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차 중앙위원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내 비주류는 물론 ‘천정배 신당’으로 쏠릴지 모르는 제3지대까지 껴안아야 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문 대표에 대해 거는 실질적 신임은 약해지고 있다. 재신임 투표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10월 중순을 넘어 본격적인 공천 과정이 진행되는 내년 1월 사이 ‘문재인 체제’를 뒤흔들 본게임이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9월 16일 새정치민주연합 중앙위원회는 당 지도체제 개편과 공천방식 변경, 두 가지 당헌 개정안을 박수로 가결했다. 비주류 의원들이 격렬히 반발, 퇴장했지만 남은 중앙위원 대부분의 여론은 이번 혁신안을 지지한 셈이다. 이로써 문 대표가 제시한 3단계 재신임안 가운데 1단계는 통과됐다. 문 대표는 혁신안 의결 뒤 당원투표와 국민여론조사 중 하나라도 사퇴(불신임) 여론이 높으면 따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 내분이 쉽사리 정리될 분위기는 아니다. 비록 표결 정족수에 영향을 주진 못했지만 비노 인사들은 표결 전 집단으로 퇴장했다. 중앙위 개최에 반대해 전날 문 대표와 담판을 벌였던 안철수 전 대표는 아예 중앙위에 불참했다. 안 전 대표는 “혁신안은 ‘국민이 왜 우리 당을 신뢰하지 않는가’라는 핵심질문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며 “혁신안 찬반이 아니라 사실상 대표의 진퇴를 결정하는 자리로 변질돼 중앙위원들의 토론과 반대를 봉쇄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문 대표가 강행 의지를 밝힌 재신임 투표에는 비주류 진영뿐 아니라 일부 중진들마저 부정적인 입장이다. 문 대표 재신임투표관리위원장을 맡은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당의 분위기가 어제 중앙위 개최로 정리되는 시점”이라며 “이런 시점에서 굳이 재신임 투표를 강행할 필요가 있는지 당 내외 여론을 모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석현 국회부의장도 “지금 재신임투표를 하는 게 괜히 당내 분란만을 키우는 게 아닌가 싶다. 다른 중진의원들과 의견을 모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표 체제로는 서울·수도권 지역 선거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지도부 내부에서부터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사진은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
문 대표의 이 같은 행보는 재신임을 얻더라도 당내 계파 갈등을 수습하기 어렵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는 자칫 문 대표 체제로는 내년 총선에서 대패할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번져 ‘재신임 정국’보다 더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도 암암리에 제기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사정에 밝은 한 선거 전략가는 “이 당은 문재인을 비롯해 박원순, 안철수 등등의 연합체로 선거를 치르는 당”이라면서 “이들 중 하나라도 빠진다는 것은 ‘천정배 신당’이 뜬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야권 내 신당은 기본적으로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내년 총선에서 독자세력화를 도모하고 있다. 그 중 천정배 전 의원이 9월 20일 창당하는 신당이 가장 주목받고 있으나 그 파괴력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문 대표가 통합행보에 실패하고 새정치민주연합 내 호남 지역 의원들과 비주류 진영 반발을 잠재우지 못할 경우 총선에서 ‘천정배 신당’이 호남 지역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치권에선 ‘천정배 신당’이 호남에서 뜰 때 그 파급효과가 호남 지역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서울·수도권 판세를 좌우하는 호남 출신 유권자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쳐 전체 총선 국면에서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노 진영 측 한 관계자는 “결국 총선 국면에서 문 대표가 자신의 역할을 줄여야 한다”면서 “비노 진영뿐 아니라 범 친노(친노무현) 진영도 이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문재인 체제에 대한 저항이 지도부 내부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즉 지도부 사퇴에 따른 조기 전당대회 개최로 문 대표 체제가 무너지는 시나리오다. 문재인 당대표 체제로 서울·수도권 지역 선거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주승용·전병헌 최고위원은 물론 오영식·유승희 최고위원까지 지도부를 무너뜨리는 데 가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문 대표가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을 때 비노 진영에서는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한 차례 요구한 바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지난 2011년 가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벌어졌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최고위원들이 잇따라 사퇴하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를 옹립했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친박도 비박도 박근혜 유세 지원을 찾는 게 선거”라면서 “지금이야 당내 동력이 크지 않지만 총선으로 다가가면서 현역 의원들이 위협을 느끼면 상황은 확 변한다. 11월, 12월 가면 현역 의원들이 들고 일어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지도부 교체론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총선 전망이 위기 수준으로 악화될 때 가능하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이 내년 총선에서 80석 내지는 100석밖에 건지지 못할 것이란 비관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여론조사 전문기관들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기우라는 지적이 많다.
또 호남 유권자들이 비록 친노에 대한 반감 때문에 다소 이탈할 수 있겠지만 정권교체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는 시점에 가서는 신당에 지지를 모아주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문 대표가 안 전 대표 등 비노 주자들과 확실하게 손을 잡고 ‘천정배 신당’ 바람을 조기에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비노 진영 선봉에 나선 안 전 대표 또한 탈당 카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고 손학규 전 상임고문 역시 총선 전 움직일 가능성은 적어 분당이나 신당으로의 원심력도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범 친노 진영의 새정치민주연합 한 관계자는 “총선에서 승리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은 아니지만 크게 위협받을 만큼의 상황이 되지도 않아 지도부 교체 움직임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주승용 최고위원 등 비노 진영이 한풀 꺾인 게 그 이유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태은 머니투데이 the300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