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 정국’에서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연일 문재인 대표를 향해 공세를 펼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안 전 공동대표가 야권 권력구도를 ‘문재인 대 안철수’로 재편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사진은 2012년 11월 대선 당시 두 후보가 단일화 논의를 위해 단독회동을 한 모습. 사진제공=문재인
당내 친노(친노무현)계 인사들은 안 전 대표 재기 여부에 대해 하나같이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해서도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안 전 대표에 대한 당 주류 인식이 어떤지 단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나섰다. 안 전 대표가 남긴 숙제 때문이다. 바로 ‘중도 무당파’ 흡수다. 이는 문재인 대표의 최대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손학규 전 상임고문 등은 ‘현직 시장’과 ‘정계은퇴’라는 타이틀 탓에 정치적 공간이 협소한 상황이다. 그 공간을 안 전 대표가 치고 들어갔다. 명분은 ‘정권교체’와 ‘혁신(새 정치)’이다. 2012년 대선 프레임의 판박이다. 안철수 현상의 유산이 내 것이라고 시위하듯이, 그는 연일 강한 권력의지를 보이며 정면 돌파에 나섰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사실상 안 전 대표에게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안 전 대표가 재신임 정국에서 대권 ‘플랜 B’를 가동한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문 대표의 재신임 정국은 김상곤 혁신안의 통과 여부에서 촉발됐다. 혁신은 곧 새 정치다. 이는 한때 안 전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문 대표와 김상곤 위원장 등이 당내 혁신안을 선점하자 안 전 대표 측 내부에서는 ‘조기 대권플랜’을 가동해야 한다는 얘기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가 문 대표 운명의 1차 분기점이었던 9월 16일 중앙위원회 개최 직전 승부수를 던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는 중앙위 개최 하루 전 “왜 대표직을 연계하는 건지 알 수 없다. 혹시나 혁신 논쟁을 권력 다툼으로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이라면 혁신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며 중앙위 무기한 연기와 재신임 투표 취소 등을 요구했다.
또한 정치적 담판도 제안했다. 문 대표가 화답했다. 이들은 9월 15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배석자 없이 회동하고 당 혁신방안을 논의했다. 안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중앙위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문 대표는 “표결을 안 하면 혁신이 무너진다”며 거부했다. 극적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이들은 중앙위 이후 혁신문제에 대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언뜻 보면 ‘빈손 합의’다. 다만 파국만은 막았다. 범야권 미래권력의 두 축이 정치적 담판을 통해 당 내홍을 수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야권 한 관계자는 “그래도 안철수가 나서면 국면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그랬다. 그간 비주류 구심점인 김한길 의원을 비롯해 박지원·박주선 의원 등이 문 대표를 흔들었지만, 당 내홍만 심화됐다. 하지만 안 전 대표가 나서자 수습을 위한 물꼬는 트였다. 안철수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 장면이다.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문 대표 중심의 야권 발 정계개편을 제어하겠다는 것”이라며 “그간 박근혜 대통령에게 치중한 공격을 내부로 돌리면서 범야권 지지층에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는 것 아니냐”라고 설명했다. 안 전 대표가 재신임 정국에서 권력의지를 향한 강한 ‘결기’를 보여준 것은 야권 권력구도를 ‘문재인 대 안철수’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라는 얘기다. 본선 링(대선)에 오르기 전 1차 예선(당내 권력투쟁)에서 맷집을 키운 뒤 2차 예선(총선)을 치르겠다는 계산이다. 1차 예선에서 패하면 2차 예선도 장담키 어렵다. 공동대표 시절 부족한 세로 친노 강경파에 휘둘렸던 안 전 대표로선 20대 총선에서 자신은 물론, 측근들의 대거 입성이 최대 과제다. 최근 안 전 대표 측근들의 움직임이 빨라진 것도 이런 까닭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야권 전략통은 이와 관련해 “차기 총선에서 안철수계 15명 안팎을 만들 수 있을지에 따라 안 전 대표 운명이 갈릴 것”이라고 점쳤다. 안 전 대표 측근들은 총선 얘기에 “아직 먼 얘기가 아니냐”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내부에서는 19대 국회의 김한길·박지원계 정도는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힘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김한길·박지원계는 각각 15명 정도다. 20대 총선에서 이 중 절반만 생환하더라도 비노(비노무현)계 파급력은 무시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안 전 대표가 비노계 수장들보다 대중성이 월등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기 대선 국면에서 비노계 모두를 포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는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문 대표와 ‘일대일’ 구도만 된다면 한 번 해볼만 하다는 셈법이 깔렸다. 대중성에 의존하던 안 전 대표 측이 ‘몸집 불리기’ 등 세력 확보로 전환한 이유다.
야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세력 확보에 나선 이유에 대해 “지난 대선 당시 지지율 셈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문 대표와 안 전 대표는 ‘대체재’ 관계였다. 한쪽의 지지율이 올라가면 한쪽은 필연적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지금은 ‘순망치한’ 관계에 가깝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실제 그랬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의 2월 2주차와 9월 2주차 조사를 보면 이들의 관계는 확연히 드러난다. 2월 2주차 당시 문 대표 지지율은 25%로 1위를 기록했다. 문 대표의 9월 2주차 지지율은 12%로 반 토막이 났다. 그런데 안 전 대표의 지지율도 11%에서 9%로 하락했다. 문 전 대표로부터 이탈한 지지층을 흡수하지 못한 셈이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문재인 대표 재신임 투표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표 지지율이 떨어지는 사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지지율은 올랐다. 김 대표는 10%에서 15%, 박 시장은 11%에서 15%로 각각 상승했다. 문 대표 지지율 하락의 반사이익을 김 대표와 박 시장이 차지한 것이다. 안 전 대표는 중도 무당층이 다수인 서울에서 8%, 한때 전략적 선택을 받았던 호남에서도 7%로, 평균치를 밑돌았다. 새정치연합 지지층과 무당층에서는 각각 11%를 기록했다. 더 이상 무당층이 안 전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수치로 드러난 것이다. 세대별 조사에서는 20대(19세 이상 포함)에서만 18%를 기록했을 뿐 30대 8%, 40대 10%에 그쳤다. 화이트칼라 계층에서도 9%에 불과했다. 두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친노계 관계자는 “안 전 대표의 지도부 흔들기가 노골화되고 있지만 당분간 전략적 제휴를 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표면적으로는 공격하더라도 내년 총·대선까지 문 대표와의 일대일 구도를 만들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담판 회동 직후 문 대표가 “중앙위 개최가 불가피하다는 부분은 안 전 대표가 받아들였다”고 하자 즉각 “불가피하다면 혁신토론으로 지혜를 모으는 장으로 만들자고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중앙위 참석과 관련해선 “사실상 대표의 진퇴를 결정하는 자리로 변질됐다”며 불참을 통보했다.
안 전 대표의 대권플랜은 ‘문재인 때리기→총선 헤게모니 확보→측근 심기→대선 경선 위한 세 확보→문재인과 일대일 승부’다. 안 전 대표의 대권플랜은 이제 시작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