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남편의 외도를 의심해 신호대기 중인 남편의 차를 받았던 페라리·벤틀리 추돌 사고가 일어난 서울 강남구 역삼동사거리 현장. 오른쪽 사진은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월세 사는 연예인들도 많아요. 서울에서 가장 비싼 오피스텔이죠.”
‘페라리-벤틀리 부부’가 최근까지 거주했다는 강남구 청담동의 A 오피스텔 인근 부동산업자의 말이다. 그는 “월세 산다고 해도 여기는 돈이 좀 있어야 한다”며 “월세 자체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고위층이 많이 산다”고 밝혔다. 실제 부동산등기부 확인 결과 대기업 회장은 물론 연예계 톱스타들이 소유주로 있었다. A 오피스텔은 지난해 말 국세청 기준시가 1㎡당 499만 1000원으로 4년째 전국에서 가장 비싼 오피스텔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재 이곳의 전용면적 138㎡(약 41.7평)의 매매 호가는 약 23억 원이다.
‘페라리-벤틀리 부부’가 최근까지 월세 700만 원에 거주했다고 알려진 청담동 오피스텔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박 씨 부부는 올 봄에 결혼했다. 혼인신고를 한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잦은 술자리로 남편의 귀가는 점점 늦어갔다. 최근 박 씨는 이 씨에게 술을 마시지 않기로 약속까지 했지만 소용없었다. 좀처럼 연락도 되지 않아 이 씨는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불만이 점점 쌓였다. 사건 당일에도 박 씨는 지인들과의 술자리로 감감무소식이었다. 이 씨는 화가 나서 친구와 집 근처에서 양주를 마셨다. 결국 그녀는 술에 취한 채 페라리를 끌고 남편을 찾기 위해 집 밖을 나섰다. 새벽 4시경 김 씨는 유흥업소가 빽빽이 들어선 골목에서 빠져나오는 남편의 페라리를 목격하고 말았다.
“부우우웅~ 부웅~ 쾅쾅!”
청담동 역삼역 2번 출구와 7번 출구 사이 교차로에서 굉음이 두 번이나 울려 퍼졌다. 이 씨의 벤틀리가 신호대기 중이던 남편의 페라리를 들이받은 것. 슈퍼카임을 증명하듯 페라리의 속도가 워낙 빨랐기에 페라리 앞에 있던 택시도 바로 앞 횡단보도까지 밀려나 2중 추돌이 일어났다.
이들 부부가 몰던 차들은 더 이상 고급차가 아니었다. 페라리는 완파돼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폐차 직전 상태였다. 벤틀리 역시 앞 범퍼가 부서졌다.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분을 이기지 못한 이 씨가 차에서 내려 박 씨의 페라리를 수차례 걷어찼다. 박 씨도 차에서 내려 이 씨와 말다툼을 벌였다. “죽여 버릴 거야!”, “내가 들이받았으니 112에 신고해.” 강남 한복판에서 부부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곧바로 출동했다. 당시 이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15%. 면허취소가 될 수 있는 만취상태였다. 박 씨는 고의 사고였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아내가 불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벤틀리와 페라리의 수리비는 무려 3억 원. ‘실수’로 인한 교통사고라고 꾸미지 않는다면 그 모든 비용을 부부가 부담해야 했다.
박 씨는 재빨리 분위기를 파악하고 아내를 설득했다. 결국 부부는 사건 발생 한 시간 뒤 보험접수를 마쳤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미숙으로 추돌했다”며 “남편과 만나 식사를 위해 이동하던 도중 브레이크를 밟지 못해 사고가 났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보고 음주측정만 한 뒤 두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경찰은 음주운전 혐의로 이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의 눈을 피해 한쪽에선 위험하고 은밀한 거래가 벌어졌다. 사건의 진실을 아는 유일한 목격자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2차 추돌 피해자 택시기사 김 아무개 씨(45). 김 씨는 사건 직후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가 차에서 내리자 ‘이게 웬걸’, 슈퍼카 페라리가 떡하니 있었다. 한눈에 봐도 박 씨 부부는 부유층이었다. 순간 어머니의 수술비와 전세 보증금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부부의 수상한 다툼을 지켜보던 김 씨는 박 씨와 이 씨가 고의 사고를 실수에 의한 사고로 위장하려고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부부에게 “이건 살인 미수”라며 “3천 정도만 주면 눈감아 주겠다”고 협박했다. 박 씨 부부는 차량 수리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김 씨의 요구에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합의를 보자 이들은 더욱 과감하게 행동했다. 사고 당일 바로 경찰서 주차장에서 김 씨는 부부로부터 2200만 원을 건네받고 그 뒤 차량 수리비 명목으로 500만 원을 더 받았다. 김 씨는 “과실로 브레이크를 밟지 못해서 사고가 야기됐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 경찰을 우롱한 공갈 범행이었다.
완전범죄가 되는 듯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찰은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사고가 실수로 일어났다면 속도를 줄이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이 씨의 벤틀리는 차선을 바꿔 페라리를 향해 질주했다. 실수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특히 택시기사 김 씨와 박 씨 부부가 제출한 합의서가 결정적이었다. 김 씨는 사고로 인한 상처도 없었고 택시 뒤쪽 범퍼의 손상도 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합의금은 무려 2700만 원. 터무니없이 많은 돈이었다. 구체적인 피해 파악을 위해 합의를 최대한 늦추는 일반 사고의 경우와도 달랐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의 진술도 이상했다고 한다. 이 씨는 사고 전에 남편과 통화를 했다며 고의 사고를 강력히 부인했다. 반면 경찰은 통화내역을 근거로 남편과 통화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추궁했다. 결국 이들 부부는 고의사고를 냈고 이 점이 밝혀질까 두려워 택시기사 에게 돈을 건넸다고 경찰에 실토했다. 결국 지난 8월 17일 강남경찰서는 이 씨를 음주운전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상 흉기 등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택시기사 김 씨는 공갈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김 씨는 전과가 없는 평범한 사람인데 범죄를 저질렀다”며 “검찰로 송치가 끝났다”고 밝혔다.
박 씨 부부의 거짓말이 하나둘씩 들통 나자 사건은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처럼 돼 갔다.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을 중고차 매매상으로 소개했지만 말을 뒤바꿨다. 박 씨는 뚜렷한 직업이 없었다. 페라리는 한 리스업체의 소유였고 벤틀리 역시 박 씨 지인의 것이었다. 심지어 페라리의 리스료는 월 800만 원으로 밝혀졌다. 부부는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고가의 오피스텔에서 월세 700만 원을 내며 살고 있었다. 직업이 없어 별다른 소득도 없는 부부가 월 1500만 원의 돈을 꼬박꼬박 내고 있었던 것.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지 우리도 몰랐다”며 “검찰에 송치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과연 ‘페라리 벤틀리 부부’의 정체는 무엇일까. 최근 YTN 보도에 의하면 박 씨는 불법 도박 사이트를 관리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 박 씨는 2011년 5월 말부터 이듬해 4월까지 지인들과 함께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며 충천과 환전 업무를 봤다. 수백억 원대의 판돈이 오가는 사이트를 사실상 총괄 관리하며 매월 약 900만 원의 업무추진비를 받았다. 수원지방법원은 박 씨에 대해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수사과정과 재판에서 박 씨가 어느 정도의 수익금을 올렸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박 씨의 페라리 리스료와 월세의 출처가 ‘범죄수익금’일 확률이 높은 정황이 나온 셈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국세청이 나섰다. 박 씨 부부의 소득 출처가 분명하지 않아 국세청이 박 씨 부부의 소득을 추적해 탈세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조사 여부는 알려줄 수가 없다”며 “다만 차량 리스료는 현금으로 지급했을 가능성이 높다. 리스료의 원천을 밝히면 과세가 가능하지만 밝히지 못하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 사람들이 그 많은 돈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을 수는 없고 조사 과정에서 다른 차명계좌가 발견될 수 있다”고 보탰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온라인 불법도박 범죄 수익금 환수 가능할까 꼬리 잡는 건 별따기…“마늘밭 사건은 운 좋은 케이스” 지난 2011년 4월 전북 김제시 금구면 한 마을 마늘밭에서 작업을 했던 한 굴착기 기사가 땅에 묻어둔 7억 원을 훔친 도둑으로 몰렸다. 그는 억울하다며 황급히 경찰서를 찾았다. 경찰은 신고가 접수된 마늘밭에서 5만 원권 돈뭉치 110억 원을 발견했다. 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제 마늘밭 돈뭉치’ 사건이다. 110억 원 모두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 운영자가 은닉한 범죄수익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목이 집중됐다. 2011년 4월 불법도박사이트로 벌어들인 110억 원의 돈다발이 나온 전북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 마늘밭. 일요신문 DB 당시 마늘밭에 돈을 묻은 이들은 이 아무개 씨 형제였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 형제는 2008년 1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홍콩에 서버를 두고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운영해 170억 원의 이익을 챙겼다고 한다. 매형을 통해 밭을 매입한 이 씨 형제는 110억 원을 은밀히 땅에 숨겨놓았다. 마늘밭에서 나온 현금 110억 원은 전액 국고로 환수됐지만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으로 많은 돈을 벌고, 은밀히 현찰의 형태로 숨겼다는 사실에 경악한 이들이 많았다. 경찰 관계자는 “마늘밭 사건은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다. 사건이 다 끝난 다음에 돈이 나와 거꾸로 추적해서 확인이 된 것”이라며 “사실 범죄수익금 환수가 굉장히 어렵다. 도박 운영자들이 현찰로 찾아갖고 돈을 땅에다가 묻어놓으면 그만이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도 “보통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은 은행에 적금하지 않는다”며 “마늘밭에 묻어놓든, 아니면 자기 집 침대 밑에 쌓아둔다. 찾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고 보탰다. 국세청 관계자는 “온라인 불법 도박 운영자들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자기들이 돈을 송금받은 다음에 그 배당금 주고 나머지를 수수료로 가져간다”며 “어차피 회원들의 돈은 대포 계좌에 넣어놨다가 현금으로 인출해 수익 배분해서 나눠 가지는데 실제로 누가 얼마 가져갔는지를 모른다”고 설명했다. “출처가 확인되지 않으니까 과세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