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에 사는 결혼 3년차 김수민 씨(여·31)는 첫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쌍둥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김 씨는 “걱정이 앞서긴 하지만 아이 둘을 계획하고 있어, ‘차라리 한 번에 쌍둥이를 낳는 게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임신·출산을 두 번씩 하는 것도 두렵고 남편도 은근히 바라는 눈치”라고 말했다.
쌍둥이를 계획하는 김 씨의 사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쌍둥이 출산을 원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지난 8월 25일 발표한 ‘2014년 출생 통계’를 보면, 다태아(쌍둥이, 세쌍둥이 등) 출산은 2013년과 비교해 5.6% 증가했다. 10년 전인 지난 2005년과 비교하면 43% 이상 늘었다. 지난해 전체 출산율은 통계가 작성된 이래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지만, 다태아 출산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그만큼 쌍둥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지난 1월 30일 한 결혼정보회사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가장 선호하는 자녀 연령대 형태’에서 미혼남녀 350명 중 31%가 ‘쌍둥이’라고 답했다. ‘3살차 이상(34%)’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덩달아 쌍둥이 용품도 인기다. 서울 강남구의 한 아기용품 판매점 관계자는 “쌍둥이 용품을 찾는 손님들이 많이 늘었다. 관련 상품 매출은 지난해와 비교해 20% 정도 높아졌고 종류도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쌍둥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에는 TV 예능 프로그램의 역할이 컸다. 앞서의 김 씨는 “TV에 나오는 쌍둥이들이 형제이면서도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을 보니, 출산 이후 직장을 다니게 되더라도 혼자 둘 때보다 안심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3년 전 쌍둥이를 얻은 이진선 씨(여·34)도 최근 TV에 비친 쌍둥이 덕에 기분이 좋다. 그는 “처음 쌍둥이를 낳았을 땐 ‘육아비, 교육비 어떻게 감당할 거냐’, ‘고생이 많겠다’는 등 주변의 걱정과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유명 연예인들의 쌍둥이 자녀가 인기를 끌면서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쌍둥이 낳는 비법을 묻는 지인들도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이 쌍둥이에 대한 인식을 바꾼 것 같다”고 말했다.
쌍둥이를 고려하고 있는 맞벌이 부부들도 있다. 결혼 2년차 직장인 정상민 씨(32)는 “아내와 상의 끝에 아이 둘을 계획 중이다. 내년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할 생각인데 아내는 ‘둘을 낳으면 직장을 두 번 쉬어야 한다’며 걱정이 많다. 회사에서 출산·육아 휴직 1년에 더해 조금 더 쉴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더 눈치가 보인다고 한다. 쌍둥이 생각을 안 해볼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가 초음파 검사로 뱃속 아기의 건강을 확인하는 사진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물론 원한다고해서 누구나 쌍둥이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부 여성들이 쌍둥이 임신을 ‘계획’할 수 있는 이유는 비교적 높은 확률로 쌍둥이 임신이 가능한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과배란 주사’라 불리는 배란 유도제다. 이 주사는 난임 시술의 한 방법으로, 배란 유도제를 주사해 한꺼번에 많은 수의 난자를 얻어 배아를 만든 후, 자궁에 이식해 수정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난임 시술 초기에는 1개의 난자만을 채취해 수정시켰는데, 최근에는 임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개의 난자를 채취해 수정한다. 이 과정에서 쌍둥이 임신율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지난 11일 남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이 시술을 통해 태어난 아기 가운데 41%가 쌍둥이였다.
이 때문에 일부 난임을 겪고 있지 않은 가임기 여성들도 산부인과에 이 시술을 문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일부 산부인과의원들은 이 시술을 통해 “원한다면 얼마든지 쌍둥이를 낳을 수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산부인과 원장은 “배아 이식 수를 조절하면 세쌍둥이는 물론 네쌍둥이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산부인과 상담실장은 “이 시술로 쌍둥이 임신 확률을 절반 가까이 높일 수 있다. 쌍둥이를 원하는 여성들이 문의를 많이 한다”고 귀띔했다.
일부 한의원에서도 쌍둥이 임신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약재가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전북 전주의 한 한의원은 상담 예약을 위한 전화통화에서부터 ‘쌍둥이 약재’ 이야기를 꺼냈다. 해당 한의원의 상담실장은 “인공수정이나 시술을 받지 않고서도 이 약재를 달인 탕을 먹으면 쌍둥이를 가질 수 있다. 물론 100%는 아니다. 확률을 높여준다는 뜻이다. 하지만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도 아이 계획이 있는 부부들이 직접 방문해 이 탕을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쌍둥이 임신 목적으로 사용되는 약재나 시술은 없다고 일축했다. 지난 1월 대한한의사협회는 ‘쌍둥이를 낳을 수 있는 한약’이 있다고 주장한 한의사를 협회 윤리위원회에 회부했다. 김지호 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약재 복용으로 쌍둥이 임신이 가능하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 해당 한의사에 대해서는 협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를 내렸고, 현재도 관련 사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중”이라고 말했다.
다둥이 붐을 일으킨 송일국과 아들 삼둥이 그리고 이휘재와 아들 쌍둥이. KBS 인기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 방송화면 캡처.
과배란 주사도 마찬가지다. 이 시술은 난임을 겪는 여성의 임신 확률을 높여 주는 게 목적이다. ‘쌍둥이를 만드는 주사’가 아닌 것이다. 대통령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인 이원돈 서울마리아병원장은 “과배란 주사가 도입된 이후 난임을 겪는 여성들의 임신 확률이 높아졌다. 다만 임신 확률을 높이기 위해 배아 이식 수를 늘리는 과정에서 다태아 임신이 늘어난 것이다. 따라서 다태아 임신은 사실상 과배란 주사의 ‘부작용’이라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태아 출산은 단태아 출산과 비교하면 산모와 아이 모두에게 위험하기도 하다. 조산 가능성이 높고, 산모의 경우 임신성 고혈압이나 중독증 확률도 단태아 출산보다 높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과배란 주사 용량을 줄이거나 사용하지 않는 추세”라고 말했다. 결국 쌍둥이 출산을 위한 과배란 주사 시술은 의학적으로 ‘남용’이라는 것이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제식 새누리당 의원은 ‘다태아 출산 시 미숙아 출산 관련 자료’ 분석 결과, 지난해 기준 다태아의 조산률은 57.3%, 저체중 비율은 57%에 달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김 의원은 이날 “쌍둥이가 사회생활과 자녀양육을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인식이 생겨 다태아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의 올바른 출산 장려제도 정착을 촉구했다.
‘쌍둥이 엄마’들은 “쌍둥이를 환상만 가지고 임신·출산을 계획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고 지적한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이명순 씨(여·36)는 결혼 9년 차에 난임 시술을 통해 지난해 쌍둥이를 출산했다. 그는 “과배란 주사를 맞고 부작용에 시달렸다. 밤만 되면 배에 물이 차고 호흡이 어려웠다. 그토록 바라던 ‘엄마’가 될 수 있었지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단순히 쌍둥이를 갖고 싶다고 선택할 시술이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3년 전 쌍둥이를 출산한 직장인 김 아무개 씨(여·32)는 “임신 5개월부터 만삭과 다름없었다. 심지어 이러다 ‘터져 버릴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집 근처 산책 나가기도 힘들었다. 출산 이후에는 세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아이 옷과 기저귀, 분유, 모두 2배로 준비해야 하니 경제적인 부담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예비 부모들이 쌍둥이의 귀엽고 예쁜 면만 보지만, 실제 쌍둥이 부모들은 육아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한다. 행복과 기쁨을 두 배로 얻는 대신,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