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일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새누리당 대구 지역 한 국회의원은 “(초대받지 못한 의원들은) 공교롭게도 ‘국회법 파동’ 당시와 그 이후 유승민 전 원내대표 편에 섰던 의원들과 일치한다”며 “유 전 원내대표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미안해했다”고 전했다.
이를 놓고 여권 주변에선 박 대통령이 내년 총선에서 청와대 참모진을 앞세워 대구지역 의원들을 ‘물갈이’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사실상 대구 지역 선거운동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지난 9일 인천 방문에는 안상수·박상은 등 이 지역 새누리당 의원을 동행시켜 세간의 의심을 확인시켜줬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민공천제’라 이름붙인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놓고 새누리당 내 전운이 드리운 가운데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물갈이설’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우선적인 타깃은 유 전 원내대표와 가까운 대구 지역 의원들이 언급된다. 전략공천을 통해 청와대가 상당수 지역에 대한 공천권을 휘두르려 할 것이란 전망에서다.
최근 김 대표가 ‘국회법 파동’으로 소원해진 유 전 원내대표에 다시 손을 내미는 듯한 움직임도 이와 맞물려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 대표는 9월 2일 대구 지역 현역 의원들의 저녁 모임에 깜짝 참석, 유 전 원내대표를 향해 “내가 잘 못 해줘서 미안하다”며 건배사를 했다.
이에 유 전 원내대표는 “김 대표가 차기 공천제도로 오픈프라이머리에 정치생명을 걸고 밀고 계시다”며 “우리 대구는 김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를 지지합니다”라고 화답했다(본지 1217호 참고).
이 모임 후 두 사람 사이에 본격적인 화해 무드가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룰을 정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면 전략적으로 연대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 대표로선 박 대통령의 공천권 행사를 차단하기 위해선 당내 의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명분을 최대한 확보할 필요가 있다. 유 전 원내대표는 본인의 공천은 물론 본인 때문에 이른바 ‘찍힌’ 대구 지역 의원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정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
유 전 원내대표와 가까운 한 새누리당 인사는 “유 전 원내대표가 자신 때문에 피해를 볼 지도 모르는 대구 의원들을 모른 척할 수 있겠느냐”며 “‘컷오프’를 통해 현역을 자르고 전략공천을 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원내 새누리당 의원들이 물갈이설에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서울·수도권 지역 여론에 민감한 새누리당 중도개혁 성향 인사들은 공천개혁과 관련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본격적인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정병국 의원
새누리당 소장파 모임의 뿌리격인 미래연대와 수요모임, 민본21 출신 인사들이 지난 4월 만든 쇄신파 연대가 10월 초 국회에서 회동을 가질 예정이다. 소장파 상징격인 ‘남·원·정’의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을 비롯해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정태근 전 의원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쇄신파 연대 출범 이후 정국 현안과는 거리를 두며 새누리당 내 새로운 ‘개혁보수’의 움을 틔울 기회를 모색해왔다. 그러나 총선을 약 6개월 앞두고 공천개혁과 관련한 당내 논란이나 총선 전후 정권이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들이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 당내 일각의 기류에 맞서 김 대표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주로 친박이 오픈프라이머리에 부정적 입장임을 감안하면 향후 이들의 스탠스가 계파 간 싸움에 있어서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점쳐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쇄신파 연대 모임 한 관계자는 “미래연대나 민본21은 진작부터 개혁공천의 방식에 대해 김 대표가 주장하는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얘기해 왔다”면서 “김 대표가 주장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관철을 위한 전면에 나서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벌어질 공천전쟁의 서막을 열지 주목된다. 김 대표를 비롯해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주장하는 측은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를 내세워 전략공천 등 특정인이 공천권을 행사하는 통로를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박근혜 대통령 의중이 반영된 ‘물갈이’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놓고 새누리당 내홍이 크게 일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까닭이다.
쇄신파 모임 주도 인사들이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들이 당내 새로운 세력화를 꾀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오세훈 전 시장이 서울 종로구에 출마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고 박형준 사무총장은 부산 지역 출마설이 흘러나온다. 또 정태근 전 의원이 새누리당 성북갑 당협위원장을 맡아 이 지역 출마를 준비 중이다.
이들은 최근 정태근 전 의원 지역구에서 모임을 열어 정 전 의원을 응원하기도 했다. 이 모임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서로 품앗이로 각자 출마 지역에 응원 차 가자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정 전 의원은 “개별적 총선 출마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처지가 아니고 모임 차원에서 총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모임 성격에도 안 맞고 공개적으로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김태은 머니투데이 the300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