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살해 사건이 발생한 금암2파출소 옥상에서 촬영된 사진. 범인이 도주한 곳으로 추정되며 곳곳에서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됐다.
발견 당시 백 경사는 가슴과 목 등을 흉기로 여섯 군데나 찔렸다. 여기에 실탄 4발과 공포탄 1발이 장전된 38구경 권총도 사라진 상태였다.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여겨지던 파출소에서 동료를 잃은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공권력은 물론, 탈취한 권총으로 일반 시민들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신창원 탈옥 사건 이후 가장 고위급 인사가 본부장을 맡았다는 수사본부를 차리고 병력 527명을 투입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전주 덕진경찰서의 한 형사는 “치안 유지를 위한 최소 병력을 제외하고 전북의 거의 모든 형사들이 이 사건에 매달렸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수사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 파출소 내 CCTV가 작동되지 않았던 것. 현재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덕진경찰서 강력4팀 박종옥 경위는 “당시 지역 경찰서 CCTV는 대부분 비디오 캠코더였다. 꺼둔 채로 방치하기도 하고, 작동되지 않는 경우도 잦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파출소 인근에서 상인들을 대상으로 목격자 확보에 나서는 한편, 백 경사 주변 인물들에 대한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또 인근 불량배와 정신질환자, 전과자, 최근 출소자 등을 추려 300여 명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를 벌였다. 여기에서도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사건은 장기화될 모양새였다.
사건 발생 다음날인 2002년 9월 21일 금암2파출소 전경. 현재 금암2파출소는 이전했다.
그런데 사건 발생 3개월 가까이 지난 2003년 1월 14일, 파출소 인근 음식점에서 벌어진 작은 절도 사건에서 전환점을 맞는다. 당시 경찰은 특수절도 혐의로 조 아무개 씨(당시 22세)와 박 아무개 씨(21), 현역 군인이었던 김 아무개 씨(21) 3명을 며칠 간격을 두고 검거했다. 이들은 전주시 덕진구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함께 음식물을 훔쳤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조 씨 등을 조사하면서 백 경사 피살사건과 관련해 수상한 정황들을 발견했고, 이후 이들은 백 경사 피살사건에 대한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당시 조 씨 등이 경찰에 진술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들이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오토바이’ 때문이었다. 이들은 중학교 동창 사이로, 사건이 일어나기 네 달 전인 2002년 5월 22일, 박 씨가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에서 무면허 오토바이 운전을 하다 백 경사의 단속에 적발됐다. 백 경사가 숨진 날 이들이 파출소로 간 이유는 압수된 오토바이를 훔치기 위해서였다.
사건 당일 박 씨가 파출소 뒷담을 넘어 침입하는 사이, 김 씨는 파출소 정문을 통해 들어가 백 경사의 주의를 끌었다. 조 씨는 길 건너편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 박 씨는 몰래 오토바이를 끌고 나오려했지만 자물쇠가 걸려 있어 여의치 않았다. 결국 파출소에 들어가 김 씨와 함께 “오토바이를 돌려 달라”고 항의했다. 이후 이들은 백 경사와 말다툼을 벌였고, 이어진 실랑이에서 박 씨가 소지하고 있던 흉기를 휘둘러 백 경사를 살해하고 권총을 탈취했다.
조 씨 등이 범행을 자백하면서 백 경사 피살사건은 해결되는 듯했다. 그런데 이후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조 씨 등이 조사 과정에서 경찰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자백을 했다며 진술을 번복한 것. 그동안의 경찰 수사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당시 한 언론은 절도 혐의로 교도소에 있던 조 씨와 접견한 이후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박민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지난 2003년 2월 5일 “박 씨와 조 씨가 조사를 받으면서 전주 덕진경찰서 4층 체력단련실에서 주먹과 걸레자루로 뺨과 발바닥을 얻어맞았으며, 속칭 다리 벌리기 등 기합을 받았다고 말했다”며 “이들이 몇 차례 구타를 당하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경찰관을 죽였다고 허위 진술을 했다. 조 씨 등은 경찰을 죽이거나 총기를 탈취한 일이 결코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경찰의 가혹행위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 2003년 2월 시민단체인 전북평화와인권연대가 수사본부장 등 10명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했고, 국가인권위가 조사에 나서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인권위는 성명을 내고 “수사기록, 변호사 접견기록, 덕진경찰서 소속 전·의경들의 진술, 조 씨 등과 경찰의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경찰이 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가혹행위에 의한 수사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경찰이 박 씨를 절도 혐의로 긴급체포한 이후 살인혐의에 대한 자백을 강요하면서 머리를 손바닥으로 수회 구타하고, 구둣발로 밟는 등 폭행한 것으로 믿을 만한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조 씨의 허위자백 의혹은 큰 문제가 됐다. 인권위는 “경찰은 조 씨가 성적발달장애 및 경도정신발육지체, IQ 54 등으로 군 면제 판정을 받은 사실을 입증하는 치료기록 등을 조 씨의 어머니로부터 제출받아 인지했음에도 밤샘조사를 거듭 실시, 구타하며 자백을 강요했다”고 비판했다. 이후 조 씨 등의 조사를 담당했던 수사 감독관 강 아무개 경정을 포함한 형사 7명이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경옥 경위는 “당시 덕진경찰서는 ‘국가인권위는 조 씨 등의 주장과 진술만을 그대로 나열했을 뿐, 범행 정황 증거, 용의자 진술 자료 등에는 언급이 없다’고 강하게 반박했다”며 “용의자 중 김 씨는 군인 신분으로 헌병대에서 따로 조사를 받았다. 조 씨와 박 씨 역시 대면, 대질 없이 조사를 받았는데도 범행 동기와 현장 재연 상황, 도주 방법을 동일하게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조 씨의 정신질환을 이용해 진술을 강요했다고 지적했지만, 조 씨의 특수절도 12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과거 절도 혐의에 대한 조사 과정 중 조 씨의 진술을 피해자에게 확인한 바, 모두 일치해 특수절도 여죄 12건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았다”면서 “유독 경찰관 살해사건에 대해서만 IQ를 언급하며 신빙성이 없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일요신문>은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인권위 관계자에게 수차례 전화와 메시지로 연락을 시도 했으나 답은 없었다.
조 씨가 절도 혐의로 검거된 이후 최초 조사를 하고,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던 전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장승우 경위는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조 씨와 박 씨는 범행 자백 당시 각각 부모 입회하에 진술했고, 그 자리에서 자백했다. 가혹행위 논란이 제기될 여지가 없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조 씨가 음식물을 훔친 혐의로 검거된 날, 최초 조사 과정에서 ‘금암파출소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조 씨 등이 가출해 사건이 발생한 파출소와 가까운 식당에 기거 하고 있었고, 기존 범법자와 전과자 등을 중심으로 사건을 수사하던 때라 단순히 사무적인 질문이었다. 그런데 조 씨가 ‘알고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 질문 이후부터 조 씨가 고개를 들지 못하고 대답을 잘 하지 못하자 ‘혹시 네가 찔렀냐, 안 했으면 안 했다고 하면 된다’라고 했더니 ‘제가 한 건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이후 함께 빵과 우유를 나눠 먹고 담배를 피우면서도 조 씨가 불안해하자 무언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조 씨는 장 경위에게 모든 범행 사실을 털어놨다. 군 헌병대에 구금돼 있던 김 씨를 접견한 김 씨 아버지도 경찰에 “아들이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며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후 경찰은 조 씨 등 3명을 백 경사 살해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발표했다.
장승우 경위는 “조 씨 등이 절도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최초 진술을 번복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여기에 당시 신생 지역 언론사 기자들이 공개하지 않은 수사 내용을 조 씨에게 알리기도 했다. 전주교도소 측으로부터 입수한 이들의 접견 기록을 보면, 해당 기자들이 박 씨의 진술 번복 사실을 모르고 있던 조 씨를 접견하며 ‘정말 범행을 했느냐. 박 씨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전하자, 그때부터 조 씨가 ‘그럼 나도 하지 않았다’라고 대답한 기록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후 경찰을 상대로 한 인권위와 검찰 조사가 시작됐고, 조사 대상이었던 경찰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보탰다.
당시 경찰은 가혹행위 논란을 종식시키려 “증거를 찾아내 살인혐의로 기소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결국 이들 3명에 대한 살인 혐의 적용에 실패했다. 사라진 총기와 범행에 사용된 흉기 등 직접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조 씨는 “아지트 천장 상자에 총기를 숨겼다”고 진술했지만, 혈흔이 묻어있었을 뿐 총기는 없었다. 박 씨와 김 씨 등이 지목한 건지산 일대와 인적이 드문 하수도와 화장실, 물탱크 등에 대한 수색작업도 허사였다. 결국 용의자 셋 가운데 조 씨와 박 씨, 둘만 절도 혐의로 기소돼 지난 2003년 3월 26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현재 조 씨 등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부모님 등과 함께 살고 있다. 피해자의 기일(20일)을 앞둔 유족들은 수년 전 경찰과 연락이 끊긴 상태다. 박경옥 경위는 “수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라며 사무실 한 구석 대형 캐비닛에 가득 차 있는 백 경사 사건 관련 자료를 보여줬다. 그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반드시 범인을 찾아내겠다”라고 의지를 내비쳤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누가 왜 경찰을 죽였나 원한? 잔인하게 여섯 번이나… 백 경사 피살사건 발생 당시 경찰 수사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됐다. 원한 관계에 의한 범행, 우발적 범행, 총기 탈취를 위한 계획적 범행 등이다. 또 부검 결과 백 경사의 시신에서는 특별히 저항한 흔적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백 경사가 범인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다가 갑자기 피습을 당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경찰은 이를 통해 범인이 백 경사와 안면이 있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여기에 범인은 백 경사를 여섯 번이나 찌르고 권총을 탈취해 가면서도 현장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또한 파출소 뒷문 등에서 백 경사의 혈흔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이 같은 정황들로 볼 때 범인이 파출소 내부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경찰은 또 범인이 총기 탈취를 위해 계획적으로 범행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했다. 백 경사를 흉기로 찌른 뒤 누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파출소 안에서 시간이 지체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권총을 케이스에서 떼어내 가져갔기 때문이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