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대를 초월해 폭넓은 사랑을 받아온 방송인 프레드 로저스는 2001년부터 33년간 <미스터 로저스의 이웃들>을 진행했다. 그는 73세까지 “내 이웃이 되어주지 않을래요?”라는 오프닝 멘트로 아이들과 함께했다.
프레드 로저스는 단순한 방송인이 아니라 교육자였으며 목사였고 작가이자 음악가였다. 대학 졸업 후 20대부터 방송 일을 시작했던 그는 미국 최초로 지역 커뮤니티에서 지원하는 교육 방송이었던 피츠버그의 WQED에서 직접 대본을 쓰고 연기를 하는 아동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마흔 살이 되던 1968년, 이 프로그램은 피츠버그를 벗어나 미국 전역의 네트워크를 타기 시작한다. <미스터 로저스의 이웃들>이라는 미취학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2001년까지 무려 33년 동안 장수했고, 프레드 로저스는 73세가 될 때까지 “내 이웃이 되어 주지 않을래요?”라는 오프닝 멘트와 함께 ‘미스터 로저스’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했다.
신사적인 외모와 점잖고 부드러운 목소리,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멘트, 친근한 이미지 등으로 프레드 로저스는 큰 신뢰를 받는 셀러브리티가 되었고, 미국인들에겐 열정과 노력과 도덕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인물이었다. 그는 공익 문제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지니고 있었는데, 각 방송사의 교육용 아동 프로그램에 정부 지원을 요구해 관철시키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이 수여하는 자유의 메달을 수상했고, 방송계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TV가이드>는 미국 방송사상 가장 위대한 50인 리스트에 주저 없이 그의 이름을 넣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확히 그 시점을 알 순 없지만 대략 1990년대 중반부터 그의 과거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들이 돌기 시작했다. 먼저 그가 아동용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있었다. 사실 그는 아동 성추행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사회봉사명령을 받아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 그의 프로그램에 정작 아이들이 거의 출연하지 않는 건, 혹시나 어린이 출연자와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기에 재발 방지 차원에서 이뤄진 조치라는 얘기도 있었다. 때마침 디즈니에서 제작한 <파우더>(1995)라는 영화의 빅터 살바 감독이 과거 아동 성추행을 했던 전력이 드러나면서 불매 운동이 벌어지던 시기라, 프레드 로저스에 대한 루머는 더욱 힘을 얻었다. 하지만 이것은 곧 터무니없는 억측으로 밝혀졌고, <미스터 로저스의 이웃들>에 아이들이 거의 출연하지 않는 건 단지 프로그램의 스타일일 뿐이었다.
방송 초창기의 풋풋한 ‘미스터 로저스’.
특히 소형 총기를 잘 다루었고 백병전에 뛰어났으며, 단숨에 적을 무장해제시키고 목숨을 앗아가는 필살기를 지녔다는 증언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평상시엔 조용한 위트와 매력으로 전우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고 했다.
2003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오히려 이슈는 재점화되었고,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다. 베트남에서의 전과를 인정받은 그는 이후 네이비실 요원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혹자는 그가 육군의 그린베레 출신이라고 했고, 해병대 교관을 역임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가 긴팔 옷만 입는 건, 팔에 새겨진 문신 때문이라는 분석도 등장했다. 그러면서 당시 CBS의 유명 어린이 프로그램인 <캡틴 캥거루>의 진행자 밥 키샨도 사실은 스나이퍼 출신이라는 얘기까지 돌았다.
물론 이 모든 건 사실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프레드 로저스에겐 군 복무 경력 자체가 없었다. 1928년에 태어난 그는 2차 대전에 참전하기엔 너무 어렸고, 한국 전쟁 당시엔 대학 재학중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1965년에 시작되어 1972년에 끝났는데, 이 시기 그는 30대 중반~40대의 나이였다. 스나이퍼로 명성을 떨치기엔 너무 늦은 나이였다. 그리고 프레드 로저스는 1951년 플로리다의 롤린스 칼리지를 졸업한 후 곧장 방송 일을 시작했고, 2001년 은퇴하기까지 50년 동안 단 한순간도 방송 일을 놓은 적이 없었다. NBC 방송사에서 조연출로 시작한 그의 경력은 FD를 거쳐 프로듀서로 이어졌고, 작곡가 출신답게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섭렵했으며, 1963년엔 장로교 목사가 되었고, 이후 <미스터 로저스의 이웃들>로 큰 사랑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황당한 도시 전설이 생겨났던 걸까? 아마도 이것은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만들어낸 악취미적 루머가 아닐까 싶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교훈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온화한 미소의 ‘미스터 로저스’가 사실은 젊은 시절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던 인간이었다면? 엉뚱한 착상 정도로 끝나야 했을 이런 상상력은 인터넷을 통해 구체화되었고, 결국 그것은 도시 전설로 떠돌게 된 셈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