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리베이트 수사단 발표 후에도 제약업계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과거 수사결과 발표와 달리 이번에는 연루된 제약사와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또 공개된 리베이트 제공 수법에도 특별한 내용이 없고, 심지어 지금은 그다지 행해지지 않는 부분이 많이 포함된 까닭도 있다. 다만 ‘리베이트 투아웃제’가 도입된 만큼 제약사와 의료기기 판매업체들이 어떤 행정처분을 받게 될지에 대해서는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어떤 행정처분을 받더라도 제약회사들이 리베이트를 끊을 리 만무하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한 달만 리베이트 안 해도 굶어죽는 거다. 영업사원 한 명당 다달이 400만~500만 원의 리베이트 비용이 나온다. 이 돈 다 안 쓰면 처방량이 떨어지고, 잘리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제약사별로 같은 효능에 가격이 비슷한 약품을 만들어내는 상황에서 리베이트는 그야말로 제약사들의 생명줄이다. 처음 약이 출시됐거나 거래를 틀 때 ‘랜딩비’를 주고, 이후에는 매출에 따라 선·후지원금을 제공한다. 리베이트 비용은 대략 매출의 15~30%. 병원과 제약회사의 규모, 매출에 따라 비율은 조금씩 다르다.
상위권에 드는 제약사들보다 군소 회사들의 리베이트는 더 심각하다. 규모가 작다보니 당국 수사망에 걸리는 일도 많지 않고, 리베이트에 회사의 존립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했던 박 아무개 씨는 “과거에는 보통 병원당 매출의 25% 정도를 리베이트 비용으로 썼다. 하지만 요즘 단속이 하도 심해지다 보니 업계 평균이 15% 정도로 조정됐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리베이트 수사단이 발표한 수법은 PMS(Post Marketing Surveillance·시판 후 조사)를 한 것처럼 설문지를 미리 만들어두고 설문지 건당 비용을 제공하는 법, 논문을 번역한 것처럼 꾸며두는 법, 해외 제품설명회 명목으로 해외관광비를 대주는 방식 등 다양하다. 특히 한 대학병원 의사는 현금, 술값과 식대, 법인카드를 받아쓰는 법 등 다양한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수수했다.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는 단속·수사마다 쌓이는 ‘노하우’다. 특히 논문 번역료, 강연료 같은 경우는 과거에는 많이 쓰이는 방식이었지만 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강연료를 주는 건 아주 고전적인 수법이다. 과거에는 한 시간 강연에 수십만~수백만 원까지 줬지만 요즘은 많아야 20만~30만 원선이다. 그나마도 잘 하지 않는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설문조사 명목으로 수당을 주는 방법을 쓸까 고민했지만, 다른 회사가 걸렸다는 얘길 듣고 바로 접었다. 다른 곳에서 걸리면 안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리베이트 방식이 있지만, 업계에서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이 선호되고 있다.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 이후 단속을 우려한 의사들이 증거가 남지 않는 방식을 택하기 때문이다.
한 제약사 영업사원은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현금이 최고다. 의사들은 현금을 제일 좋아한다”며 “과거에는 법인카드를 주기도 했지만, 결제 내역이 다 남기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고 했다. 병원 내 비품지원도 많이 이뤄지는 리베이트 방법이다. 컴퓨터나 복사기같이 병원에서 쓰이는 고가의 비품을 제공하거나, 병원 홈페이지 제작 및 유지에 돈을 주는 식이다.
더 교묘한 방법도 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 박 씨는 “회사에서 리베이트 목적으로 자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직원들의 복리후생을 위한 물품 취급 업체를 설립해 리베이트의 창구로 썼다는 설명이었다. 실제 자회사는 사내 카페테리아, 직원 복지포인트제도 등을 운영하는 동시에 ‘다른 용도’로도 겸용됐다. 박 씨는 “골프클럽, 가전제품, 명품백 등을 자회사에서 결제해 영업사원을 통해 의사들에게 전달됐다”고 말했다.
제약회사들이 ‘꼬리를 자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CSO(영업전문대행업체)를 통하는 것이다. 과거 영업사원을 하다 퇴직한 이들이 차린 CSO를 상대로 많게는 45%의 마진을 준다. CSO는 제약회사에서 일하며 쌓은 네트워크를 갖고 영업을 하고, 리베이트를 대행하며 이윤을 챙긴다.
회사와 영업사원은 이렇게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리베이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원들은 ‘영업기밀’을 지키는 데 철저할 수밖에 없다. 앞서의 제약사 관계자는 “정말 업계를 떠날 생각인 사람이 아니고선 리베이트 관행을 고발하기 힘들다. 또 근로계약서에 처음부터 영업기밀 준수 조항이 적혀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의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는 데 대해서 업계 관계자들은 근본적인 연구개발 토양 부재를 지적한다. 신약개발에 투자하지 않고 비슷한 제네릭(복제약)을 만들어 팔다보니 제품과 기술력보다는 리베이트를 얼마나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매출이 좌우된다. 한 외국계 제약사 영업사원은 “영업은 특허약이 있으면 쉽다. 우리 약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우리 회사는 리베이트 자체를 안 하기 때문에 영업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차라리 리베이트를 하면 영업하기가 쉬울 것 같다. 근본적 토양을 바꾸지 않는 한 리베이트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영업사원 울리는 ‘집사 부리기’도 여전 담당 의사 애완견 목욕까지 ㅜㅜ 리베이트는 주는 제약사들도 문제지만, 의사들도 공공연히 요구하는 일이 적지 않다. 식사와 술을 제공하는 접대를 바라든가, 부서별 회식 또는 송년회 등에 지원금을 요구하는 일도 잦다. 가장 힘든 유형은 영업사원을 향해 ‘갑질’을 하는 부류다. 영업사원을 마치 ‘집사’ 부리듯 개인적인 심부름까지 시키는 의사들도 있다. 7년차 영업사원은 “자동차 세차나 점검을 하고 오라는 요구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영업사원은 “예전에는 회사에서 ‘영업사원의 집사화’를 강조하는 곳도 있었다. ‘의사들의 비서로 일하자’고 사원들에게 강조했다. 말이 좋아 비서지, 이를 이용해 아예 노예처럼 부리는 의사들도 있었다”며 “심지어 정기적으로 찾아가 강아지 목욕까지 시켜봤다는 동료도 있었다”고 말했다. 영업사원들에게 담당 의사의 생일 챙기기는 기본이다. 심지어 아내, 자녀, 장인장모까지 챙겨야 한다. 회사의 관리시스템에 거래처 의사와 가족의 생일을 입력해두면 때가 되면 문자로 알림을 줘 케이크 등을 챙기게 상기시킨다. “과거 다녔던 제약회사에는 다달이 ‘생일판촉비’라는 게 나왔다. 자녀의 생일이면 학교에 피자 같은 걸 아이 엄마 이름으로 보내기도 했다. 내 아이도 이렇게 챙기는 일이 없는데 참 씁쓸했다”고 한 영업사원은 보탰다. 의사들의 갑질은 리베이트 고발이라는 화살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회사에서 해고당하거나 업계를 떠나는 영업사원들이 남기는 ‘최후의 복수’다. 회사의 리베이트 사실을 고발하면서 억하심정을 가졌던 의사들이 받은 리베이트 내역을 함께 제출한다. 회사가 ‘입막음용’ 돈을 줘서 조용히 내보내는 경우도 있다. 한 영업사원은 “들리는 소문에는 고발하고 나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 조사를 못할 정도라는 얘기도 있다. 이 정도로 흔한 게 리베이트니 한 건씩 잡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때도 있다”고 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