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윤은혜가 현재 처한 상황은 진퇴양난에 가깝다. 남이 만들어놓은 옷 디자인을 도용해 자신의 것처럼 속여 소개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는데도 마치 노이즈 마케팅의 희생양인 듯 행동해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급기야 앞서 발표했던 또 다른 옷들도 해외 유명 브랜드의 디자인을 베꼈다는 주장이 추가로 제기됐다. 현재 윤은혜가 디자인한 옷은 중국 여러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상황. 자칫 한국과 중국을 넘나드는 소송전이 벌어질 가능성마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번 논란은 의류 브랜드 아르케의 디자이너 윤춘호 씨가 이달 5일 “윤은혜가 내 디자인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현재 윤은혜는 중국 동방위성TV가 패션을 주제로 방송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여신의 패션> 시즌2에 출연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5명의 유명 스타와 또 다른 5명의 디자이너가 2인1조로 팀을 이루고, 매회 주어지는 주제에 맞게 옷을 디자인해 발표하는 내용이다. 출연자간 철저한 경쟁이 필요하고, 매회 등수를 매겨 상위에 오른 옷은 현지 바이어에게 판매된다.
윤은혜는 지난 8월 29일 방송된 프로그램에 출품한 흰색 재킷과 원피스가 윤춘호 씨의 디자인과 비슷하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소매에 프릴이 달린 흰색 코트가 윤 씨가 올해 처음 내놓은 디자인과 흡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윤은혜는 이 옷으로 1등을 차지했고, 그 자리에서 중국 바이어는 약 40억 원을 주고 디자인 권한을 사들였다. 윤은혜의 옷은 현재 중국 쇼핑몰에서 600위안 내외, 우리 돈으로 약 11만 원 안팎에 팔리고 있다. 윤춘호 씨가 디자인한 옷 역시 중국, 홍콩 백화점과 편집 숍에서 판매되고 있다.
표절논란을 일으킨 흰색 코트. 오른쪽이 윤춘호 씨가 만든 의상작품이다.
# 논란의 주인공 윤은혜, 의혹만 더한 해명
윤춘호 씨는 윤은혜가 최근 1년여 동안 자신의 브랜드 옷을 협찬받았던 배우란 점에서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특히 <여신의 패션>에서 윤은혜와 팀을 이룬 스타일리스트 노광원 씨도 최근까지 윤춘호 씨의 브랜드로부터 다수의 의상을 협찬받았다.
문제는 윤은혜의 아이디어 도용 의혹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 윤은혜가 출연한 드라마 <궁>의 미술 스태프로 일했던 박 아무개 씨는 최근 SNS를 통해 “방송 당시 윤은혜가 디자인했다고 알려진 운동화는 드라마 미술 스태프의 작품”이라며 “윤은혜가 자신이 한 것처럼 언론플레이한 기억이 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윤은혜가 패셔니스타를 향한 열망과 예술적인 재능이 있음을 인정받고 싶은 나머지 앞뒤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윤은혜는 <궁>에서 보여준 감각적인 디자인 실력으로 유명세를 더했다. 예술적인 면에서도 실력을 갖췄다는 점이 알려져 대중의 호감을 얻은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게 10년여 동안 갖고 있던 이미지가 사실은 누군가의 디자인을 도용해 만들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대중이 느끼는 박탈감도 적지 않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윤은혜의 대처법이다. 논란이 불거지고 4일이 지난 뒤 그는 윤춘호 씨가 아닌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 여러 개를 거론하며 “그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두 의상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엉뚱하게 “노이즈 마케팅에 악용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 반감만 키웠다.
과거 윤은혜와 드라마 작업을 함께했던 연예계 관계자는 “대중의 정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리스크 관리의 실패로 보인다”며 “의혹이 불거진 상황에서 무조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여론을 설득했어야 하는데 감정이 앞선 미숙한 대처였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된 데는 대중과 적절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윤은혜의 평소 성향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시선도 나온다. 실제로 윤은혜는 지난해 팬클럽 사이트를 개설해 팬들과 소통하겠다고 했지만 그가 선택한 출연작에 대해 팬들이 반대 의견을 게재하자, 팬들에게 ‘경고성’ 글을 게재해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이 사건으로 팬들이 대거 이탈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 표절 했나, 안했나…
윤은혜가 표절을 부인하자 윤춘호 씨는 2차 입장을 통해 의심의 배경이 되는 내용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코트와 실루엣, 프릴 형태, 볼륨, 길이, 어깨 패턴 등을 볼 때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문제가 되는 두 의상은 같은 옷으로 보일 만큼 전체적인 디자인과 색, 느낌마저도 같다”고 했다. 또한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윤은혜의 주장에 “브랜드를 위해 굳이 윤은혜의 이름을 쓸 필요가 없다”고 못 박았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두 의상이 상당히 흡사하다고 보고 있다. 윤은혜의 표절 논란을 집중적으로 다룬 SBS <한밤의 TV연예>를 통해 채규인 디자이너는 “옷소매 길이나 스타일이 굉장히 유사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윤은혜는 9일 중국에서 진행된 <여신의 패션> 녹화를 강행했다. 국내 여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 관계자는 “중국은 현실적으로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족하고 엄격한 사회적 잣대로 평가받는 분위기가 아니다”면서 “당장 큰 논란이 되지 않아도 한국 연예인이 중국 프로그램에 출연해 표절 논란을 만드는 건 향후 어떻게든 부정적인 여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방송 출연을 강행하는 윤은혜의 선택에 대한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윤은혜가 디자인한 의상이 이미 중국 현지에서 판매되는 사실은 또 다른 의혹의 시선을 갖게 한다. 앞서 윤은혜 측은 “프로그램에만 참여할 뿐 해당 디자인의 판매 및 수익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주장이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