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송 회장이 쓰러진 이후 어머니와 아들이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삼화제분 건물.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삼화제분은 지분으로만 따지면 박만송 회장의 개인회사나 다름없었다. 몇 차례 대표이사가 바뀌는 동안에도 박만송 회장은 늘 90.3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들 박원석 대표이사의 지분은 7.96%, 기타 1.65% 지분을 합해도 박만송 회장에 견줄 수는 없었다.
그런데 2012년 9월 8일 박만송 회장이 외상성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지분에 변동이 생겼다. 박 회장은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음에도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병원 진단서에 따르면 현재 박 회장의 인지 능력은 1세 이하 수준이다. 이후 박원석 대표는 같은 달 23일 대표이사에 올랐으며 12월 24일 아버지 박 회장의 지분 90.38%를 모두 넘겨받아 최대주주가 됐다. 당시 작성했다는 주식증여계약서를 보면 두 사람의 인감도장이 나란히 찍혀 있다.
하지만 박 회장의 부인 정상례 씨는 아들의 행동에 반기를 들었다. 2013년 10월 정 씨는 아들 박 대표를 상대로 “건강이 좋지 않은 박만송 회장이 주주권 양도를 위임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그의 소유 주식 90.38%를 가족 몰래 자신 명의(박원석 대표)로 돌려놓았다”며 주주권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정 씨의 주장에 따르면 증여계약서를 작성할 시기엔 이미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박 회장의 건강 상태가 악화된 상태였다. 언어치료사가 남긴 기록을 살펴보면 박 회장은 이름을 묻는 질문에 부인의 이름을 말했으며 단어를 따라 말하는 것조차 힘겨워 했다고 한다.
또 계약서에 찍힌 박 회장의 인감도장도 논란이 됐다. 정 씨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인감도장을 아들에게 내어준 적이 없다면서 위조 의혹을 제기했다. 정 씨 측 관계자는 “소송 전 여러 의문을 풀어보려 대화를 시도했지만 ‘소송을 해볼 테면 해보라’는 아들의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돈에 욕심이 나서 이러는 게 아니다. 만약 소송 결과에 따라 얻는 이득이 있으면 사회에 환원할 생각도 있다. 엄마로서 아들이 더 이상의 불법을 저지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며 정 씨 심정을 대변했다.
이렇게 시작된 모자의 법정 다툼은 시간이 흐를수록 꼬여만 갔다. 소송 과정에서 박원석 대표가 자신의 재산은 물론 아버지 박 회장과 가족 소유의 건물·땅을 담보로 거액의 대출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하나은행을 비롯해 한국투자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까지 동원해 대출을 받은 금액은 최소 수백억 원에 달했다.
이에 대해 박원석 대표 측은 “아버지가 쓰러진 후 ‘소송을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의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대출 부분도 아버지 박만송 회장의 허락을 받고 시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정 씨 측은 “아들의 독단적인 행동”이라 맞섰다. 정 씨는 해당 금융회사를 상대로 근저당 말소 신청을 추가로 제기했다. 대출약정서마다 한자(漢字)로 된 박 회장의 서명과 인감이 찍혀 있는데 이 역시 ‘위조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박원석 대표는 “아버지가 직접 서명하고 도장을 찍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비슷한 도장이 두 개여서 감정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 인감 위조는 말이 안 된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여기서 언급된 감정 결과는 법원이 전문 감정기관에 필적 조회 및 인영 확인을 요청한 결과 자서와 인감도장이 위조됐다는 결론을 받은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하나은행 직원도 재판에 출석해 “박만송 회장이 대출 서류에 도장을 찍는 모습을 직접 봤다”고 증언했다.
양쪽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월 재판부는 정 씨의 손을 먼저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1민사부는 “계약서 작성 당시 원고(박만송 회장)는 의사 무능력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 박원석과 삼화제분 앞으로 명의 개서된 이 사건 주식은 유효하게 성립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법원 판결에도 모자의 다툼은 멈추지 않았다. 박원석 대표 측은 “서류를 조작했다는 것에 대한 해명이 부족해 나온 결과일 뿐이다. 이에 대한 증거를 보충해 다시 재판에 임할 것”이라며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한편 박원석 대표는 이번 판결로 인해 검찰 수사까지 받는 처지에 놓였다. 앞서 검찰은 주식 양도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했지만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는 간병인의 진술 등을 고려해 한 차례 무혐의 처분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간병인과 상반되는 주장을 펼친 주치의의 말에 신뢰를 표한 것 등 결국 고등검찰청으로부터 “사건을 다시 살펴보라”는 지시를 이끌어냈다. 검찰은 재수사에 들어갔으며 주식 양도 과정 및 박원석 대표가 회사에 취임한 뒤 공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이 배당돼서 조사에 착수, 지금 진행 중이다. 관련자들을 불러 사실 관계를 확인해봤다. 아직 결론을 내리진 못했는데 증거 등에 대한 입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어떤 식으로든 조만간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원석 대표 측 관계자는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사람들이 많다. 한 쪽에 치우치는 내용들만 자꾸 알려져 안타깝다. 재판을 통해 진실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