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야구 이야기가 아니다. 롯데의 ‘인천시 계양산 골프장 사업’ 추진 성적표다. 상대는 인천시와 시민들. 무려 17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이들의 승부는 최근 서울고등법원의 ‘판정’으로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롯데가 ‘이의제기’에 나서 최종 승부는 대법원에서 가려지게 됐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집념과 아집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롯데의 골프장 사업 추진 내막을 들여다봤다.
계양산 시민자연공원 추진위원회 회원들이 8월 17일 인천시청에서 계양산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롯데를 규탄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사진제공=인천녹색연합
계양산(해발 395m)은 인천에서 가장 높다. 한남정맥(백두대간 산줄기의 옛 이름)과 문학산 줄기에서 이어진다. 계양산의 수식어는 다양하다. 인천의 진산(도읍지 또는 각 고을 뒤에 있는 큰 산), 멸종위기종의 서식처, 하루 1만 5000여 명이 찾는 시민의 쉼터…. 그리고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사유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계양산의 총 면적은 384만㎡(약 116만 2623평)이다. 이 가운데 257만㎡(78만 평)은 신격호 총괄회장 소유다. 계양산 전체 면적의 60%에 달한다.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이 ‘적산불하(敵産拂下)’로 소유하고 있던 이 일대를 신 총괄회장이 지난 1974년 매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적산불하란 지난 1945년 해방 이후, 일본이 빼앗았던 땅을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가 국내 기업 또는 개인에게 싼값에 매각한 것을 말한다.
신 총괄회장은 토지 매입 이후 지난 1998년부터 꾸준히 계양산 북사면에 골프장 건설을 추진해왔다. 서울 시내에서 20분 거리인 계양산 골프장의 사업성을 높이 사 신 총괄회장이 제2롯데월드 건설과 함께 직접 챙겨온 사업이다. 일각에서는 “사업 초기에는 시공사인 롯데건설에도 세부적인 내용을 알리지 않은 채 그룹 최고위층에서만 사업을 주도해왔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의 이 ‘숙원 사업’은 17년간 번번이 벽에 가로막혔다. 골프장 건설에서 비롯되는 환경파괴와 공공의 장소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시와 시민단체의 반대 목소리가 컸던 것. 롯데 측은 지난 1998년, 2000년, 2003년 3차례 개발제한구역관리계획을 인천시에 제출하는 등 골프장 사업을 추진했지만, 그때마다 인천지역 40개 시민단체들이 모여 ‘계양산 지키기’에 나섰다. 인천시도 환경보전 문제로 롯데의 계획을 모두 반려했다. 여기에 이 일대가 인근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롯데의 골프장 건설 추진은 난항을 겪었다.
그나마 4번째 도전은 달랐다. 지난 2006년 6월 롯데는 최초 27홀 규모로 계획돼 있던 골프장을 12홀까지 줄이고 그 자리에 시민을 위한 테마파크 조성을 계획했다. 친환경 시공 및 사업으로 환경보전도 약속했다. 롯데는 결국 반대 여론을 뚫고 결국 지난 2009년 당시 국토해양부로부터 개발제한구역관리계획을, 안상수 인천시장으로부터 골프장을 건설할 수 있는 도시계획시설(체육시설) 결정고시를 각각 승인받았다. 마지막 법적 절차인 실시계획인가를 받은 후 착공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또 다른 이유로 난관에 봉착했다. 롯데건설이 인천시에 제출한 입목축적조사(계양산 식수 규모 등) 및 사전환경성검토서 조작 의혹과 ‘롯데상사가 신 총괄회장의 땅을 시세보다 2배 비싸게 샀다’는, 부동산 고가 매입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입목축적조사 조작 의혹에 대해서 검찰은 최종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이 논란은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천 지역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게다가 골프장 건설 반대 입장을 내비쳤던 송영길 인천시장 후보가 시장에 당선되면서 4번째 골프장 사업 추진도 물거품이 됐다. 송 시장은 취임 이후인 지난 2011년 6월, 계양산 골프장 건설예정부지가 일부 포함된 시민휴양공원, 역사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하고 이듬해인 2012년 4월 골프장 건설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이한구 인천시의원은 <일요신문>과 만나 “당시 인천시는 골프장 사업 취소를 하면서도 법적 분쟁 가능성이 큰 데다, 조속한 시민공원 조성을 위해서라도 롯데와의 협상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며 “인천시는 해당 토지에 대해 일부 보상, 일부 영구 위탁하는 방식을 검토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며 롯데를 설득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롯데는 지난 2013년 2월 인천시를 상대로 돌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롯데는 “적법하게 결정된 골프장 건설 사업을 정치적 목적으로 폐기한 것은 시의 재량권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1, 2심 재판부는 “인천시는 골프장 도시계획을 폐지하는 과정에서 공익과 사익의 비교형량(이익비교)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롯데의 골프장 건설은 계양산 자연환경에 부정적 영향이 크고 이는 롯데의 사익보다 우선한다”며 인천시의 손을 들어줬다. 롯데는 이에 반발하며 지난 7월 28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골프장에 대한 ‘집념’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롯데는 지난 2012년부터 계양산 사유지에 철조망을 치고 일부 등산로를 막았다.
인천평화복지연대는 한 발 더 나아가 ‘롯데 불매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이 단체 장정구 정책위원장은 “롯데의 계양산 골프장 건설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이 큰 데도 대화를 하려하거나 상생 방안을 내놓는 것에는 소극적”이라며 “더 큰 문제는 터미널, 복합 쇼핑몰 등 인천시에서 롯데가 벌이고 있는 대형 사업 과정에서도 지역사회와 계양산과 비슷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이한구 시의원은 “계양산 일대는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 인천시가 추진하는 시민공원을 조성하려면 국토교통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국토교통부는 ‘소송이 끝나야 심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라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시민을 위한 공원 조성이 무기한 연장된 상황이다”며 “법원에서도 사익보다는 공익이 우선이라고 판단했고, 시민의 반대 목소리가 큰 만큼 롯데가 통 큰 결정을 내렸으면 한다는 호응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인천시는 롯데의 상고에도 시민공원 조성 계획은 변경 없이 추진할 예정이다. 인천시 시설계획과 이효순 과장은 “골프장 계획 폐지는 재판 전부터 이미 철회하기로 결정한 사항이다. 상고심에서 앞선 재판과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 측은 말을 아꼈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롯데그룹에 문의하라”고 했다. 롯데그룹에 문의하니 “왜 우리한테 물어보나. 롯데건설이 소송을 했으니 거기 문제다”고 미뤘다. 다시 롯데건설에 연락하니 “추후에 답변을 주겠다”고 했지만 ‘추후 답변’은 없었다.
인천녹색연합은 지난 8월 신동빈 롯데 회장에게 서신을 보냈다. 계양산에서 개최되는 반딧불이 축제에 초대한다는 내용이다. 서신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인천시민들과 계양산 반딧불이의 향연을 보시고, 상생 방안을 함께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요.”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