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코가 제시한 하한가보다 5000억 원이나 많은 7조 2000억 원에 매각을 성공했지만 ‘먹튀 논란’과 로열티 지급문제, 노조의 거센 반발 등으로 홈플러스 내부는 여전히 시끄럽다.
올해 초 영국 테스코 데이브 루이스 회장은 기업 개선안을 발표하며 “현재로서는 자산매각 계획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테스코의 경영 악화가 심각해지면서 홈플러스 매각설이 계속 흘러나왔고 업계에서는 홈플러스의 가치가 얼마나 될지에 대한 예측이 난무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한 대기업은 홈플러스 인수에 약 4조 원을 제시했는데 홈플러스 측은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재계의 한 관계자는 “홈플러스 측에서 ‘유통업계에서도 꽤 이름이 알려진 대기업이 시장 상황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언론플레이를 하며 거저먹으려는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고 한다. 홈플러스는 금융회사가 아닌 부동산과 유통라인이 결합한 일종의 ‘굴뚝형 기업’이다. 경기 침체로 유통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나 기존 인프라와 경영 노하우가 탄탄하기 때문에 4조 원은 너무 후려친 가격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이 정도 규모의 거래에서 적정가는 시장이 정할 수밖에 없다. 이번 입찰에는 MBK파트너스뿐 아니라 칼라일그룹, 어피니티-KKR컨소시엄까지 뛰어들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KKR은 오비맥주 인수전에서 승리한 적도 있을 정도로 이 방면에선 유명하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했다는 건 홈플러스의 자산 가치와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데서 나온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가격 또한 그 결과물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금액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홈플러스 측은 만족하는 분위기다. 한 고위 임원은 “당초 예상보다 잘 받았다. 우리 회사 경영 상태도 나쁘지 않는데 결국 시장이 이를 반영해 가격을 정해준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도성환 사장도 사석에서 ‘국내 자본이 홈플러스를 인수해 다행이다. 고용승계도 실질적으로 잘 마무리됐다. 노조가 좀 과도한 걱정을 하는 것 같은데 잘 될 것으로 본다’고 평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테스코의 ‘먹튀 논란’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테스코가 이번 매각으로 손에 쥐는 돈이 세금 등을 제하고도 6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심각한 국부 유출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 테스코가 합작사 삼성테스코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또 이후 추가 지분 인수 등에 들인 돈을 합하면 8000억 원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홈플러스 회사채 투자에 대한 이자 수익배당, 로열티 등으로 지난 15년간 대부분 회수한 상태다.
홈플러스 노동조합 측은 “테스코는 최악의 먹튀 자본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테스코가 비밀매각을 고수하고 매각 가격을 높이기 위해 투기자본으로의 매각을 추진했으며 1조 원대의 거액 배당을 추진하는 등 꼼수를 부렸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먹튀 논란’과 더불어 그동안의 로열티 지급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백재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테스코가 사용하지도 않은 상표의 로열티를 지급받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태”라며 “이미 영국 테스코가 본사의 경영 악화로 사업철수를 계획하고 자금을 회수하는 수단으로 로열티 지급을 사용했다고밖에 해석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론은 있다. ‘먹튀’를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으며 테스코는 16년 동안 홈플러스를 대형마트 업계 2위로 키워낸 업적도 있다. 유통선진국의 경영 노하우도 전수받아 무형의 국내 자산으로 이식시킨 점도 평가할 일이다.
앞의 재계 관계자는 “국내 정서상 먹튀 논란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먹튀 사건’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론스타는 약속을 수차례 파기하고 배상금 지급도 문제가 되는 등 도덕적 논란이 많았다. 현재 진행 중인 홈플러스 매각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국제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이란 측면에서 보면 이번 매각은 규칙을 어긴 것은 아니다. 더구나 홈플러스가 금융시장에서 주식투자 등으로 차익을 실현한 것이 아니라 유통업을 나름대로 성장시켜 국제적으로 한국 시장의 신뢰도가 오히려 더 높아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예상보다 거센 홈플러스 노조의 반발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 중 하나다. 노조는 전 임직원에 대한 확실한 고용승계 약속을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홈플러스 매각 반대 시민대책위’를 통해 경영진을 배임과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시민대책위는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홈플러스 경영진은 대주주인 테스코에 과다한 로열티를 지급하고 기준보다 높은 금리로 자금을 차입했다”면서 “홈플러스가 테스코(TESCO)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음에도 도성환 대표는 취임 후 기존보다 20배가 넘는 로열티를 지급해왔다. 테스코로부터 빌린 대여금 이자도 시중보다 0.4%포인트 더 높다”고 주장했다. 또 “비용 과다 계상은 법인세 포탈의 흔한 방법으로 도 대표가 로열티와 이자비용을 과다 계상해 세금을 탈루했다”고 덧붙였다.
홈플러스 노조는 전 임직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노조가 이토록 강하게 반발하는 데는 MBK파트너스의 과거 ‘전력’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MBK파트너스는 2008년 씨앤앰 인수 과정에서 노조와 만나 노사합의서를 작성하는 등 직원 고용승계를 약속했지만 결국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또 지난 2013년 ING생명을 인수할 때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약속해놓고 인수 후 6개월 만에 임원의 절반을 정리하고 부서 통폐합 과정에서 전체 직원의 30%에 희망퇴직을 통보했다.
또 당장은 아니더라도 향후 홈플러스를 더욱 비싼 가격에 팔기 위해 구조조정과 분할매각 등 무리수를 둘 수 있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사모펀드는 기업을 계속 운영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값을 부풀려 파는 게 목적이다. 기업을 분할하면 팔기가 좋기 때문에 분할매각을 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며 “사모펀드들이 가는 루트가 있다. 구조조정이 안 되면 기업을 심플하게 매각할 수 없다. 또 분할할 때도 직원들을 조정해야 한다. 틀림없이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현재로선 노조의 이런 우려가 일부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테스코와 MBK파트너스의 고용승계에 대한 약간의 온도차도 나타난다. 테스코는 “인수자로부터 기존의 고용조건을 유지하며 강제적인 인력 감축은 없을 것이라는 보장을 받았다”고 밝혔다. MBK파트너스도 인위적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MBK파트너스가 홍보대행사를 통해 기자들에게 보낸 보도자료에는 뉘앙스에 차이가 느껴진다. 자료에서 김광일 MBK파트너스 대표는 “홈플러스 직원들은 물론 노동조합, 협력사, 고객 및 기타 이해관계자들과 생산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회사 경영진과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고용승계나 구조조정과 관련한 직접적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향후 가능성까지 미리 배제할 필요가 없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여러 뒷말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서도 MBK파트너스는 향후 2년간 1조 원을 투입해 기업 정상화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MBK파트너스는 인수 후 5~10년 동안 기업 가치를 높여 재매각하는 방식으로 실적을 올려왔다. 홈플러스 역시 이와 같은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MBK파트너스는 국내 토종 사모펀드라는 점에서 외국계 자본과 달리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홈플러스 측이 1조 원대의 ‘꼼수’ 배당계획을 전격 철회한 점도 여론 악화를 의식한 유화책 중 하나다.
이번 홈플러스 매각은 자본에만 휘둘리지 않는 ‘한국형 빅딜’의 또 다른 시험장으로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