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버크롬비 앤 피치’ 매장과 패션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와 레이디 가가. 알라이아는 최근 향수 사업에 뛰어들어 첫 번째 향수 ‘알라이아’를 출시했다. 흙냄새가 나는 이 향수를 가리켜 알라이아는 “내 고향인 튀니지를 추억하게 하는 향”이라고 말했다. 사진출처=포쿠스
‘냄새로 세상을 지배한다’는 독특한 소재로 화제가 됐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인 <향수>의 한 구절이다. 비록 허구지만 이 소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냄새가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하고 있다. 이처럼 냄새란 것은 비록 눈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또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우리 생활 곳곳에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는 냄새가 어떻게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해 보도하면서 좋은 냄새를 맡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기분이 편안해지며, 또 더 나아가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근래 주목받고 있는 ‘향기 마케팅’을 통해 매출을 올리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는 점을 소개하면서 ‘냄새의 힘’이 생각보다 얼마나 강력한지를 다루었다.
우리는 보통 숨을 쉴 때마다 자연스럽게 어떤 냄새를 맡는다. 이런 행동은 대개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며, 심지어 잠을 잘 때도 우리의 후각 기관은 끊임없이 냄새를 맡으면서 활동하고 있다.
이와 관련, 얼마 전 전문가들은 사람이 후각 기관으로 인지할 수 있는 냄새의 개수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 많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사람의 코로 맡을 수 있는 냄새 종류는 1만 개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왔었지만, 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무려 10억 개라는 것이었다. 이는 청각, 미각, 시각으로 인지하는 소리, 맛, 색깔보다 현저히 많은 개수다.
그렇다 해도 냄새라는 것은 아주 예민한 코를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쉽게 맡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체취가 그렇다. 사람들은 저마다 체취라는 것을 갖고 있지만 체취는 쉽게 맡을 수도, 또 풍길 수도 없다. 사람들이 향수를 사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독일의 시장조사기업인 ‘TNS 인프라테스트’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향수를 뿌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답한 사람들 가운데 62%는 ‘그냥 향수 냄새가 좋아서’라고 답했으며, 57%는 ‘세련된 느낌이 나서’ 56%는 ‘나를 가꾸기 위해서’ 35%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27%는 ‘기분 전환을 위해서’ 26%는 ‘자신감이 생겨서’ 그리고 11%는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현재 향수 산업은 전 세계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추세며, 지난해 여성 향수는 약 250개, 그리고 남성 향수는 100개 이상이 새롭게 출시됐다.
그럼 과연 어떤 향이 좋을까. 이에 룩셈부르크의 향수 디자이너이자 ‘스멜 마케팅’ 사장인 시릴 게르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라벤더와 오렌지를 배합한 향은 치과에서 사용하면 좋다. 환자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70%가량 낮추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레몬향과 오렌지향은 생산성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사용하면 좋으며, 자스민향은 운동선수의 능력을 눈에 띄게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베를린의 향수 전문가인 게자 쇤.
이런 ‘냄새의 힘’을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는 기업들도 많다. 이런 마케팅을 가리켜 ‘냄새 마케팅’ 혹은 ‘향기 마케팅’이라고 한다. ‘향기 마케팅’이란 특정 냄새를 통해 고객들이 매장 안에서 편안함을 느껴 오래 머물게 되고, 오래 머무는 시간이 구매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매출이 증가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은 ‘냄새로 고객을 유혹하기 위한 코를 둘러싼 전쟁이 가열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면서 ‘성공의 냄새’란 것은 실존하며, 이를 위해 차향, 나무향 등 은은한 향을 공중에 분사하고 있는 매장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제는 매장 조명이나 인테리어만큼 냄새도 성공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는 것이다.
또한 매장에 냄새를 분사할 경우에는 엷고 은은한 향이 좋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조언했다. 가령 흑설탕이나 사과처럼 달콤한 향은 ‘향기 마케팅’에 적합한 반면, 숯불에 그을린 스테이크처럼 강한 음식 냄새는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애버크롬비 앤 피치’는 매장(위) 내에 시그니처향인 자사의 남성 향수 ‘피어스(아래)’를 분사하고 있다.
미국의 의류업체인 ‘애버크롬비 앤 피치’는 업계 최초로 ‘향기 마케팅’을 도입해 성공한 대표적인 경우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향기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애버크롬비 앤 피치’는 천장에 향수 분사기를 설치해 자사의 남성 향수이자 시그니처향인 ‘피어스’를 매장 전체에 골고루 분사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 이런 ‘향기 마케팅’은 매출로 이어졌다. 파더본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향기 마케팅’을 실시한 후 손님들이 매장 안에 머무는 시간은 15.9% 증가했으며, 구매 욕구 역시 14.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너무 과하면 탈이 나게 마련. 뉴욕, 함부르크, 뮌헨 등 일부 매장 인근의 주민들이 온 동네가 향수 냄새로 진동한다면서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그후 향수의 농도를 낮추긴 했지만 여전히 향기는 이 회사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소매점, 자동차 전시장, 은행 등 광범위한 곳에서 향기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포드 모터의 ‘링컨’ 자동차 전시장(왼쪽)과 시나몬롤 전문 체인점 ‘시나본’.
이에 다시 오븐을 제자리로 옮긴 ‘시나본’사는 그 후 더욱 더 냄새의 중요성을 깨닫고 적극적인 ‘향기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가장 환기가 잘 안 되는 후드’를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가능한 빵 굽는 냄새가 매장 안에 오래 머물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마늘이나 양파처럼 향이 강한 식재료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냄새에 따라 매출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깨달은 캣 콜 회장은 “냄새는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이다. 냄새 자체가 바로 우리 회사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처럼 냄새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시나본’은 지점을 선택할 때도 까다롭다. 반드시 쇼핑몰이나 공항처럼 실내에만 지점을 개설하는데 이는 냄새가 일정 공간에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다. 쇼핑몰 안에서도 선호하는 자리는 따로 있다. 1층이 가장 좋으며, 계단 근처일 경우 더욱 금상첨화다. 이유는 빵 냄새가 계단을 따라 윗층으로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특유의 향을 매장 고유의 향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은 많다. 수제 화장품 제조업체인 ‘러쉬’는 향이 매장 안에 은은히 퍼지도록 일부러 비누와 화장품을 포장하지 않은 채 진열해 놓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플로리다의 ‘오션 뱅크’는 21개 모든 지점에서 맞춤 제조한 ‘오션블루’향을 사용하고 있다. 고객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자 앞으로 향기 나는 수표책 커버와 펜도 도입할 것이라고 은행 측은 말했다.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포드 모터’의 ‘링컨’은 고유의 향을 이용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마케팅 기법을 도입했다. 이를 위해 ‘에센스 오브 링컨’ 향수를 출시했으며, 현재 이 향은 링컨 전시장의 환기 시스템을 통해 모든 매장에서 분사되고 있다. 향은 녹차향을 기본으로 자스민향, 통카 콩향이 섞여 있으며, 고급스럽고 따뜻하며 편안한 느낌이 드는 것이 특징이다. 한 ‘링컨’ 관계자는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안락한 기분을 느끼면서 링컨이라는 브랜드에 친근함을 느끼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향기 마케팅’에 있어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애버크롬비 앤 피치’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코 냄새가 고객들을 압도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는 여러 냄새가 뒤섞여서 본래의 중요한 냄새가 사라지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바로 스타벅스의 경우가 그랬다. 지난 2008년, 스타벅스는 6개월 동안 잠시 아침 메뉴였던 샌드위치 판매를 중단했었다. 샌드위치를 만들 때 나는 치즈 냄새가 너무 강해 커피향을 덮어 버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워드 슐츠 회장의 지시로 ‘아로마 전문팀’이 꾸려졌고, 곧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6개월 후 다시 샌드위치를 팔기 시작한 스타벅스는 살코기 베이컨과 고품질의 햄과 치즈를 사용하는 한편, 가능한 저온에서 익히도록 하는 방법으로 샌드위치 냄새를 최대한 줄였다.
‘애버크롬비 앤 피치’ ‘하드락 호텔&카지노’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향기 마케팅’ 전문 업체인 ‘에어큐’의 부사장인 로저 베싱어는 “지금 ‘향기 마케팅’은 15년 전 매장 안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던 단계와 비슷한 수준이다. 요즘은 매장 안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하지만 15~20년 전만 하더라도 음악이 나오는 매장은 많지 않았다. 아무리 인테리어가 근사한 매장이라도 안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거나 아무런 향이 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향기 마케팅’은 본래 불쾌한 냄새를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가령 담배 연기가 자욱한 카지노나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병원 진료실 같은 곳에서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도입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처럼 소매점, 자동차 전시장, 은행 등 광범위한 곳에서 향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13년 <글로벌 저널 오브 커머스 앤 매니지먼트 퍼스펙티브>가 실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은은한 냄새는 소비자들의 감정, 평가 점수, 구매 의욕을 증진하는 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효과는 곧 ‘향기 마케팅’ 산업의 증대로 이어졌다. 국제비영리단체인 ‘센트월드’의 개발부사장인 제니퍼 더블리노에 따르면 현재 ‘향기 마케팅’ 산업은 연 15%의 비율로 상승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향기 마케팅’으로 거두고 있는 수익은 약 3억 달러(약 3500억 원)에 달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나이트클럽 ‘페로몬 파티’ 화제 체취로 이성을 ‘초이스’한다 심지어 냄새가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베를린의 향수 전문가인 게자 쇤은 “우리는 다른 사람의 유전체 냄새를 맡을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우리는 냄새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유전적으로 자신과 완벽하게 맞는 상대를 배우자로 선택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럼 과연 효과는 있을까. 이에 대해 쇤은 “향수를 처음 뿌리고 난 후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한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건네왔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문을 들은 영국의 슈퍼 모델 케이트 모스가 이미 한 박스를 주문했다고 덧붙였다. 이성을 유혹하는 냄새를 이용한 ‘미팅 파티’를 여는 나이트클럽들도 있다. 이른바 ‘페로몬 파티’를 연 한 나이트클럽은 참가자들에게 3일 동안 같은 티셔츠를 입고 잠을 잔 후 이 티셔츠를 비닐봉지에 넣어 가져올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비닐봉지 안의 티셔츠 냄새를 맡은 후 가장 편안하게 느껴지는 냄새를 고르도록 했다. 이는 ‘좋은 냄새=속궁합=이상형’이라는 기대감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물론 구취가 심하거나 땀냄새가 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좋은 냄새는 얼굴을 더 예쁘게 보이게 하며, 특히 꽃냄새를 풍기는 여성일수록 남성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비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