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를 놓고 5위 쟁탈전이 뜨겁다. 이렇게 눈앞의 1승이 간절한 시기가 오면, 구단들이 거액의 ‘당근’을 준비했다는 소문이 고개를 든다. KIA와 SK의 경기 장면.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프로는 돈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다. 비단 프로야구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그렇다. 따라서 프로 선수들에게 ‘돈밖에 모른다’고 비난하는 건, 어쩌면 불합리하다. 그 ‘돈’이 바로 선수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승리수당 역시 그렇다. 회사에서 성과에 따라 더 많은 보너스를 주겠다는데 마다할 직장인은 없다. 때문에 많은 구단이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숨겨뒀던 돈 보따리를 푼다. 물론 메리트의 불문율은 ‘줘도 안 준 척, 받아도 안 받은 척’이다. 빈볼을 던졌다고 인정하는 투수나 지시했다고 고백하는 지도자가 없듯, 메리트도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은 다르다. 현재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메리트 제도를 실시하지 않는 구단은 두세 팀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다. 형식도 다양하다. 경기별 메리트도 있고, 개인별 메리트도 있다. 3연전 스윕(싹쓸이)에 걸 수도 있고, 위닝 시리즈에 걸 수도 있다. 상위권 구단들은 연승 메리트도 많이 실시하는데, 3연승 때는 2000만 원, 4연승 때는 3000만 원처럼 승수가 추가될 때마다 금액이 올라가는 식이다. 또 라이벌이나 천적 팀과 맞붙을 때는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의 금액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몇 년 전 A 구단은 시즌 승률 5할을 넘는 순간부터 1승당 1000만 원씩 승리수당을 선수단에 나눠줬고, 막판 순위경쟁이 치열해지자 1승당 금액을 2000만 원으로 올렸다. 이후 순위경쟁 팀과의 맞대결에서는 급기야 ‘따따블(4000만 원)’을 외쳤다가 “너무 지나치다”는 타 구단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개인 성적에 따른 메리트도 쏠쏠하다. 승리투수가 되거나 중요한 홈런을 치면, 남들보다 더 많은 수당을 챙길 수 있다. 메리트 배분 때 선수 별로 등급을 나누는 구단도 있어서다. 대부분 코칭스태프의 재량으로 금액이 나눠지고, 통장 입금보다는 현금으로 직접 지급하는 방식이 선수들에게 더 환영 받는다. 이 때문에 한때 B 구단은 “그 지역 5만 원권이 바닥났다”는 풍문의 주인공이 됐고, C 구단은 “선수들이 B 구단의 어마어마한 메리트 얘기를 듣고 금액을 올려달라고 했다가 구단에게 거부당했다. 이후 공교롭게도 팀이 연패에 빠졌다”는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 원년부터 시작됐다
사실 승리수당 제도는 프로야구 원년 때부터 시작됐다. 1982년 OB는 선수 구성상 우승을 할 만한 전력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른바 ‘현찰 박치기’ 형식의 메리트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동기 부여 하나는 확실히 됐다. 당시 OB 프런트에서 일했던 야구 관계자는 “경기 후 코칭스태프가 수훈선수를 정해 매니저에게 알려 주면, 매니저가 007가방에서 현금을 꺼내 선수들에게 나눠줬다. 승리투수와 같은 기록과 별개로 그날 경기에서 공을 세운 선수들에게 주는 돈이었다”며 “더그아웃에서 유독 열심히 동료를 응원한 선수나 경기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불펜에서 많은 공을 던지며 대기한 선수에게도 메리트의 혜택을 줬다”고 했다. 인간적인 요소를 도입해 개인 성적뿐만 아니라 팀워크마저 살리는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그 당시만 해도 100만 원이 메리트의 한계로 여겨졌다. 그래도 중요한 경기에서는 200만 원, 혹은 300만 원까지 올라갔다. 대기업 과장 월급이 20만 원 안팎이었던 시절이니, 당시로서는 꽤 많은 액수. 투수가 완봉승을 하면 그 가운데 50만 원을 가져갔고, 결승타나 홈런, 멀티히트를 친 선수는 수십만 원을 받았다. 당시 뛰었던 한 은퇴 선수는 “그 돈으로 만날 술을 사먹거나 후배들에게 용돈도 주고 했는데, 그때 그 돈을 다 모았으면 강남에 집도 샀을 것”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OB의 동기부여책이 성공을 거두자 다른 구단들도 그 뒤를 따랐다. 1983년 한국시리즈 역시 ‘돈’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 후반기 우승팀인 MBC 선수들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 거액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는 약속에 기대를 부풀렸다가 결국 공수표로 밝혀지자 의지가 크게 꺾였다는 것이다. 반면 구단 재정이 넉넉지 않았던 해태는 메리트로도 돈을 많이 풀지 않았던 팀. 따라서 한국시리즈 우승 보너스가 그 어느 팀보다 간절했다.
또 1990년대 중반에는 한동안 하위권에 머물렀던 D 구단이 재도약을 위해 메리트를 활용했다. 시즌의 사활이 걸려 있던 경기 하나에 구단주가 당시에는 더 엄청난 금액이었던 1억 5000만 원을 ‘투척’했다. 팀은 그날 승리했고, 승리투수가 된 에이스는 1승으로 무려 1000만 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 D 구단 관계자는 “1000만 원이면 당시 외제차 한 대는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말했다.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5위 경쟁을 펼치고 있는 롯데와 한화.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PS 진출 경쟁 앞두고 ‘수당’ 세져
요즘도 다르지 않다. E 선수는 “요즘 5강 싸움을 하고 있는 팀 대부분이 아마 메리트를 걸고 있을 것이다. 들리는 얘기도 많다”며 “우리 팀은 잘 하고 있을 때는 연승 메리트, 순위 싸움일 때는 경기마다 메리트를 거는 방식이다. 특히 라이벌 팀이나 순위 경쟁을 하는 팀과 경기할 때면 금액이 조금 높아진다”고 털어 놓았다. F 야구인도 “매년 추석 즈음에 팀별 메리트가 강화돼 상황에 따라 경기당 1억 원이 넘는 포상금이 걸리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이미 여러 가지 소문이 무성하다. G 팀은 최근 다 잡았던 승리를 눈앞에서 날리면서 손안에 거의 들어왔던 1억 5000만 원도 함께 놓쳤다고 하고, H 팀은 ‘천적’인 구단과 원정 3연전을 시작할 때 구단주가 스윕을 하면 3억 원을 풀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메리트 시스템이 체계적인 것으로 유명한 I 팀은 늘 다른 팀의 부러움을 사는데, 정작 I 팀 선수는 “우리는 승률 5할이 넘어가면 늘 정해진 금액으로 하기 때문에 시즌 막바지에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일은 없다. 아마 지금은 우리보다 훨씬 많이 받고 있는 팀들이 많을 것”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반면 언젠가부터 메리트 ‘청정지역’이 된 J 구단의 한 선수는 “우리 팀은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메리트 얘기가 없다. 다른 팀 얘기를 들어도 그림의 떡일 뿐”이라며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도 해야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데 늘 삼성이 우승하니 그것도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했을 정도다. 또 K 구단은 선수들의 불만을 견디다 못해 모기업에 “메리트 금액을 올려줘야 한다”며 추가 예산을 요청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그렇다면 메리트는 효과가 있을까. 결론적으로 확실히 있다. 안 그래도 적자에 시달리는 구단들이 금전적인 부담을 떠 안아가면서까지 돈 보따리를 푸는 이유다. L 선수는 “연봉이 많은 선수들이야 늘 기본적으로 자기 성적을 낸다. 이미 금전적으로 메리트가 간절한 상태인 선수들이 아니고 스스로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기 때문에 메리트 지급 여부와 관계없이 꾸준히 자기 몫을 한다”며 “그러나 연봉이 적은 선수들은 적지 않은 메리트가 걸린 경기에서 평소와 다른 경기력을 보일 때가 많다”고 귀띔했다.
평소에는 메리트가 없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결국은 성적이 자기 몸값이기 때문에 선수라면 누구나 경기 때 잘 하고 싶어 한다. L 선수는 “메리트는 말 그대로 그런 선수들에게 새로운 긴장감과 동기를 부여한다. 잘만 하면 자신의 월급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손에 쥘 수 있는 찬스인데 더 잘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게 당연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 한국에선 ‘필요악’이다?
이 때문에 메리트 제도를 없애자는 움직임도 종종 있었다. 2008년 초 단장회의에서도 그랬다. 자립형 야구기업 히어로즈가 프로야구에 입성하면서 그동안 돈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각 구단 단장들이 메리트를 없애자는데 합의했다. 처음에는 ‘그룹 차원에서 나오는 격려금은 예외로 하자’고 했다가, 얼마 후 ‘격려금 자체도 메리트로 간주되니 그것도 없애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이 합의는 곧 깨졌다. 안 하던 것을 하게 된다면 몰라도, 하던 것을 안 하게 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먼저 두 구단이 메리트 제도를 부활시켰다는 게 알려졌고, ‘위반시 벌금 3000만 원을 야구발전기금으로 내놓자’는 페널티도 이행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모든 합의가 없던 일이 됐다. 2년 뒤에는 오히려 “메리트는 각 구단 자율에 맡긴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 단장은 “어차피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자체가 잘못이었다”며 “메리트 제도는 각 구단이 알아서 판단할 사안이다. 한국적 현실에서는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금액이 얼마가 됐건 그건 구단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추석 시리즈’의 추억 1999년 한화 10연승 찍고 내친김에 ‘우승’까지 프로야구 선수에게 추석은 없다.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차례를 지내고 송편을 나눠먹는 시간에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치열한 승부를 겨뤄야 한다. 심지어 평소보다 열기가 더 뜨겁다. 포스트시즌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막바지 개인 타이틀 경쟁도 치열하다. 올 시즌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스릴 넘치는 추석 연휴가 예고되고 있다. ‘추석 시리즈’가 주목되는 이유다. 한화는 1999년 정규리그 막판에 파죽의 10연승을 달리며 극적으로 매직리그 2위를 차지했다. 이 여세를 몰아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연합뉴스 이미 과거에 추석의 기쁨을 누린 팀들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팀은 바로 OB다. 1986년 OB는 서울 라이벌 MBC와 치열하게 후기 우승을 다투고 있었다. 추석 하루 전인 9월 17일 롯데와 만났는데, 이날 패하면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될 위기였다. 하필이면 롯데 선발은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사상 첫 3년 연속 20승에 도전하던 에이스 최동원(작고). 최동원은 8회까지 단 1점만 내주면서 대기록의 문턱까지 다가서는 듯했다. 그러나 9회말 OB 김형석이 극적인 3-3 동점 홈런을 때려냈고, 결국 승자는 OB였다. OB는 후기 1위로 가을잔치에 나섰다. 1995년에도 그랬다. OB와 해태가 추석 연휴였던 9월 8∼10일 광주구장에서 더블헤더를 포함한 4연전을 치렀다. OB에게는 정규시즌 1위, 해태에게는 포스트시즌 티켓이 걸린 빅 매치였다. OB는 놀랍게도 이 4경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이겼다. 여세를 몰아 선두에 올라있던 ‘잠실 라이벌’ LG를 추격해 결국 0.5경기차로 극적인 페넌트레이스 역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내친 김에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해냈다. 진정한 기적은 1999년의 한화가 만들어 냈다. 양대 리그 체제였던 당시, 매직리그 2위 한화는 12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드림리그 3위 현대에 4.5경기차 뒤져 있었다. 이대로 시즌이 끝난다면 양 팀이 3전2선승제 준플레이오프를 열어 포스트시즌 진출자를 가려야만 했다. 그런데 한화는 추석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맞수였던 현대와의 3연전을 싹쓸이했다. 동시에 파죽의 10연승을 내달렸다. 더 이상 준플레이오프는 치를 필요가 없었다. 추석의 기운을 받은 한화는 그해 결국 창단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