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후보 KB금융이 우리투자증권 인수전 때처럼 보수적인 인수 희망가격을 써낸다면 인수가 어려울 수도 있다. 사진은 KDB대우증권 본사 전경과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이종현·최준필 기자
지난 8월 24일 산업은행은 이사회를 소집, KDB대우증권과 KDB자산운용, KDB캐피탈에 대한 매각 추진 계획을 전격 의결했다. 소문만 무성하던 대우증권 매각작업이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산업은행 이사회는 오는 10월 초 공식적으로 주식매각공고를 내기로 했다.
산은은 산은자산운용을 대우증권과 패키지로 매각하는 방안과 개별 매각하는 방안을 병행 추진하기로 했다. 반면 산은캐피탈은 패키지로 묶지 않고 개별 매각하기로 했다. 덩치가 너무 커지면 매각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우증권은 시가총액만 4조 원이 넘는 국내 1위 증권사다. 자기자본은 4조 2300억 원으로 NH투자증권에 이어 2위지만 영업력 등에서 대우증권이 업계 1위라는 데 이의를 다는 증권사는 거의 없다.
NH농협 품에 안긴 우리투자증권 매각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대어급 매물이니만큼 금융권의 반응은 뜨겁다. 특히 은행산업이 침체기에 빠져들고 있는 데 비해 증권사들이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 수익성을 회복하고 있어 매력이 높다.
눈에 띄는 점은 매각작업을 위해 산은 내부에 별도 위원회가 설치됐다는 것이다. 산은은 그동안 각종 인수합병을 담당해온 산은 M&A실이 아니라 자회사 매각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대우증권 매각작업을 맡겼다. 위원장으로 사외이사이자 법률전문가인 신희택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를 추대했고 매각업무와 관련된 부문장 6인을 위원으로 선임했다.
금융권은 산업은행의 이러한 행보가 향후 있을지 모를 각종 논란에서 몸을 빼내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보고 있다. 혹시라도 싼값에 팔리면 헐값 매각 시비가, 외국계에 넘어가면 국부 유출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매각이 늦어지면 지연에 대한 책임 소재가 문제될 수도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매각추진위가 책임과 권한을 갖게 되는 만큼 산업은행은 여론의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면서 “매각이 지연되거나 예상보다 낮은 가격에 매각되더라도 책임론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 위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제대로 된 몸값을 받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산은 관계자는 “매물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경영권 프리미엄은 통상 20~30%선”이라면서 “이는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통상적으로 시장에서 인정하는 수치”라고 말했다. 일종의 매각 가격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대우증권의 장부가는 지난해 말 기준 1조 7758억 원이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30% 붙일 경우 2조 5000억 원이 된다. KDB자산운용(장부가 634억 원)과 KDB캐피탈(장부가 5973억 원) 매각가치도 각각 1000억 원, 6000억~7000억 원대로 추산된다.
무엇보다 큰 관심은 누가 대우증권의 새 주인이 되느냐다. 현재 금융권에서 인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KB금융그룹이 꼽힌다. KB금융은 은행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사업구조를 바꾸기 위해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NH농협에 고배를 마신 바 있다.
KB금융은 특히 대우증권의 몸값을 감당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내 금융사로 꼽힌다. 앞서 언급한 대로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포함한 대우증권의 매각가격은 2조 5000억 원선으로, 웬만한 자금력으로는 넘볼 수 없는 매물이다.
만약 KB금융그룹이 대우증권을 손에 넣을 경우 KB투자증권은 자산규모 4조 8000억 원으로 단숨에 증권업계 1위가 된다. 또 약점으로 꼽히는 위탁영업과 자산관리 부문 등을 강화해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KB금융은 이미 내부적으로 인수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지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걸림돌은 있다. 무리하지 않는 스타일인 KB가 이번에도 보수적인 인수 희망가격을 써낸다면 인수가 어려울 수 있다. 실제로 KB는 우리투자증권 인수전 때도 우위에 있는 것으로 점쳐졌지만 결국 쓴잔을 마셔야 했다.
국내에서는 신한금융그룹, 한국금융지주와 사모펀드 등이 잠룡으로 꼽히고, 해외에서는 시틱그룹과 안방보험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우선 신한금융은 업계 7~8위권인 신한금융투자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인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신한금융투자의 경우 은행, 카드 등 업계 1위를 달리는 다른 금융 계열사들에 비해 증권 부문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약한 만큼 대우증권 인수를 통해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인 신한금융지주 측은 고개를 젓고 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가능성을) 0%와 100% 중에 어느 쪽에 가깝냐고 묻는다면 0% 쪽”이라면서 “몸집을 키울 방법이 인수합병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한국투자증권을 거느린 한국금융지주는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은행을 거느린 다른 지주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나 입지가 약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고, 자금력도 높다는 점에서 인수전에 뛰어들 수 있는 후보로 꼽힌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매물을 점검하는 수준에서 검토했다”는 설명을 내놨다.
중국계인 시틱그룹은 중국 최대 증권사인 중신증권을 보유한 회사다. 삼성그룹과 전략적 제휴관계인 시틱은 올해 초 이재용 부회장이 중국에서 그룹 관계자들과 회동을 하면서 국내에서도 인지도를 높였다. ‘대륙의 증권사’답게 시틱의 자금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아직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같은 중국계로 동양생명을 인수한 안방보험도 지켜봐야 할 후보다. 금융당국의 빗장을 풀고 국내 금융권에 상륙한 최초의 중국 본토 금융사이니만큼 추가 M&A에 나설 가능성이 충분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인수만 하면 업계 1등이 되는 흔하지 않은 매물”이라면서 “자본력이 뒷받침되고 증권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회사 중에 대우증권에 관심이 없다는 회사가 있다면 거짓말일 것”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