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영화 <터미네이터 2>의 명대사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이 대사 그대로 실제 슈워제네거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터미네이터로 ‘다시 돌아왔고’, 마침내 올여름에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5편 격인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로 ‘또 다시 돌아왔다’. 그야말로 불멸의 영웅인 셈이다. 하지만 스크린 속의 영웅은 나이를 먹지 않을지 몰라도 현실 속에서의 슈워제네거는 세월과 함께 나이를 차곡차곡 먹었다.
<인디애나 존스> 해리슨 포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서 다시 한 번 액션 연기를 뽐낸 슈워제네거의 나이는 올해 68세. 하지만 슈워제네거의 경우가 결코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이미 중년을 훌쩍 넘은 나이에 보란 듯이 액션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고령의 액션 배우들은 많다. 해리슨 포드(73), 실베스터 스탤론(69), 리암 니슨(63), 브루스 윌리스(60) 등이 바로 대표적인 경우다. 사정이 이러니 톰 크루즈(53) 정도는 이들 사이에서는 ‘젊은 축’에 속할 정도다.
이처럼 할리우드 액션 배우들이 고령화되고 있는 까닭은 뭘까. 이에 대해 해외 언론들은 ‘과거의 향수’ 때문에, 혹은 ‘진정한 남성다움에 대한 갈망’ 때문에, 혹은 ‘중년이란 인식의 변화’ 때문에 등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60~70대 고령의 배우들이 비행기에서 뛰어 내리거나 아들뻘의 악당을 쫓아 도로 위에서 아슬아슬한 추격전을 벌이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니다. 아니면 손녀뻘의 어린 여성을 유혹하는 할아버지 세대의 배우들도 더러 있다.
이는 근래 들어 나타나고 있는 액션 스타들의 고령화 때문에 벌어지는 모습들이다. 이와 관련, 영국의 제작자 겸 시나리오 작가인 스티븐 팔로우스가 최근 흥미로운 조사를 실시했다. 지난 20년간 제작된 500편의 액션 영화를 대상으로 액션 배우들의 평균 나이를 조사한 결과 연령대가 가파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1년부터 급상승했던 평균 연령은 올 상반기 들어서는 50세에 육박했다. 2015년 상반기 액션 배우들의 평균 연령은 48.4세였으며, 40%가 30~40세, 29%가 40~50세였다. 지난 20년간 평균 연령이 가장 어렸던 해는 2005년으로 35.5세였으며, 전체 평균 연령은 39세 11개월 15.8일이었다.
팔로우스가 조사 대상으로 삼았던 액션 영화는 ‘라이브 액션 영화(컴퓨터 그래픽이나 모형을 사용하지 않고 배우가 직접 액션을 연기한 영화)’였으며, 부분적 혹은 전체적으로 미국이나 영국에서 제작된 영화, 그리고 1996~2015년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였다.
이런 ‘고령화 현상’은 올해 극장가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올여름 극장가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두 편의 액션 영화인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과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주연 배우인 톰 크루즈와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나이는 각각 53세와 68세였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1편부터 5편까지 무려 20년간 출연하고 있는 톰 크루즈.
스턴트맨 대역 없이 액션 연기를 직접 소화했던 크루즈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박력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벌써 2017년 개봉할 <미션 임파서블> 6편도 계약을 맺은 상태라고 하니 당분간 그의 액션 연기에 대한 열정은 쉬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1996년 <미션 임파서블> 1편에 출연했을 당시 나이가 34세였으니 장장 20여 년 동안 시리즈에 출연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롱런은 무엇보다도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흥행 성적이 나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올해 개봉한 5편의 경우 전 세계에서 5억 달러(약 6000억 원)가량의 흥행 수익을 올렸으며, 이는 아직까지도 크루즈의 액션 연기가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크루즈는 언제까지 액션 배우로 활동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 영국의 <데일리메일> 온라인판은 1986년 <탑건>으로 처음 액션 영화에 데뷔했던 크루즈에게는 앞으로 15년이란 시간이 더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했다. 70세에 가까운 슈워제네거의 경우를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돌아온다는 약속을 배반한 적 없는 영원한 ‘터미네이터’ 슈워제너거(왼쪽). <익스펜더블>에서 열연 중인 스탤론.
과거 <람보> <록키>를 통해 80년대 대표적인 액션 스타로 인기를 끌었던 실베스터 스탤론도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멋지게 부활했다. 지난해 개봉한 <익스펜더블 3>은 전 세계에서 2억 617만 2544달러(약 2500억 원)의 흥행 수익을 거뒀다.
이는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평균 나이를 생각하면 더욱 놀라운 수치다. 안토니오 반데라스(55), 이연걸(52), 웨슬리 스나입스(53), 멜 깁슨(59), 해리슨 포드(73), 아널드 슈워제네거(68), 돌프 룬드그렌(58) 등 배우들의 평균 나이는 무려 65세였다. 이 기세를 몰아 스탤론은 영화 <록키>의 스핀오프격인 드라마 <크리드>에서 다시 한 번 록키 발보아 역을 맡을 예정이다.
<익스펜더블>에서 노익장을 과시했던 해리슨 포드 역시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건재하긴 마찬가지다. 지난 2008년 60대 중반의 나이로 <인디애나 존스> 4편에 출연했던 포드는 비록 대역을 쓰긴 했지만 과거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뽐내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또한 무려 30년 동안 꾸준히 출연하고 있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한 솔로 역할을 맡고 있는 포드는 올 하반기에 개봉하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도 다시 한 번 한 솔로 역할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리암 니슨의 경우에는 뒤늦게 액션 배우로 전향해 성공을 거둔 경우다. 때문에 액션 배우로 한참 입지를 다지고 있는 와중에 벌써 60대가 되고 말았다. 니슨이 <쉰들러 리스트>의 정의로운 사업가에서 ‘킬링 머신’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것은 <테이큰> 시리즈 덕분이었다. <테이큰>을 통해 액션 배우로 자리잡는 데 성공한 그는 그 후 <툼스톤> <논스톱> 등 여러 편의 액션 영화에 출연했으며, 이제는 니슨을 가리켜 액션 배우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됐다.
사정이 이러니 <007 스펙터>로 다시 한 번 제임스 본드 역할에 도전하고 있는 대니얼 크레이그(47)는 그야말로 팔팔한 청춘(?)에 속하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나이든 배우들이 나오는 액션 장르를 일컬어 ‘제리액션’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제리액션’이란 노인을 의미하는 ‘제리애트릭’과 ‘액션’의 합성어다. 그렇다면 ‘제리액션’ 장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왜 할리우드 액션 스타들의 나이는 고령화 됐을까.
이에 대해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몇 가지 해석을 내놓았다. 가령 나이든 팬들이 과거에 열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이 좋았지’라는 생각에 실베스터 스탤론, 아널드 슈워제네거, 브루스 윌리스 등의 25년 전 모습에 열광하는 한편 영화 속 배우들의 모습을 통해 옛날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회상한다는 것이다.
또한 나이 든 액션 스타들을 오랜 시간 봐온 까닭에 이제는 그들에게 친숙함을 느끼게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지어 너무 친숙해서 아버지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배우들도 있다. 이를테면 과거 스크린 속의 액션 배우들은 성장기 시절의 관객들에게 진정한 남자가 무엇인지를 간접적으로 가르쳐줬다. 거대한 이두박근을 드러내 보이거나 과격한 싸움을 하거나, 위기 상황에서 미인을 구출하는 모습 등은 ‘남자란 바로 이래야 한다’는 것을 나타냈다.
비록 오늘날 남성다움에 대한 인식이 바뀌긴 했지만 알파메일(강한 남성)에 대한 매력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인하면서 위기 상황에서 늘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믿음직스런 모습 같은 것들이 바로 그렇다.
또한 할리우드가 고령화된 것은 중년이라는 의미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40대는 과거의 30대로, 그리고 50대는 40대로 인식되고 있는 식이다. 그리고 실제 노인에 대한 정의는 오늘날 많이 달라졌다. 남성들의 경우, 40대와 50대에도 다부진 근육질 몸을 뽐내면서 20대 30대 못지않은 힘을 자랑하곤 한다. 가령 올해 초 세계철인3종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의 평균 나이가 43.5세였다는 점만 봐도 이런 변화를 잘 알 수 있다.
또한 런던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완주한 40대들의 기록이 20대보다 평균 1분 이상 빨랐다는 점 역시 이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가디언>은 액션 배우들의 나이가 고령화되고 있는 추세를 ‘위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나이 든 액션 배우들은 젊은 배우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위엄’을 갖추고 있으며, 이는 액션 배우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평했다.
영화 비평가인 톰 세이모어는 안전함을 추구하는 영화사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불황이 계속되면서 제작되는 영화가 크게 두 종류로 양분됐다는 것이다. 하나는 위험한 투자를 하지 않는 초저예산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프랜차이즈 영화다. 후자의 경우 적어도 쪽박은 차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는, 다시 말해 본전은 거두리라고 확신하는 영화를 말한다.
세이모어는 “익숙함에 어필하는 것이다. 가령 영화계의 햄버거와 감자칩과 같은 셈이다”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점에서 유명한 스타를 캐스팅하는 것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과거에는 많은 감독들이 블록버스터 영화에 새로운 액션 배우를 투입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런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만일 액션 영화 한 편이 실패해 2억 달러(약 24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경우 그 영화사는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또 <텔레그래프>는 ‘마블’을 비롯한 액션 영화 제작사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 새로운 젊은 액션 배우들을 키워내도 이미 중년 혹은 노년의 액션 배우들을 위한 시장이 따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나이 든 스타들을 쉽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lr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