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시카고 컵스 전에서 더블플레이 수비 도중 골절상을 입은 강정호. 신인왕 등극도 포스트시즌 활약도 모두 물거품이 돼버렸다. AP/연합뉴스
“더블 플레이 상황을 조심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6일, NC 다이노스의 김경문 감독은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만약 정호가 미국에 간다면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부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감독은 단순 부상이 아니라 한국 야구와는 다른 플레이 스타일에서의 유격수가 입을 수 있는 부상이라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더블 플레이 상황에서 유격수가 공을 잡아 1루에 송구해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미국 선수들은 2루 슬라이딩이 매우 공격적이고 수비수에게 위협적”이라며 “미국 선수들은 우리 선수들처럼 플레이하지 않는다. 자칫하다 크게 다칠 수 있다. 충돌시 부상은 물론, 상대 슬라이딩을 피하다 1루에 송구를 제대로 하기 힘들 수도 있다. 이 부분을 잘 준비해야 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김 감독은 또한 이런 이유들로 인해 강정호가 3루수로 뛰는 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예상했다.
안타깝게도 김경문 감독의 예언이 적중했다. 지난 18일(한국시간), 피츠버그의 홈구장인 PNC파크에서 벌어진 시카고 컵스와의 3차전 경기에 유격수로 선발 출전한 강정호는 1회초 수비하는 과정에서 더블 플레이를 만들기 위해 2루 주자를 아웃시키고 1루로 송구하는 과정에서 2루로 뛰어오던 크리스 코글란의 거친 슬라이딩에 무릎을 다쳐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곧장 병원으로 실려간 강정호는 수술을 받았고, 피츠버그 구단도 공식 트위터를 통해 “강정호가 왼 무릎 내측측부인대 및 반월판 파열, 정강이뼈 골절로 인해 오늘밤 인근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복귀까지는 6~8개월 걸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로 인해 강정호는 뜻하지 않게 메이저리그 데뷔 첫 시즌을 마감하게 됐다. 강정호는 18일 경기를 마치고 곧장 LA 원정길에 오를 예정이었다. 오래전부터 강정호는 LA 원정만을 기다렸다. 친구 류현진과의 만남은 물론 조용하고 한적한 피츠버그를 벗어나 시끌벅적한 LA에서 코리아타운 등을 돌며 맛집 탐방에 나설 계획도 세워뒀다. 그러나 강정호의 바람은 부상과 수술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강정호에게 부상을 입힌 시카고 컵스의 코글란은 2009년에도 탬파베이전에서 위험한 슬라이딩을 하는 바람에 이와무라의 왼 무릎에 부상을 입힌 전력이 있다. 그 해 이와무라는 석 달가량 재활을 진행했고, 어렵게 복귀했지만 부상 전 44경기 3할1푼을 보이던 타율이 복귀 후 25경기 2할5푼으로 추락했다.
강정호는 부상 전까지 타율 2할8푼7리, 출루율 3할5푼5리에 홈런 15개를 쏘아 올리며 강렬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피츠버그의 4번타자와 5번타자를 오가며 클린업 타선의 힘을 더했다. 421타수 121안타 타율 2할8푼7리, 15홈런, 58타점, 60득점, 5도루가 2015시즌 강정호의 마지막 성적표가 되고 말았다.
강정호의 부상 소식을 들은 KBO리그도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그중 넥센 히어로즈의 이지풍 트레이닝 코치는 강정호의 부상 부위와 향후 복귀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상했다.
AP/연합뉴스
이 코치는 시즌 아웃이 된 상태라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년 스프링캠프의 합류 여부다. 재활하는 동안 몸을 잘 만들어서 스프링캠프에 합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워낙 성실하고 근성 있는 선수라 좌절하거나 절망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건창도 강정호랑 비슷한 부위에 부분 파열을 당했지만 예상을 깨고 2개월 만에 돌아왔다. 선수의 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강정호의 부상에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도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휴스턴과의 4차전 경기를 앞둔 상태에서 레인저스 클럽하우스에선 TV를 통해 강정호의 부상 장면이 연속으로 방송됐다고 한다. 추신수는 “코글란이 슬라이딩할 때 오른발이 너무 높았다. 솔직히 그 정도의 슬라이딩은 심하다고 봐야 한다”면서 “걱정되는 마음에 강정호에게 문자를 보냈다. 잘 치료받고 하루 빨리 복귀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라고 말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이동훈 정형외과 교수는 강정호의 부상 부위와 복귀하는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소견을 나타냈다.
“경기 영상을 보니 강정호 선수가 부상당하는 순간 무릎이 심한 외반 및 회전력을 받았다. 이런 경우 내측측부인대 완전 파열은 당연한 결과다. 더 심한 경우 반월상 연골 파열, 전방십자인대 손상, 외측 경골과 골절이 가능하다. 그러나 구단의 발표를 종합해 보면 내측측부인대, 반월상 연골 파열, 정강이 골절로 정리된다. 일반적으로 내측측부인대는 회복하는 6~8주가 걸린다. 반월상 연골 파열도 봉합수술 시 6~8주의 시간이 필요하다. 정강이 골절은 다친 동작을 봤을 때 무릎관절을 이루는 경골 골절일 가능성이 많다. 뼈가 붙는 데만 3~4개월이 걸린다. 이 기간은 다친 조직이 치유되는 최소한의 기간이다. 이후 재활기간에 따라 복귀 시기가 결정되는데 구단에서 발표한 6~8개월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CBS SPORTS의 마이크 액시아 기자는 ‘강정호의 부상과 알아야 할 5가지’라는 기사를 게재하면서 “피츠버그 내야진이 강정호의 부상을 충분히 대체할 것으로 보이지만 강정호가 지금까지 해온 성적에 비해 조디 머서, 조시 해리슨, 아라미스 라미레즈, 닐 워커의 OPS(출루율+장타율)가 0.800을 넘지 못하고 있어 강정호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란 내용을 소개했다. 정규리그 막판, 시카고 컵스와 와일드카드 경쟁을 벌이는 피츠버그로선 강정호의 부상이 두고두고 뼈아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박병호가 명심해야 할 것 ‘하드 슬라이딩’ 정당 ML은 한국과 다르다 올 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고 있는 넥센 히어로즈의 박병호. 강정호의 부상은 그에게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는 메이저리그의 현실을 깨닫게 해준 부분이었다. 메이저리그 진출 시 1루수를 ‘본업’으로, 3루수를 ‘부업’으로 내세울 예정인 박병호도 수비와 관련해선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3루 수비 훈련을 하는 박병호.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메이저리그 전문가 송재우 MBC SPORTS+ 해설위원은 “코글란의 슬라이딩에 대해 비난 여론이 높지만, 메이저리그에서 그런 슬라이딩은 일반적인 수준”이라면서 “미국 야구에는 ‘하드 슬라이딩(Hard Sliding)’이란 단어가 존재하는데 하드 슬라이딩 자체가 합법적인 수비 행태다. 그런 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용진 전 LG 2군 감독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나타냈다. 박 전 감독은 “수비수는 주자가 와일드한 슬라이딩으로 태클을 걸더라도 피해야 하고, 주자는 과감한 슬라이딩으로 병살 플레이를 방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서로 테크닉으로 부딪힌다”면서 “강정호의 부상은 심히 안타깝지만 코글란이 눈앞에 왔을 때 강정호가 점프를 하면서 1루로 공을 던졌어야 한다. 스프링캠프 때 이런 수비 훈련을 많이 했을 텐데 데뷔 첫 해이다보니 아직은 그런 수비가 나오지 못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선후배 문화’가 존재하는 KBO리그에서는 2루에서 과격한 플레이가 자주 나오지 않는다. 설령 코글란 같은 슬라이딩을 했다간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강정호로선 수비 방해를 피해 점프를 하며 공을 던지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송재우 위원은 “미국은 처음 야구를 가르칠 때 하드 슬라이딩을 배우고, 하드 슬라이딩에 대비한 수비 방법을 깨우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선 코글란에 대한 비난보다 강정호의 수비 자세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여론이 앞서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코글란이 발을 높이 들고 들어간 건 비난받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영] |
닮은꼴 부상 이학주 스토리 “유니폼 분실해 경기 못 뛰는 악몽도” 강정호의 부상 소식이 알려지면서 마이너리그에서 활약 중인 탬파베이 레이스 산하 더럼 불스의 이학주에 대한 부상 스토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더럼 불스에서 활약중인 이학주. AP/연합뉴스 고교 시절 촉망받는 유격수였던 이학주는 어느덧 미국 야구 7년차의 ‘베테랑 마이너리거’다. 2009년 충암고를 졸업하고 시카고 컵스와 계약금 115만 달러를 받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그는 루키 리그부터 단계를 밟아 올라가면서 성적으로 존재감을 나타냈고, 팀 내 유망주 1위에 꼽히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이학주에게 부상의 그림자가 드리운 건 2013년 4월 21일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트리플A팀과의 홈경기였다. 4회 수비 중 병살 플레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2루 주자 트레비스 이시카와의 깊은 태클에 넘어져 왼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한 것이다. 부상 전까지만 해도 이학주는 초반 15경기서 타율 4할2푼2리 19안타 7타점 13득점, OPS(출루율+장타율) 1.136을 기록 중이었다. 이학주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부상당했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넘어질 때만 해도 큰 부상을 당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충격에 조금 아픈 정도? 조금 지나면 괜찮겠지 싶었는데, 걸으려고 일어서니까 도저히 걸을 수가 없더라. 병원 가서 MRI를 찍어보니 십자인대 파열로 나타났다. 순간 멍해졌다. 부상 전까지만 해도 4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빅리그 승격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었는데 아쉬움이 더했다. 시즌을 통째로 날린 건 처음이라 재활하는 과정 동안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느꼈다.” 이학주는 수술 후 가위에 눌린 적이 많았다고 한다. 메이저리그로 콜업된 후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에 가려다가 유니폼이 분실되는 바람에 경기에 뛰지 못한 꿈도 꾸었고, 또 다시 부상을 당하는 장면에 깜짝 놀라서 잠이 깬 적도 있었다며 심적 고통을 호소했었다. “선수들이 방망이와 글러브 들고 훈련장으로 나가는 모습이 정말 부러웠다. 안에서 재활만 하다 보니까 밖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답답한 이 공간에서 벗어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야구장에만 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시간들이 새삼 야구에 대한 소중함, 감사함을 느끼게 해줬다.” 이학주는 여전히 빅리그에 올라가지 못하고 가슴만 태우고 있다. 지난 9월 메이저리그 로스터 확장 기간에 내심 기대를 가져 봤지만 그의 소속팀은 변함없이 트리플A팀 더럼 불스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팀 내 유망주로 불리지 않는다. 유망주로 보기엔 나이도 많고, 이학주보다 날고 기는 나이 어린 선수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