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이상돈 명예교수는 “여당, 야당 모두 엉망이어도 여당이 훨씬 유리하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은 자기 문제를 스스로 풀어내야 중도성향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은숙 기자
과연 문재인 대표체제가 끝없는 추락의 최저점을 찍고 반등할 것인지, 아니면 최악의 상황에서 내년 총선을 맞이할 것인지 중대 기로에 섰다.
<일요신문>은 2012년 총선 때 새누리당에서 정치쇄신을 주도했고,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체제에서 비상대책위원장 제안을 받았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9월 23일 오후 서울시 중구 정동극장에서 만나 ‘야권의 위기’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문재인 대표가 당을 장악한 것처럼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 구성원의 마음까지 산 게 아니다. 국민도 그렇게 보고 있다. 혁신과 멀어 보이고 새로운 것도 없다. 여전히 불안하다. 갈등이 소강상태에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정기국회, 국정감사라는 정치 일정으로 봐도 갈등 표출이 좋을 게 없지 않느냐. 문 대표가 통합을 위해 광폭행보를 한다는데 당 지지도와 본인 지지도가 변하지 않으면 상황은 다시 나빠질 것이다. 앞으로 2~3개월을 지켜봐야 한다.”
―혁신위원회 활동을 비판하던 비노 진영도 탈당 얘기를 하지 않고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당내에서 문 대표를 대체할 특별한 대안이 없다. 또한 바깥에서 신당을 한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이 시점에 문 대표와 경쟁하며 역동적인 에너지로 신당 구심점으로 활약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호남발 신당은 광주전남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 경쟁이 가능하지만 수도권의 여·야·제3당 구도는 새누리당 압승으로 결론이 난다. 비노 진영의 집단탈당 움직임은 엄포였지 실제 결행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었다.”
―김상곤 혁신위원회,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혁신위원 대다수가 정당 실무에 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았다. 제도로서 모든 문제를 풀겠다는 발상은 이상적일 뿐이었다. 최고위원회를 대체할 당 대표위원회나 국민공천단은 국민 관심도, 정치흥행도 되지 않는다. 실행될지도 알 수 없다. 2004년 탄핵역풍, 2012년 디도스 사태 때의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보여줬던 정공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처럼 카리스마가 없다고 해서 기계적 중립을 취하면서 공천에 나서겠다는 것은 너무 순진해 보인다.”
―상향식 공천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설명인가.
“상황과 조건이 있다.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당 대표 경선이나 광역단체장 경선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당내 경선이 흥행한 것도 선거의 규모 때문이었다. 그런데 국회의원, 기초단체장 등의 공천은 제한된 선거인단 참여로 여론 왜곡 가능성이 높다. 국회의원 선거까지 상향식으로 하는 것은 여전히 한계가 있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민의가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국민은 어떤 제도로 후보를 선출했는가보다, 어떤 사람을 후보로 내세웠는지 더 관심이 많다. 이게 상식이다.”
―현재로서는 문재인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총선 패배가 객관적으로 예상되면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 가령 올 연말 총선 선거구 획정이 마무리되고 정당별로 여야 가상대결을 했을 때 야당 참패라는 예측이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때가 안 됐을 뿐이다. 문 대표 체제로 총선 순항이 예상되면 변화가 제한적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수도권 의원들이 크게 동요할 것이다.”
―호남 민심은 어떨 것으로 전망하는가.
“문재인 체제로 정권교체가 안 된다는 게 본질이다. 호남 현직 국회의원에 대한 실망도 어느 때보다 크다. 문 대표가 한두 달 안에 민심을 돌릴 수 있는 가시적인 조치와 성과를 만들지 못하면 큰 문제에 부딪힐 것이다. 손학규 전 대표의 구원 등판이 고려될 수 있는 카드이지만 당권파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두고 봐야한다. 그만큼 변수가 많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표가 총선에서 선방하려면 몇 석 정도를 얻어야 하는가.
“120석이라고 본다. 이 숫자는 국회선진화법에서 여당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는 60% 최저 선에 해당한다. 현재로서는 어렵다. 국민이 인정할 만큼 당을 크게 바꿨다는 평가가 없으면 실현 불가능한 숫자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년 총선 성적을 냉정하게 전망해 달라.
“이대로 가면 100석 이하가 확실하다. 곳곳에서 야당이 80석도 못 얻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치부 기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도 야당은 심각성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의석수 100의 의미는 국회의원 3분의 1에 해당하는 개헌저지선이다. 만일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100석 아래로 주저앉으면 여당은 대통령과 총리를 러닝메이트로 하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시도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자민당 같은 장기집권 정당이 한국 정치를 독점할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이 불붙어 야권이 반사이익을 본다는 의견도 있다.
“설사 김무성 대표 체제가 무너져도 그럴 일은 없다. 20대, 30대의 투표성향을 잘 봐야 한다. 요즘 20대, 30대는 영화 <암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연평해전>도 함께 본다. 젊은 야권 지지자는 야당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 새누리당의 헛발질에 새정치민주연합이 볼 수 있는 이익이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반면 50대 이상 장년, 노년층은 새누리당 지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표장을 찾는다. 여당, 야당 모두 엉망이어도 여당이 훨씬 유리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자기 문제를 스스로 풀어내야 중도성향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모을 수 있다.”
―그래서 문재인 대표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통합에 나서고 인재영입을 하려는 것 아닌가.
“통합행보는 옳다고 보지만 인재영입은 지금 얘기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 분란도 제대로 수습되지 않았고, 총선까지 아직 7개월이나 남았는데 새정치민주연합에 누가 들어오겠는가. 경험에 비추어보면 대상과 시점을 놓고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 인재영입이다.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지만, 반대로 당을 엄청난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
―영입대상으로 이상돈 교수 이름도 거론되더라.
“(웃음) 도대체 내 이름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연락을 받은 적도 없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누군가 해본 말일 것이다. 김성식 전 의원이나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비슷하지 않겠느냐. 문 대표 쪽에서 비노 성향의 인물이 통합적 측면에서 좋은 카드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거론 시점에 문제가 있다.”
―이런 와중에 안철수 의원은 김상곤 혁신위를 비판하며 새로운 혁신안을 내놓겠다고 한다.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구조적 문제는 혁신안만으로 풀 수 없다. 정치로 풀지 않고 제도나 규칙으로 풀려면 더욱 꼬이는 것이 정치다. 지금 문 대표도 정치로 해결할 일을 제도로 풀려는 오류에 빠져있다. 안 의원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보자. 문재인 대표가 리더십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혁신위를 만들었다. 그리고 당을 바꾸라고 하청을 줬다. 혁신위는 다시 국민공천단이라는 제도에 국회의원 후보 선출을 맡긴다. 하청에 재하청이다. 이게 무슨 정치냐. 정치 지도자가 자신감이 없으니 모든 문제를 제도에 맡기려는 게 아닌지 진지하게 되물어야 한다.”
―문재인 대표와 맞섬으로써 안철수 의원은 존재감을 확인했다.
“대선 후보감이었던 사람에게 어떤 존재감이 더 필요하겠는가. 오히려 최근 행보를 보면 안철수 현상과 개인 안철수 의원의 사이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주위 사람과 충분한 교감 없이 혼자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안 의원은 제3지대에 대한 국민 열망이었던 안철수 현상을 이미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종합해보면 새정치민주연합은 희망이 없어 보인다.
“이대로 가면 가망 없다. 비상시국이라는 절박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의미를 좁혀놓고 절차만 따지면 껍데기 민주주의만 남는다. 형식에만 매몰되면 안 된다. 국민은 항상 내용을 보고 판단해왔다. 콘텐츠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새누리당이 지난 10여 년 동안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국면에서 어떤 돌파구를 마련했는지 꼼꼼하게 따져봐라. 집권을 준비하지 않고, 집권을 그리워하는 세력은 결코 정권을 잡을 수 없다.”
전계완 정치평론가 jkw68@hanmail.net
이상돈 왜 정권교체를 바라나 “보수정권 10년이 실패의 과정이었다” 합리적 보수 인사로 꼽히는 이상돈 교수는 2017년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보수정권 10년이 실패의 과정이었다고 평가했다. 노무현 정권 실패로 보수정권이 들어섰는데 ‘더 잘 하지 못했다’는 게 이 교수 판단이다. “보수정권이 들어선 뒤 국가 안보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보수의 가치인 법치주의가 훼손되고 민주주의가 실종되는 과정을 보았다. 언론자유도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양극화 심화, 경기침체, 국가의 재정건전성 악화 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이 교수는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 행태로 정권을 잡아서도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프레임과 2002년 대선 승리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야권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소위 말하는 진보집권 플랜으로는 정권을 교체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생산할 수도 없다. 도식적인 진보정책은 더 이상 효용성이 없다. 혁신적인 제3의 길을 찾아야한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들은 이미 그 길을 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