명분 약화를 꼽았다. 지난 4·29 재보선 승리로 호남의 맹주를 자처하는 천 의원조차 차기 대선주자로 대접받지 못한 상황에서 야권의 구심점이 될 수 있겠느냐는, 이른바 ‘천정배 한계론’이다. 4·29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 때 ‘야권 분열의 원흉’으로 전락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의미다.
약한 조직력도 걸림돌이다. 그간 천정배 신당의 인물 영입을 주도한 염동연·이철 전 의원의 당산동 그룹은 상당한 인물난에 시달렸다. 천정배 신당의 8월 신당 추진이 무산된 결정적 이유다. 지난 1992년 정주영의 국민당을 시작으로, 1997년 이인제의 국민신당, 2002년 정몽준의 국민통합21, 2007년 문국현의 창조한국당 등이 실패한 원인도 약한 조직력과 무관치 않다. 특히 소선거구제 등 제도적 한계도 존재한다. 결선투표가 없는 탓에 거대 양당(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을 제외한 제3당의 당선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게 현실이다. 천정배 신당이 호남 지역주의 정당으로 전락할 것이란 비판도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더 큰 문제는 천정배 신당의 불분명한 목표 지점이다. 천 의원은 그간 야권의 재구성을 통한 정치혁신을 신당 창당 명분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비전은 없었다. 추석 전 1차 발표에서 정치혁신의 명분을 얼마나 획득할지도 미지수다. 친노 패권주의, 호남 민심, 취약한 리더십 등 정치적 수사 차원의 ‘익숙한 반성’만 난무한다.
친노계 관계자는 “천정배 신당은 명분도 실익도 없다”며 “합쳐도 모자랄 판에 야권 분열의 역사를 쓰겠다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천정배 신당이 구민주계 세력과 손을 끊고 2000년 총선 전 DJ가 ‘새 피 수혈론’으로 정국을 돌파했던 기개를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며 “신진 인사 대신 공천 탈락자들의 집합소로 전락할 경우 천정배 신당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천정배 신당의 파괴력은 며칠 후면 공개된다. 성공 여부는 천 의원에게 달렸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