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이 3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1~2주 내에 6개월간 달려온 포스코 수사의 향방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은 티엠테크 자금 유입 의혹을 받고 있는 이상득 전 의원.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그럼에도 티엠테크 압수수색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동안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 배성로 전 동양종합건설 대표를 일컫는 ‘포스코 3인방’에게 집중됐던 수사가 정치권으로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전 의원이 실제로 이 사건에 연루됐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다만, 향후 1~2주일 내에 이 전 의원 연루 여부를 포함해 지난 6개월간 달려온 포스코 수사의 향방이 가려질 것으로 보고 있다.
# ‘포스코 3인방’의 벽
지난 3월 포스코건설 압수수색을 할 당시만 해도 포스코 수사가 이렇게까지 길어질 것이라고는 검찰도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엔 6월, 그 다음에 8월, 그리고는 9월 초까지 수사 마무리 시점이 계속 늦춰졌다. 이제는 쉽사리 시점을 예단하는 것도 민망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검찰 내에선 “예상됐던 일”이라고 말한다. 포스코 수사는 검찰이 캐비닛에 넣어두고 쉽사리 꺼내지 못했던 사건인 탓이었다. ‘살아 있는 기업’인 포스코를 수사하려면 협력업체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들의 입을 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 때문에 수년간 묻어두고 있었다. 지난 3월 검찰이 포스코건설을 압수수색하면서 수사에 본격 착수했을 당시 검찰 내에서 “쉽지 않은 수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검찰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포스코의 ‘입단속’이었다. 검찰은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포스코가 협력업체에 입단속을 시키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동화 전 부회장의 친구로 알려진 컨설팅 업체 I 사 장 아무개 대표(64)가 구속됐을 때도 그랬고, 이번에 티엠테크 압수수색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검찰 관계자는 “지금도 포스코가 정준양 전 회장에 대해서 조직적으로, 좋게 말하면 보호고 나쁘게 말하면 비호를 하고 있다”며 “티엠테크 때문에 누가 조사받고 어떤 내용을 조사했는지를 포스코 측에서 다 체크하고 있다”고 전했다.
# 3인방 구속 불구속의 갈림길
법원이 정동화 전 부회장, 배성로 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계속 기각했을 당시 서울중앙지검 내에선 “박성재 지검장을 비롯한 검찰 간부들의 화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윗선의 지시로 국내외에서 비자금을 조성했던 포스코 전·현직 임직원들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건건이 발부했던 법원이 중요한 고비 때마다 브레이크를 걸었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검찰은 현재 정 전 부회장과 배 전 대표에 대해선 추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이들에 대한 제보가 계속 들어오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추가 수사를 해서 새로운 혐의가 입증되는 게 있으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대신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준양 전 회장의 경우에도 검찰로선 불구속기소의 여지를 두지 않는 듯 보인다. 정 전 회장의 혐의만 해도 성진지오텍 고가 매입, 동양종건 일감 몰아주기 특혜, 코스틸 로비 받은 의혹, 티엠테크 일감 몰아주기 등에 이른다.
# 어렵게 확보한 ‘내밀한 제보’
검찰은 그동안 구속기소된 17명의 전·현직 임직원 등 포스코 관련자들을 통해 티엠테크 관련 제보를 들은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안팎에선 그 한 사람의 제보자가 누군지를 놓고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검찰은 “이 작은 일에 대해서도 아주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내부 핵심 임원으로부터 진술을 받게 됐다”며 “포스코가 과거와 절연하고 싶었으면 티엠테크 때처럼 상황을 체크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과거와 절연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이 포스코 수사에서 쉽게 손을 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동화 전 부회장, 배성로 전 대표 등 포스코 수사의 중요 고비 때마다 번번이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포스코 수사는 타의에 의해서 서둘러 마무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지만 박 지검장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박 지검장의 한 지인은 “박 지검장은 포스코의 구조적인 문제는 수사가 아니면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런 이유로 포스코 관계자들이 검찰 간부를 찾아와 면담할 때도 뼈를 깎는 듯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로 박 지검장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정준양 전 회장이 검찰에 소환되기 직전에 티엠테크 압수수색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 전 회장에게 적지 않게 심리적 압박이 됐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검찰이 정 전 회장 소환 방침을 밝히면서 “한번으로 조사가 끝나지 않을 수 있다”며 여러 차례에 걸친 소환조사를 예고한 뒤였던 만큼 부담은 더욱 컸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정 전 회장이 검찰 조사에 응하면서 그동안 제기된 모든 의혹들을 인정하지는 않았다는 관측도 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검찰은 정 전 회장 압박 카드로 생각했을 수 있겠지만 정 전 회장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며 “정 전 회장 소환조사 후 혐의를 부인했다고 알려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로 봐야 한다”고 전했다.
# 티엠테크, 대박이냐 쪽박이냐
서울 강남역 인근의 포스코 본사 건물.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티엠테크는 포스코켐텍의 협력업체로 이 전 의원의 포항 지역구 사무소 관리 책임자였던 박 아무개 씨가 실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이 지역에서 이 전 의원의 ‘집사’로 불렸던 인물이다. 검찰은 티엠테크가 지난 2008년 12월께 설립돼 이듬해 6월 박 씨가 실질적인 소유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시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있던 납품업체의 물량을 일부 가져와서 납품을 하게 해주고, 그 납품을 통한 매출이 그 업체 매출의 100%를 차지하는 배경을 의심하는 것이다.
정준양 전 회장이 취임한 지 4개월 만에 박 씨가 최대 주주가 되고, 티엠테크가 연매출액 170억~180억 원을 올린 것에 대해서도 의심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티엠테크 자금 흐름을 검찰이 면밀히 들여다보는 이유기도 하다. 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는 “내밀한 제보라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 검찰 입장에서는 이 수사에 나름 의미를 두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며 “검찰도 사실은 기대 반 걱정 반 수사에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 MB 정부의 ‘심장’ 겨누나
티엠테크의 매출액 중 일부라도 정치권으로 흘러간 정황이 포착되면 그야말로 포스코 수사는 새 국면을 맞게 된다. 이상득 전 의원뿐만이 아니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이명박 정부 당시 실세들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내년 총선거를 앞두고 벌어질 새누리당 내 공천 경쟁에서 친박근혜계가 친이명박계보다 유리한 입지에 서게 된다. 친박계 입장에선 검찰을 통해 공천 내홍이나 갈등 없이 사태를 해결하게 되는 셈이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정치권으로 확대된다면 시작은 이 전 의원이 될 것이고 그러다 결국 친이계가 다수 포함되는 그림이 되지 않겠느냐”며 “그러면 결국 검찰 수사를 통해 전 정부의 심장을 처음으로 겨누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정치권에서 최대 수혜자는 친박계가 되고, 검찰에선 박성재 지검장이 될 전망이다. 특히 차기 검찰총장 레이스에서 김수남 대검찰청 차장검사에게 다소 밀린다는 평가를 받아온 박 지검장 입장에선 다음 총장을 내다볼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확 달라진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새누리당 내 친박이나 청와대 입장에선 자기 손에 피 묻히지 않고 사태를 정리할 수 있게 해줬으니 박 지검장에 대한 신임이 상당할 수 있다”며 “다만 어디까지나 이런 상황은 아직은 가정에 불과한 만큼 수사를 더 지켜보는 도리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