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한 아이의 아빠를 살인자로 만들었습니다.”
지난 8월 25일 <일요신문>은 ‘드들강 임신부 살인 사건’ 관련 서류를 확보했다. 범인으로 지목돼 형을 살고 있는 남편 박 씨의 편지와 고소장 사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답변서 등이다. 박 씨는 “(자신을 검거한) 노 형사의 수사보고서는 명백히 잘못됐다. 국과수는 아내에 대한 부검 소견서에서 ‘타살’이란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며 “노 형사가 국과수의 의견과 달리 타살 소견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어느덧 8년, 법원의 판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찰을 고소한 박 씨,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드들강 임신부 살해 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화면 캡처. 왼쪽부터 범인 박 씨와 그를 심문 중인 노 형사. 숨진 A 씨. 사건 당시 차량 인양 모습.
때는 2007년 6월 19일 오후 2시경, 나주시 남평읍 인근 소방서는 “드들강에 차량이 빠져있다”는 낚시꾼의 신고를 받았다. 이튿날 경찰에 같은 내용의 신고가 접수됐다. 수사당국은 드들강에서 세피아 승용차 한 대와 그 안에서 젊은 여성 A 씨의 시신 한 구를 발견했다. A 씨는 임신 5개월째, 뱃속의 태아 역시 숨져 있었다. 당시 부검 결과 사망 추정 시간은 6일 밤 11시경, 특별한 외상이 없는 시신이었다. 폐에서 플랑크톤이 나온 것이 전부였다. 사망원인은 익사. A 씨는 결국 변사자로 처리됐다. 수사당국은 “초보운전자인 피해자의 운전 미숙으로 인한 차량 추락사고다”고 수사를 종결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노 형사는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보지 않았다. 사건 현장에는 나무들이 주변에 있었고 잡초도 무성했다. 가로등조차 없어 인적도 드물었다. 현장에 가려면 포장도로 우측으로 난 비포장 샛길을 약 10m 내려간 뒤 다시 좌측으로 90도를 꺾어야 가능했다. 초보운전자가 심야 시간에 들어설 코스가 아니었다.
물에 빠졌다고 하지만 차량 파손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A 씨는 안전벨트조차 매지 않은 상태였다. 운전석 뒤쪽, 조수석, 조수석 뒤 쪽 창문도 3분의 1쯤 열려 있었다. 차에선 A 씨의 가방은 물론 도장 같은 작은 물건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전조등이 꺼져 있었고 자동차 열쇠가 키 박스에 꽃혀 있었지만 기어 위치가 중립이었다. 운행 중 교통사고였다고 보기가 힘들었다.
특히 노 형사는 ‘목소리’에 주목했다. 두 번에 걸쳐 신고한 이가 동일한 인물인 양 아무개 씨(31)였던 것. 양 씨의 최초 신고 당시, 경찰은 드들강 전체를 수색했지만 차량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튿날 양 씨는 다시 전화를 해 차의 구체적인 위치를 알려줬다. 아무리 낚시꾼이라 해도 차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두 번째 통화에서 경찰이 신원을 묻자 양 씨는 갑자기 전화를 끊었다.
국과수의 목소리 분석결과 양 씨의 목소리 사이마다 “떨지 말어, 겁 먹지마, 망, 나무들, 화순방향”라는 제삼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양 씨는 경찰 조사에서 “지인 박 씨가 ‘차를 빠뜨렸는데 대신 신고해주면 보험금 일부를 주겠다’고 제의했다”고 밝혔다. 박 씨가 양 씨가 신고를 할 때 그 옆에서 귓속말로 차량이 빠진 지점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던 것. 박 씨는 A 씨의 남편이었다. 노 형사의 끈질긴 노력이 통했던 것일까. 박 씨의 정체가 차츰 드러났다. 박 씨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사고를 가장해 아내 A 씨를 드들강에서 살해한 정황을 잡은 것.
판결문을 토대로 재구성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07년 2월 박 씨는 전처와 이혼을 했다. 생후 약 15개월 된 딸을 홀로 키워야 했던 그는 인터넷에 어린 딸을 돌봐달라는 ‘보모 구인광고’를 올렸다. A 씨는 낙태 문제로 갈등을 겪어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녀는 마땅히 거처도 없었기 때문에 숙식을 제공하는 보모 일자리가 마음에 들었다.
한 달 뒤 A 씨는 박 씨와 함께 동거하며 박 씨의 어린 딸을 정성껏 돌봤다. 박 씨는 “뱃속의 아이를 자기 자식으로 키우겠다”며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A 씨는 그 약속을 믿었기에 프러포즈를 허락했다. 하지만 보모 광고는 미끼에 불과할 뿐, 모든 것은 시나리오였다. 박 씨가 A 씨와 혼인 신고를 하고 거액의 사망보험에 가입한 뒤 그녀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그 무렵 박 씨는 휴대폰 대리점을 운영하다 실패해 수억 원 상당의 손실을 보았다. 과거 몇 차례 보험사기를 친 전력도 있었다. 2007년 5월 23일 결국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했다. 박 씨는 A 씨가 초보운전자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일주일 뒤 박 씨는 자신의 명의로 세피아 승용차를 구입해 A 씨에게 운전을 하게 만들었다. 30일부터 박 씨는 피보험자를 A 씨로, 보험수익자를 자신으로 하는 세 개의 보험을 연달아 가입했다. 6월 6일 밤 11시경 결국 A 씨는 어머니에게 “남편이 강가에서 부른다”는 마지막 통화기록을 남긴 뒤 실종됐다.
아내가 죽은 뒤 박 씨의 행동은 의문투성이였다. 박 씨는 경찰서에 세피아 승용차를 도난당했다고 먼저 신고했다. 아내에 대한 가출 신고는 4일이 지난 뒤였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는 자신이 양 씨와 함께 그 무렵 드들강 주변에서 아내를 찾아다녔다고 진술했지만 양 씨는 그런 일이 없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아내의 시신이 발견된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박 씨는 미리 들어놓은 보험금을 청구하기 시작했다. A 씨는 한 보험사로부터만 1억 9800만 원을 받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박 씨가 아내를 살해한 범인이 틀림없다. 하지만 범행 장면이 찍힌 CCTV나 목격자가 없기 때문에 직접증거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재판부도 고심을 거듭했다. 1심 법원은 살인죄와 보험사기죄로 징역 15년을 선고했지만 2심 재판부는 살인죄에 대해 무죄로 판단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사건당일 밤 10시 51분 어머니와 통화한 A 씨의 마지막 위치는 사고지점에서부터 9㎞ 떨어진 곳이었다. 11시 22분 박 씨의 마지막 발신 위치는 화순읍이었다.
2심은 현장검증까지 거쳤다. 박 씨가 그 사이 31분 동안 아내를 유인해 차에 빠뜨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심리가 부족하다며 이를 뒤집었고 2013년 8월 1일 광주고등법원은 “범행추정시각의 교통량이 오후에 진행됐던 현장검증 당시보다 훨씬 적었을 거다. 피고인이 과속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살인죄를 다시 인정해 박 씨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의 맹점은 A 씨에 대한 살해수법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1심부터 종국심까지의 판결문을 분석하면 박 씨가 ‘불상의 방법’으로 아내를 실신시킨 뒤 승용차 운전석에 앉힌 상태에서 강에 빠뜨려 살해했다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처럼 범죄 수법이 밝혀지지 않았을 때는 부검의의 판단이 결정적이다.
1심 재판부는 “국과수의 2007년 6월 최초 부검당시 B 부검의는 A 씨의 사망원인을 익사로 추정했다”며 “다만 운전미숙으로 인한 사고에서 나타난 반사작용에 따른 신체손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머리 우편 두피 손상을 사후증상으로 추정했지만 당시 사고사로는 부자연스러웠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도 했다. 여기까지의 부검 소견은 2007년과 같다. 문제는 부검의 B 씨의 판단이 2011년과 달라졌다는 것.
박 씨의 주장대로라면 그 당시엔 타살이란 용어가 없었지만 수사보고서와 1심 판결문에 그 용어가 다시 등장했다. 1심 법원은 “부검의 B 씨는 2011년 경찰로부터 타살 의혹 관련 서류를 받고 머리 우편의 두피 손상이 사망 전에 발생한 외력으로 볼 수 있다”며 “두피 손상은 둔기나 돌에 의한 충격으로 발생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사망 전에 발생한 외상으로 볼 수 있다고 해 정황상 타살로 의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과수는 최근 “2007년 당시 부검감정서에 사망의 종류(외인사와 내인사)를 기재한 적이 없으며 타살이란 용어를 기재한 바 없다”며 “두부의 우측의 두피손상은 사후손상으로 추정했다”고 밝혔다. “부검결과에 의해서만 타살이란 결론을 유추했다는 박 씨의 추론은 무리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같은 시신을 두고 최초 부검 당시 국과수의 입장과 4년 뒤의 입장이 바뀌었고 1심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박 씨는 “경찰의 허위 보고서가 없었다면 타살을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없었을 거다”며 “일반인이 부검의의 타살 소견을 반박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경찰의 수사보고서 때문에 망인이 타살됐다는 사실이 확정돼 당시 사고사에 대한 사실조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1심 판결을 제외한 모든 판결문에서는 “타살 정황이 있다”는 부검의 B 씨의 의견이 등장하지 않았다. 원심을 파기환송한 대법원은 “타살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심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최종심을 선고한 광주고등법원은 “피해자의 사인은 익사로 추정된다”고 판결했을 뿐, A 씨의 시신에 나타난 우뇌 두피 손상이 사건 발생 전에 나타났다는 부검의의 의견을 찾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노 형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검사의 지휘 하에 부검의와 면담했으며 유선상의 구두 통화를 통해 타살이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다”며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이 된 사건이다. 수사에 대한 부분에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고 하면 이미 그런 부분이 반영됐을 거다”고 반박했다.
국과수 관계자도 “소견서에 타살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구두상 표현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억울한 누명인가, 파렴치한 보복인가. 살인범의 승부수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주목된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