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하이텍 매각 작업이 잠정 중단된 가운데,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가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최태원 SK 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나 내부 관계자들로선 그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동부건설(구 미륭건설)을 내놓아야 한다는 사실에 상실감이 클 수 있지만, 시장에서는 인수합병 흥행에 대한 기대감에 동부건설 주가는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김준기 회장이 동부건설 매각을 결정한 것은 지난 2013년 11월 동부그룹이 자구계획안을 발표하면서부터다. 동부그룹은 몇 년간 이어진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그룹 해체 위기에 놓이자 동부건설을 비롯해 동부하이텍, 동부제철, 동부팜한농, 동부LED, 동부로봇 등의 계열사 매각을 결정했다. 이들 기업 상당수는 현재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동부하이텍은 매각에 대한 뚜렷한 일정이 나오지 않고 있다. 앞서 동부하이텍 채권단은 두 차례 매각을 추진했지만 불발된 바 있다. 1년여를 끌다 지난해 10월 실시한 본입찰에서 아이에이(IA)-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 컨소시엄이 단독으로 참여,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두 달 후인 같은해 12월 아이에이 컨소시엄은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반납 및 인수 의사 철회한다”는 뜻을 밝혀 매각 작업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아이에이 컨소시엄이 철회를 결정한 것은 중국 자금을 투자자로 참여시키려 했지만 계획처럼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어 지난 2월에는 중국의 반도체 위탁 생산업체 SMIC가 매각주간사인 산업은행과 노무라증권에 동부하이텍 인수의향을 밝혔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매각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오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SMIC는 인수 의사를 밝힌 수준도 아닌 초기단계에서 얘기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산업은행 관계자 역시 “매각의 최대 걸림돌로 꼽혀온 부채를 줄이고, 수익성을 높여 내실을 다진 후 매물로서 매력을 높여 매각을 다시 추진할 계획”이라며 “내년 초 다시 재개될 예정이지만,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매각 작업을 위한 접촉이 완전히 중단된 것은 아니다”라며 “적당한 인수의향자가 나타나면 언제든 매각이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SK그룹 계열사인 SK하이닉스가 동부하이텍을 인수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전망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되면서 더욱 탄력을 받았다. 정부가 최 회장의 사면 복권을 조건으로 SK하이닉스에서 동부하이텍을 인수할 것을 타진했다는 것이다.
올해 광복절을 앞두고 벌어진 ‘롯데 오너일가 경영권 분쟁’으로 국민 정서상 반재벌 기류가 강해진 상황에서, 광복절 특사로 사면 복권된 대기업 총수는 최 회장이 유일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등도 사면 대상자로 거론됐지만 결국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정부와 SK그룹 입장에서도 동부하이텍 인수는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다. 동부하이텍은 시스템반도체 제조사이기 때문에 중국 등 외국기업에 매각할 경우, 정부는 정치권으로부터 기술유출에 대한 책임 추궁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SK그룹 입장에선 인수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장담할 순 없다. SK하이닉스는 사실상 메모리반도체 기업이고, 동부하이텍은 시스템반도체가 주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부하이텍의 영업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되고 있고, 부채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장차 성장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경기 호조로 지난해 영업이익 5조 원을 기록하는 등 인수 여력도 충분하다.
하지만 동부그룹과 SK그룹, 산업은행 등의 관계자들은 이러한 분석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 특사 이후 M&A건에 SK그룹의 이름이 계속 거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최 회장 구속 이후 SK그룹이 여러 인수전에서 잇따라 실패했기 때문인 것 같다”며 “하지만 SK그룹이 시장 관측만큼 현재 M&A를 준비하고 있지는 않다. SK하이닉스의 동부하이텍 인수와 관련해서도 내부적으로 검토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동부그룹 관계자 역시 “SK하이닉스가 인수의사가 있었다면 이미 전에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했듯 동부하이텍은 위기를 극복하고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455억 원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이어 올해 상반기에는 매출액 2968억 원, 영업이익 461억 원을 달성했다. 동부하이텍 관계자는 “상반기 좋은 실적을 기록했다. 3분기에도 실적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또한 동부하이텍은 현재 6200억 원에 달하는 신디케이트론(다수 은행이 같은 조건으로 하는 중장기 대출로 만기 때 연장 가능) 중 1500억~2000억 원을 내년 초까지 부채상환하는 등 자구계획안을 추진하며 채무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이처럼 기업 상황이 좋아지면서 주가도 급등했다. 지난 1월 23일 4220원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지난 10일 1만 6200원을 기록하는 등 4배 가까이 뛰었다. 이처럼 기업 가치평가가 상향되면, 매각가격 역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훗날 다른 기업에서 인수를 결정할 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도 인수희망자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매각가가 더 올라간다면 동부하이텍을 인수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기업이 있을지는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상황에 따라 동부하이텍 매각이 아예 철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에도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