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설립신고는 누구든지 다섯 사람의 명의만 있으면 손쉽게 할 수 있고 주식회사 법인과 비교해 불법성 노출 부담도 적기 때문에 불법 유사수신업체에 악용되고 있다. 서울시에서 제작한 협동조합 홍보 포스터.
A 조합은 “상조행사 예약금 39만 원을 납입하고 회원으로 가입하면 원금 보장에 1~2년 사이 12만 원씩, 35회에 걸쳐 총 420만 원의 배당금을 지급하겠다”라며 “대신 배당금은 물품을 구매하면 준다”는 식으로 꼬드겼다. 그렇게 모여든 조합원만 2만 명이 넘었고, 출자액은 1000억 원을 넘겼다. 전국에 산재한 지사도 100여 개나 됐다.
물론 여느 불법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시점이 넘어가면서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전국에서 피해자가 속출했고, 현재도 계속해서 경찰에 진정서가 접수되고 있다. H 조합장의 계좌에는 횡령한 것으로 추정되는 20억 원가량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조합이 내세운 상조상품과 물품의 공동구매는 명목에 불과했다”라며 “입수한 그들의 강의 자료를 보면, 상품에 대한 설명은 잠깐이고 결국 핵심은 돈 배당 얘기더라. 공동생산과 공동소비의 상호부조가 목적인 협동조합은 연말 잉여금이 남으면 나눠 갖는 것이 정상이나, 이 조합은 그저 불법 배당금으로 사람들을 꼬드긴 셈”이라고 설명했다.
<일요신문>은 이미 수차례 보도를 통해 불법 유사수신업체들을 고발해왔다. 이 보도의 영향으로 지난해부터 협동조합을 빌미로 한 불법 유사수신업체들과 관련해 제보가 들어왔다. 다만 당시만 해도 별도의 법적 조치가 전무했고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지 않아 정보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협동조합을 내세웠다지만, 불법 업자들의 아이템들은 기존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는 이미 배당이 중단된 채, 관계자들이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 G 협동조합의 경우 건강식품 판매를 명목으로 사람을 끌어들였다. 해당 조합은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우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역시 비슷한 처지의 E 협동조합은 앞서의 A 조합과 마찬가지로 상조 상품은 물론 건강검진, 호텔숙박 혜택까지 곁들이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도 했다. E 조합에 당했다는 한 피해자는 “일자리 창출 등 공익성을 내세운 그들의 설명에 홀딱 넘어갔다”라며 “알고 보니, 이는 겉으로 내세운 명목이었을 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불법 유사수신업자들이 협동조합을 내세우는 이유는 지난 2012년 12월 시행된 협동조합기본법과 관련이 깊다. 기본법의 골자는 기존의 3억 원에 달하는 최소 출자금 제한규정을 철폐하고, 최소 200명의 조합원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5명으로 줄였다. 협동조합 설립의 문턱을 대폭 낮춘 셈이다. 협동조합은 일종의 영리기업이지만, 조합원들의 공동생산·소비 및 상호부조에 초점을 맞춘 대안경제 집단이다.
기본법 시행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각종 협동조합 설립 지원책을 내놓으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무엇보다 대안경제체로서 조합의 순기능을 강조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협동조합은 우리 사회에서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로만 굳어지게 됐다.
법인 설립이 용이하다는 점과 이러한 조합의 좋은 이미지는 불법 유사수신업자들에게 있어선 ‘사기에 최적화된 수단’이었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협동조합 설립신고는 아무나 다섯 사람의 명의만 있으면 손쉽게 할 수 있다. 일부 업자들은 본인의 명의가 아니라, 타인의 명의를 빌리기도 한다”라며 “또 기존의 주식회사 법인과 비교해 불법성 노출 부담도 적기 때문에 악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협동조합은 기본법에 있어서 별도의 ‘감독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은 모두 공시 대상이지만, 일반협동조합은 납입액 30억 원 이상, 조합원 200명 이상의 조합만 공시 대상이 된다”라며 “또한 기본법 자체가 법인 설립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사업 자체에 대한 규제는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많다. 특히 기본법에는 감독 규정이 별도로 마련된 것이 없다. 불법 유사수신행위를 하는 협동조합은 별도의 유사수신법령에 따라 처벌받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앞서의 상담가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협동조합들 상당수는 불법 유사수신행위로 돈을 끌어 모아도 조합의 합법적인 출자금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상당수는 법적으로 판단하기 애매한 경우도 있다”라며 “애초에 협동조합일지라도 거액의 배당금을 내세우거나, 조합원들에게 상품을 강매하는 행위를 할 경우 반드시 의심해봐야 한다”라고 신신당부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잠깐 - 유사수신행위란? 유사수신행위는 관련법령에 의해 인·허가를 받지 아니하거나 등록·신고 등을 하지 아니하고 불특정다수로부터 장래에 출자금의 전액 또는 이를 초과하는 금액 지급을 약정하고 출자금을 수입하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에는 일반적인 출자금 외에 예·적·부금과 예탁금, 유가증권 등의 명목도 포함된다. 이러한 명목을 통한 자금조달을 업으로 하는 것을 불법행위가 된다. 누구든 유사수신행위를 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