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트트릭으로 워밍업 지난 3일 손흥민이 라오스와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이적 축포’ 3골을 터뜨렸다. 사진제공=KFA
“손흥민 선수가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때는 상당히 빠르기 때문에 그런 점은 특별히 걱정하지 않지만 공격을 하다가 수비로 전환하는 속도에서는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토트넘이 거액을 투자한 이유는 손흥민 선수가 갖고 있는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으로, 자신의 가치를 믿고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축구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손흥민의 토트넘 입단 소식이 알려진 날, ‘토트넘 선배’ 이영표는 어느 공식 행사장에서 손흥민의 프리미어리그 입성을 축하하며 ‘소신 발언’을 했다. 2005년 8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을 거쳐 토트넘으로 넘어간 이영표. 그곳에서 3년 동안 다양한 희로애락을 경험했던 그의 조언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토트넘 홈페이지에 오른 손흥민의 새 유니폼 ‘착용 샷’.
손흥민의 오랜 목표는 프리미어리그 입성이었다. 더욱이 레버쿠젠이 올 시즌 압박과 수비에 치중하면서 역습으로 골을 만드는 전술을 펼치고 있는데 2선 공격수인 카림 벨라라비에게 무게추가 기울면서 손흥민의 입지가 이전과 같지 않은 현실도 손흥민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간접적으로 도왔다. 레버쿠젠에서 그가 할 일이 많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프리미어리그는 공수전환이 빠른 축구 스타일을 펼친다. 스피드가 있는 손흥민으로선 분데스리가보다 프리미어리그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특히 토트넘은 올 시즌 노장 공격수들을 정리하고 22세의 해리 케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스쿼드를 운영하면서 케인을 뒷받침할 공격수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토트넘이 400억 원이 넘는 이적료를 쓰면서 손흥민을 데려간 것은 주전 공격수로 활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그동안 줄곧 독일에서만 생활했던 손흥민이 영국 생활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손흥민은 서울 동북고 재학 중 대한축구협회(KFA)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로 유학을 떠났고, 함부르크 유스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끝에 성인팀으로 스카우트된 케이스다.
“독일은 전술적으로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반면에 영국은 공격과 수비가 굉장히 빠르게 전환된다. 네덜란드에서 활약했던 박지성, 이영표가 영국으로 넘어간 이후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이다.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의 속도감에 적응하려면 패스 타임을 잘 활용해야 하고, 뛰어난 체력을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생활면에서도 그곳 팀 분위기에 빨리 녹아드는 게 중요하다.”
박문성 위원은 손흥민의 앞날이 걱정되는 부분도 있지만 기대되는 부분이 훨씬 더 많다고 전망한다. 가장 큰 이유는 토트넘의 감독이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이기 때문이다.
“포체티노 감독이 오래전부터 손흥민을 지켜봤다고 한다. 그가 2013~2014 시즌 사우스햄튼 FC 감독을 맡을 당시 손흥민에게 관심을 보이며 이적을 제안했을 정도로 손흥민을 탐냈다. 이젠 토트넘에서 제대로 만나게 된 사이라 손흥민도, 감독도 서로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적료가 400억 원인데, 그 정도의 높은 돈을 지불하고 데려간 선수를 벤치에 앉혀둘 감독이 누가 있겠나.”
박문성 위원은 최근 손흥민과 인터뷰 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고 귀띔했다.
“손흥민이 귀국 전 토트넘으로 넘어가 관중들 앞에서 인사했을 때 포체티노 감독이 손흥민을 따로 불러선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다고 하더라. 그 자리에서 감독이 직접 ‘우리 팀 앞쪽 라인에서 네가 할 일이 많을 것이다. 오른쪽, 왼쪽, 앞선 가릴 것 없이 다 뛰길 바란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전담 공격수 해리 케인이 지난 시즌 21골을 넣으며 리그 최정상급 공격수로 발돋움했지만 여전히 공격 쪽이 약하다고 보기 때문에 감독으로선 손흥민에게 더 많은 기대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손흥민이 분데스리가와는 다른 프리미어리그의 빠른 공수전환과 살인적인 일정에 적응하는 게 성공의 관건이라고 내다본다. 토트넘 홋스퍼 홈페이지
손흥민이 박지성의 전철을 밟고 있는 데 대해서 박 위원은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박지성도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갔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기대가 크다. 최근 손흥민과 대화를 나누며 그가 높은 이적료에 대해 얼마나 큰 부담을 안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정이 많이 들었던 레버쿠젠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놓인 상황이 두려움과 긴장, 설렘 등으로 복잡 미묘할 텐데, 이젠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달리면서 프리미어리그에서 그만의 역사를 만들어가길 바란다.”
서형욱 MBC 해설위원도 높은 이적료를 받고 가기 때문에 손흥민이 팀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절대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에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면 겨울에 휴식기 없이 장기 레이스를 펼치는 프리미어리그의 살인적인 경기 일정이라고 한다.
“독일 분데스리가는 12월, 겨울에 한 달을 쉬고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영국은 경기 수도 많고 휴식기 없이 크리스마스에서 새해로 이어지는 동안 2, 3일에 한 번씩 경기를 치르며 강행군을 펼친다. 그러다보니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초반에 부상을 당했다. 손흥민도 체력 관리는 물론 몸싸움이 심한 프리미어리그에서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분데스리가에선 거의 전 경기를 주전으로 뛰었다면 프리미어리그는 경기 수가 많다 보니 선수를 로테이션으로 돌리게 된다. 가끔씩 벤치에 앉게 되더라도 스스로 현실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도 필요할 것이다.”
한편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은 지난 8월 30일 에버턴과의 프리미어리그 4라운드 경기를 끝내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손흥민을 영입해 우리 스쿼드는 더 강해졌다”고 자평하며 “손흥민은 젊지만 유럽챔피언스리그(UCL)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매우 좋은 선수다. 우리 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내면서 손흥민이 다양한 포지션에서 뛸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손흥민에게 아버지 손웅정이란? 최고 스승이자 열혈 매니저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씨와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씨의 공통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아들을 책임진다는 점이다. 때론 아들의 대변인으로, 아들의 에이전트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아들을 위해서라면 마치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것처럼 자신의 인생을 아들한테 초점을 맞췄다는 것도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박성종 씨가 적극적으로 언론과 대화를 통해 풀어나갔다면 손웅정 씨는 뒤로 숨는 스타일이다. 박 씨는 비축구인, 손 씨는 축구선수 출신이란 차이점도 존재한다. 손웅정 씨는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아들한테 투자했다. 일요신문DB 손흥민의 지금의 모습은 아버지가 완성시킨 거나 다름없다. 그는 토트넘 입단 직후에 구단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나는 축구 코치이던 아버지 밑에서 축구를 배웠고, 축구를 너무 사랑하는 선수다”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아버지 손 씨는 독일에서, 또는 자신이 운영하는 춘천의 축구클럽에서 손흥민에게 직접 축구를 가르치며 다음과 같은 어록을 양산해냈다. ‘현대축구는 속도야.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너의 패스가 더럽게 가니까 너한테 더럽게 돌아오는 거야.’ ‘볼이 사람보다 더 빨리 가야해. 그게 바로 공간창출이야.’ ‘패스가 안 좋으면 경기 내용이 좋아질 리가 있겠어?’ ‘축구는 전쟁이야 전쟁! 끝까지 집중하고 미리 나가서 공격을 끊어.’ 손흥민은 아버지한테 반발하지 않고,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축구를 펼쳐냈다. 만약 손흥민이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고 다툼이 있었다면 지금의 손흥민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번 토트넘 이적 과정에서 손 씨는 레버쿠젠 구단 관계자들과 선수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아들의 축구 인생에 아버지가 나서는 모양새와 손흥민이 아버지한테서 벗어나질 못하는 바람에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도 고하지 못하고 마치 도망치듯이 영국으로 떠났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러나 손흥민 측에선 레버쿠젠과 상의하에 토트넘 이적을 추진했고, 레버쿠젠으로선 많은 이적료를 받았기 때문에 손흥민을 떠나보낸 걸 절대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버쿠젠은 손흥민을 보내고 맨유에서 활약했던 치차리토 에르난데스를 영입했다. 손 씨가 이전 아들의 대표팀 차출과 관련해서 “대표팀에 뽑고 나서 벤치에만 앉혀두려면 아예 부르지 말라”고 말한 부분이 축구계에선 엄청난 충격으로 전달됐지만, 그만큼 아들의 축구인생을 향한 손 씨의 애정과 열정만큼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