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죄 폐지 후 6개월. 예상했던 큰 변화는 없었다. 위자료라도 일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폐지 직후 우세했지만, 그런 변화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몇몇 판결에서 위자료를 5000만 원 수준으로 결정한 사례도 있었지만 간통죄 위헌판결의 영향은 아니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변호사 사무실이 몰려있는 서울 서초동의 법조타운.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런 가운데 조용히 ‘파탄주의’로의 전환이 점쳐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유책주의’에서는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반면 파탄주의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혼인 관계가 지속되기 어렵다면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지난 6월 2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공개변론으로 생중계된 사건에 법조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유다.
해당 사건의 원고인 남편은 아내와 결혼생활 중 잦은 외박과 늦은 귀가로 불화가 지속됐고, 바람을 피워 혼외자까지 두었다. 아내는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됐고, 남편은 2000년 집을 나와 상간자와 동거하며 딸을 키우고 있다. 별거 중에도 남편은 월 100만 원씩 생활비와 자녀 세 명의 양육비 명목으로 아내에게 돈을 보냈다. 이후 신장 이식이 필요하게 된 남편은 아내와 자식들을 찾았다가 거절당했다. 결국 남편은 혼인관계를 정리하기로 결심하고 2012년 생활비를 끊고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이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으며 미혼인 두 자녀가 있기에 남편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1심에서 기각됐고 2심 역시 원고 패소했다. 남편은 이에 그치지 않고 상고까지 해 결국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이번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역시 혼인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유책배우자가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기 때문이다.
파탄주의 인정 움직임은 이번 공개변론 건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이혼한 아내가 상간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혼소송 진행 중에 남편은 다른 여성과 간통행위를 했고 아내는 이에 대해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완전히 이혼한 상태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부부공동생활이 파탄되어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에 이르렀다면, 제삼자가 부부의 한쪽과 성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불법행위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대법관들의 의견이었다.
이 판결 후 간통죄가 폐지됐고, 이어서 공개변론이 이뤄졌기에 파탄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고조됐다. 파탄주의를 인정하게 된다면 이혼 소송 건수는 증가하고, 재산분할 및 위자료에 관한 싸움이 더 치열하게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게 된다. 레드오션으로 변해버린 변호사 시장에서 일말의 기대감이 비쳐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지난 6월 공개변론의 중계를 맡았던 법무법인 감사합니다의 송명호 변호사는 “이혼소송 건수가 10~20%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파탄주의가 인정되면 재산분할에 강한 변호사들이 각광받을 것”이라며 “재산분할에 강점이 있는 변호사들을 더 신경 써서 채용하고 있다”고 기류 변화를 설명했다.
법무법인 화연의 조승완 실장 역시 “최근 5년간 하급심(1·2심)에서 파탄주의를 인정하는 판례들이 늘고 있다. 때문에 대법원의 판결에 더 촉각을 곤두세운 것”이라며 “이혼 결정을 내릴 때는 배우자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파탄 난 결혼생활이 회복될 가능성이 있는지가 중요한 쟁점이다. 요즘 추세는 전자보다는 후자 쪽에 더 방점을 찍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 파탄주의 인정에 대비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고 있진 않다. 실제 케이스에서 명확하게 한쪽에 잘못이 있는 사례는 찾기 어렵기에 파탄주의를 인정하더라도 소송 당사자들이 느끼는 체감상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파탄주의 인정이 시기상조일 것이라고 점치는 변호사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케이스가 혼인 파탄에 대한 원고의 책임이 너무 크기 때문에 파탄주의 이행 판결로 가기엔 무리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가사 전문 변호사는 “유책배우자가 이혼 소송 승소 가능성 문의를 해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면서 “아무리 하급심에서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대법원에서는 패소했다. 경제적 문제, 자녀 문제로 혼인관계가 회복이 어려움에도 이혼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파탄주의 인정은 시기상조가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