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전농 11구역 재개발 철거지에 건축 폐기물들과 뒤엉킨 ‘석면 가스켓(왼쪽)’이 산재해 있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사는 A 씨는 지난 7월 18일, 전농 11구역 재개발 철거지에서 도시가스관을 발견했다. 그 가스관 끝부분에는 아직 분리되지 않은 채, 건축 폐기물들과 뒤엉킨 ‘석면 가스켓’이 덩그러니 노출돼 있었다. 가스켓은 슬레이트, 텍스, 타일 등과 함께 석면안전관리법에 의해 규정돼 있는 석면함유가능물질 중 하나였다.
해당 구역은 기존의 다세대 주택들이 철거되고,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곳이다. 철거업체는 관계법령에 따라 고용노동청이 지정한 석면조사업체에 검사를 의뢰해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석면함유 폐기물이 현장에서 발견된 것이다. 철거에 참여하는 근로자들은 물론 훗날 거주자들의 안전에도 우려가 되는 상황이었다.
A 씨는 7월 20일, 동대문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구청의 소관부서인 환경과는 A 씨의 민원에 따라, 당시 해당 구역의 석면조사를 담당한 D 사에 석면함유 여부 재조사 결과를 요청했다. D 사가 이전, 구청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석면함유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7월 27일, D 사는 현장에서 발견된 가스켓의 석면함유 여부 분석 결과를 다시 구청에 제출했다. 민원인 A 씨의 우려대로, 해당 가스켓에는 백석면 18%가 검출됐다. 석면정량한계량은 1%로 18배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동대문구청은 석면조사업체 지정기관인 서울고용노동청에 이를 보고했다. 노동청 확인결과, 문제의 D 사는 석면함유 여부 조사 대상인 가스켓을 애초부터 누락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고용노동청 감독관은 이에 대해 “어떻게 지정업체인 D 사가 이를 누락했는지 우리로서도 잘 이해가 안 된다. 이것은 고의든 실수든 큰 문제”라며 “D 사에 대해서는 1개월간 영업정지 명령을 내린 상황이며, 관리감독 소홀 혐의로 철거업체 관계자도 사법처리해 입건했다”라고 설명했다.
D 사의 실수가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관할기관인 동대문구청과 서울고용노동청 역시 관리감독 책임을 피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지난 9월 3일, 현장 실사에 나선 환경보건시민센터 임흥규 석면팀장은 “무엇보다 구청에서 적절한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했다. 구청 담당자들은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개념이 부족했다. 업체들 맘대로 철거가 이뤄진 셈”이라며 “특히 석면 해체작업에 대해선 본인들의 관할이 아니라 고용노동청의 관할로 떠넘기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이미 철거가 완료된 상황에서 가스켓 대다수가 건축 폐기물 사이에 매립돼 있다는 것. 이를 제거하는 작업은 상식적으로도 쉽지 않아 보였다. 적법한 절차라면, 석면 가스켓을 포함한 석면 폐기물들은 건물 해체 및 철거에 앞서, 방진조치를 취한 전문작업자들이 적절한 보양조치를 통해 안전하게 제거돼야 한다. 가스켓만 하더라도 위아래 20㎝의 너비를 두고 잘라내 제거했어야 했다.
일단 노동청은 차선책으로 건축 폐기물 반출과 함께, 매립돼 있는 가스켓을 일일이 걸러낸다는 계획이다. 해당 구역에만 295개의 가스켓이 존재했다. 노동청에 따르면, 아직 철거하지 않는 건축물에 설치된 150여 개의 가스켓과 땅 위로 드러난 80개의 가스켓은 제거됐지만, 나머지 가스켓은 폐기물과 함께 매립돼 있어 일일이 골라내야 하는 상황이다. 동대문구청과 노동청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어느 정도 오차가 발생할 수 있지만, 도면이 있어 대부분 제거가 가능하다.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임흥규 석면팀장은 “철거가 진행된 다음 매립된 가스켓을 제거하는 작업 자체가 상당히 생소하다. 아마 당사자들도 처음일 것”이라며 “폐기물에 매립된 가스켓 반출작업과 동시에 일일이 수거하는 작업은 도면이 있다하더라도 상당히 어렵다고 본다. 폐기물에 뒤엉켜있고, 일부는 파손돼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이를 진행하는 근로자들이 과연 비산방지조치를 취하고 작업에 나서는지 의문이다. 우리가 실사를 간 날은 작업이 중단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확인할 길이 없었다”라며 “분명 지금 이 작업이 단순 폐기물 반출이 아닌, 석면해체 작업의 일환이라면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9월 1일 현장을 찾은 <일요신문>은 별다른 비산방지조치 없이 반출 작업에 나서는 근로자들을 목격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이렇게 석면전문 조사업체가 석면함유 대상을 누락시키는 사례가 이번 일만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서울 강북 재개발 구역 곳곳에서 이 같은 작업이 진행됐고, 또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노동청 관계자는 “이번 사례는 매우 특수한 경우에 해당한다”라며 “다른 지역은 이러한 일들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임흥규 팀장은 “어쩌면 이러한 가스켓 조사 누락이 관행일 수도 있다”라며 “이번 경우는 관계기관의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환경이라면 어떤 조사업체나 ‘감시하는 사람도 없는데, 굳이 도시가스관 검사도 해야 할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반드시 서울 강북 재개발 구역의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문제의 D 사 대표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경험이 부족한 직원들이 나서 문제가 생겼다. 가스켓이 누락된 것은 전적으로 우리 잘못”이라면서도 “가스켓은 볼트너트로 고정돼 있어, 내부의 석면물질이 직접 노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잘못은 인정하지만, 1개월 영업정지는 너무 가혹하다. 현재 다른 지역 검사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폐업 위기”라고 심정을 전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