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원이 넘는 ‘공적기금’을 관리·운용하고 있는 MBC 최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의 부실한 기금운용 실태가 드러났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고영주 신임 이사장(66)은 지난 2012년 8월 방문진 감사로 선임됐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 서울남부지검장, 법무법인 KCL 대표변호사를 역임한 그는 방문진 감사로 임명되면서 “좌편향된 MBC의 공정방송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2012년 당시는 MBC에 ‘내우외환’이 겹친 시기였다. 당시 김재철 전 MBC 사장에 대해 ‘청와대 낙하산’ 논란이 촉발되며 퇴진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MBC 노조는 170일이라는 창사 이래 최장기 파업을 벌였다. 이후 감사원은 MBC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진행하며 김 전 사장에 대한 업무상 배임 혐의를 포착하기도 했다.
이처럼 MBC가 흔들릴 당시 고 이사장(당시 감사)은 방문진에 대한 감사를 실시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감사보고서는 고 이사장이 2013년 4월에 작성한 ‘2012년도 감사보고서’다. 고 이사장이 2012년 8월에 선임된 것을 감안하면 방문진 감사로서 첫 감사보고서를 작성한 셈이다. 방문진은 방송문화진흥회법 제7조 3항에 근거해 연 1회 이상 정기 감사를 실시한다. 방문진 감사가 작성한 ‘방문진 감사보고서’는 대외비로 분류돼 있다. 따라서 외부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2년도 감사보고서’는 MBC의 당시 상황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한다. 김재철 전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통과시키기까지 과정과 MBC 노조의 최장기 파업, 그밖에 MBC 구성원들의 크고 작은 배임 사건이 언급된다. 보고서는 “지난 한 해에 MBC에서는 크고 작은 회계부정 사건들이 줄지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MBC 대주주 방문진은 그 내용을 아예 모르고 있거나 서류를 보고서야 아는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또 “감사과정에서 살펴본 결과 MBC는 대주주인 방문진의 존재를 전혀 개의치 않고 있으며,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보고를 하고 있다”며 “따라서 방문진은 MBC가 원칙에 따라 보고를 하지 않을 경우 구체적인 처벌을 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힌다.
특히 이 같은 방문진 내부 상황에 대한 분석은 ‘방문진 운영 기금’이 허술하게 운용되고 있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MBC 이익잉여금 등으로 조성되는 방문진 운영 기금은 2012년 12월 말 기준으로 810억여 원가량으로 파악된다. 보고서는 “이번 감사에서 드러난 기금관리상의 리스크는 상상을 초월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더욱이 한 사원이 10년 넘도록 근무하면서 800억 원이 넘는 기금을 관리하게 한 것은 일반 기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주목할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일요신문>이 보고서를 통해 파악한 결과, 방문진은 당시 경영관리팀 담당자 1명이 통장, 도장, 법인 인감 등을 관리하며 8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기금에 대해 회계처리, 세무처리, 자금운영, 자금관리, 지출업무 등을 도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회계업무도 담당직원과 사무처장 결재 라인이 끝으로, 막상 방문진의 수장인 이사장은 기금 처리에 대해 어떠한 결재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금 운용은 늘 ‘아슬아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2년 12월 말 기준으로 방문진은 810억여 원의 기금을 일반 예금상품에 633억 원, 국공채에 120억 원, 파생상품에 57억 원을 투자하고 있었다. 이 같은 예금이나 투자는 모두 사무처장 단독 전결로 처리한 정황이 나타난다. 2012년 11월 29일 ‘경영관리담당-12-00178’에 따르면 방문진은 토지주택채권 및 국고채 등 184억여 원을 매도했는데 사무처장 단독으로 처리했다. 또 2012년 12월 28일에는 정기예금과 MMF에 110억여 원의 기금을 예치했는데 이 역시 사무처장 단독으로 처리했다. 이에 보고서는 “이렇게 독단적 결정으로 수백억 원을 운용하게 방치하면 현 조직 체계상 상호 견제·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회계 부정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당시 회계 담당자는 이 같은 막대한 기금 운용을 도맡아 하는데 상당한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방문진 전직 관계자는 “담당자들이 ‘회사 그만두고 싶다’는 얘기를 수차례 한 것으로 안다. 그만큼 방문진 내부 기금 운용 체계가 주먹구구식이고 허술했다”라고 전했다. <일요신문>은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결재를 맡았던 당시 사무처장에게 수차례 연락했지만 휴대폰이 꺼져 있어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처럼 기금이 허술하게 운용되고 있는 가운데, 방문진이 투자를 하는 데 있어서도 한 증권사가 ‘독점’한 것으로 드러나 또 다른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일요신문> 확인 결과 방문진은 수년여 전부터 A 증권사 한 곳에만 독점적으로 투자한 것으로 파악됐다. 2012년 말 기준으로 방문진은 A 증권사 ELS에 57억여 원, 물가연동국채에 39억여 원, MMF 154억여 원 등 250억여 원을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방문진과 A 증권사가 남다른 커넥션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보고서 역시 “A 증권사가 아닌 외부 자산관리업체에 분기별로 컨설팅을 의뢰하여 이사회의 소위원회를 통해 채권 상품 선택과 금액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권고했다.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MBC 방문진 ‘2012년 감사보고서’. 고영주 신임 이사장이 방문진 감사로 활동하던 시절 작성한 자료다.
전직 방문진 관계자는 “더욱 수익이 날 수 있는 여러 증권사 투자 상품이 있는데 유독 A 증권사만 고집한 이유에 대해 내부에서 여러 말들이 많았다. 심지어 방문진 측이 A 증권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게 아니냐는 전언도 있었다”라고 귀띔했다. 이에 방문진 측은 이러한 의혹을 적극 부인했다. 방문진 한 관계자는 “당시 A 증권사만 투자한 건 사실이다. 당시 한 5년 정도 A 증권사와 거래했다. 여러 증권사 피티를 받아봤는데 정보력이나 규모면에서 A 증권사가 제일 괜찮아서 거래를 한 것이다. 리베이트는 절대 없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당시 감사를 통해 지적된 기금 운용 체계는 현재 개선이 됐을까. 방문진 측은 “당시 사무처장 전결로 기금을 운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는 이사장까지 결재하도록 했다. A 증권사 독점 체제도 변경해 올해부터는 5개 증권사에 분산 투자를 하고 있다. 당시 감사에서 지적된 부분이 상당 부분 받아들여졌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당시 보고서에서는 방문진 기금이 수백억 원에 달하는 거액인 만큼 외부전문가 집단 혹은 ‘운용 또는 투자 심의위원회’등 객관적이고 투명한 운용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으며, 투자자문 업체도 ‘경쟁 입찰’을 통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또 담당 직원의 자의적인 기금 운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내부통제제도’와 외부 전문가에 의한 ‘불시 감사제도’ 도입 필요성도 제시됐다.
하지만 이 같은 감사 권고 사안은 모두 반영되지 않았다. 방문진 관계자는 “전문가 심의위원회 설립을 논의했지만 여러 현실적, 시간적 문제로 도입은 되지 않았다. 불시 감사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감사 권고 사안은 하나의 의견이다. 여러 부분이 많이 개선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러한 방문진의 기금 운용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현재 방문진의 운용 기금은 당시 감사 때보다 훨씬 규모가 커져 1000억 원대를 훌쩍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 회계 전문 변호사는 “방문진 운용 기금은 공영방송인 MBC에서 나오는 만큼 ‘공적 기금’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기금을 확실한 시스템 없이 부실하게 운용한다면 언제든 사고는 터질 수 있다”며 “외부 회계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할 필요가 있으며 기금의 규모만큼 세법에 따른 세금 부분에 문제가 없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