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지난 9월 25일 대검찰청 형사부(민유태 검사장)는 ‘서민 생계 침해 불법 고리대금업, 청부폭력 집중 단속’을 위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가졌다. 검찰은 이 자리에서 조직폭력배들이 사채업자와 결합해 서민을 상대로 저지르는 불법 사금융 관련 범죄에 대한 집중 단속을 펼치기로 결정했다. 고 안재환의 자살이 결국 사채에 대한 집중 단속으로 이어진 셈이다. 고인의 자살이 사채 때문이라는 사실에 대해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들은 이를 강하게 부인해왔었다. 이를 해명하는 기자회견까지 준비하며 이번 사안이 집중 단속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려 했지만 결국 검찰은 단속의 칼날을 곧게 세웠다.
안재환 자살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채업자들과 접촉했는데 이 과정에서 예상외로 사채를 쓰는 연예인이 많다는 사실을 접할 수 있었다. 카메라 앞에선 늘 화려해 보이는 연예인들이 사회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로 알려진 사채와 지근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부분은 상당히 충격적인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사업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때 사채를 응급 수단으로 활용하곤 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배우 송재호와 가수 김태우다. 송재호의 경우 영화 제작에 실패하면서 빚더미에 올라 사채를 끌어 썼는데 이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사채업자들의 계속된 빚 독촉에 세 차례나 자살을 결심했었다”며 “50년 빚을 갚으며 살아왔다”고 얘기해 충격을 안겨줬다. 지금은 성공한 사업가인 가수 김태우 역시 아이웨딩 설립 초반 사업이 어려워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사채를 썼다가 고생한 바 있다.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 김영선 부위원장은 “연예인은 회사 소속이 아니라 금융권에서 신용도가 상당히 낮아 급한 마음에 사채를 쓰는 경우가 많다”면서 “게다가 어렵게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도 연예인의 유명세로 인해 그 사실이 소문나기 쉬운데 그러면 사업이 더 어려워질 수 있어 남 몰래 사채를 빌리게 된다”고 얘기한다.
당장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 사채를 빌려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주연급 배우들이야 엄청난 회당 출연료를 선불로 받지만 조단역급 배우들은 적은 출연료를, 그것도 몇 달씩 밀려서 받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다보니 당장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 사채를 빌려 쓰기도 한다는 것. 문제는 몇 달씩 밀려 받는 출연료마저 지급이 또 미뤄지는 경우다.
김 부위원장은 “사채를 쓰더라도 짧게 쓰고 약속된 기한 내에 갚으면 큰 문제는 안 되는데 출연료 지급이 미뤄져 연체가 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며 “그래서 출연료를 차압당하는 분들도 많다”고 얘기한다.
더욱 심각한 사안은 상습 도박으로 인한 사채 빚이다. 도박 자체가 끊기 힘든 중독성을 갖고 있는데다 도박현장에서 사채 거래가 이뤄지기도해 자칫 잘못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 늘어난다. 고 안재환의 경우에도 초반에는 상습 도박설이 나돌았지만 그의 누나 안미선 씨는 “도박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민화투도 못 칠 정도였다”며 이를 부인한 바 있다.
도박으로 사채를 썼다가 고생한 연예인으로는 코미디언 배영만이 대표적이다. 17년 전 도박에 손을 대며 1000만 원을 사채로 빌린 후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수천만 원을 어렵게 갚아야 했다.
불법 도박이 이뤄지는 하우스에는 늘 ‘꽁지돈’이라 불리는 현장에서 사채를 빌려주는 이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연예인은 VIP 고객에 속한다. 비교적 큰돈을 빌리는 데다 상환 약속도 잘 지키기 때문. 일반인들은 도박장에서도 담보가 확실해야 돈을 빌릴 수 있는 데 반해 연예인은 말 그대로 얼굴이 보증이다. 이미지가 중요한 연예인의 경우 사채를 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해 어떻게 해서든 빚을 갚기 때문.
몇 년 전에는 연예인 A가 도박 빚으로 허덕이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아 연예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사채업자들이 그의 소속사를 찾아가 사무실 집기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된 것. A는 카지노 바에서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해 전문적인 하우스까지 드나들다 엄청난 사채 빚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고생이 많았지만 계속해서 밤무대에 서며 어느 정도 사채를 해결했다는 후문. 이 대목에서 눈길을 끄는 사안은 밤무대 일정을 함께 소화한 ‘매니저’란 사람의 정체다. 주위에선 A의 새로운 매니저로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채업자들이 붙여준 사람이었다고. A가 출연료를 받으면 그 ‘매니저’가 현장에서 가로채갔다는 것이다.
서울 소재의 한 나이트클럽 연예부장은 “사채업자들이 연예인의 사채 변제를 강요하려고 전문적인 브로커를 대동시켜 유흥업소에 보내는 일이 종종 있다”면서 “그런 까닭에 갑자기 밤무대 출연이 잦아지면 사채 쓴 게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한편 안재환 사망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채업자 K 씨는 “일부 여자 연예인은 사채 빚을 갚지 못해 스폰서 관계를 강요당하기도 한다”면서 “사채업자들이 돈 많은 남성들과 사채를 쓴 여자 연예인을 소개해 준 뒤 돈을 받아가곤 한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려줬다.
이런 일이 있다보니 딱히 사채 빚이 없더라도 돈이 필요해 친분 있는 사채업자에게 스폰서 관계를 맺을 남자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는 여자 연예인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연예계에서도 비슷한 소문이 나돈 바 있다. 한때 연예인들의 대부업체 광고가 문제가 됐을 당시 B 양이 사채업자들과 친분을 쌓아 스폰서를 소개받으려 의도적으로 대부업 CF 모델을 자청했다는 게 소문의 요지였다. 여론의 역풍을 받아 그의 CF 출연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친분을 쌓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요즘에는 아예 돈이 급한 동료 연예인들에게 사채업자를 소개해준 뒤 소개비를 챙기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사채업자 K 씨는 “사채업자와 조폭, 그리고 연예인은 서로 활동 영역이 다르지만 묘한 지점에서 공존하고 있다”면서 “사채업자와 조폭이 친분을 쌓고 또 연예인도 친해져 함께 술자리를 갖곤 하는데 그 과정에서 스폰서를 요구하는 여자 연예인이 있는가 하면 돈이 필요한 동료 연예인을 소개해주고 소개비를 받거나 아예 돈을 투자하는 연예인도 있다”고 얘기한다.
실제 지난 2006년 3월에는 경찰이 조직폭력배 ‘신촌이대식구파’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일부 연예인이 사채업에 돈을 투자하고 동료 연예인에게 사채업자를 소개해준 정황이 파악돼 수사를 받기도 했다. 당시 수사를 통해선 혐의점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사채업자 K 씨의 설명이다.
사채는 마약처럼 한번 발을 들여 놓은 이상 빠져나오기가 어렵다는 게 사채업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