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이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오자 여권 내부는 권력지형을 어떻게 더 자기 계파에 유리하게 그을 수 있는가를 두고 ‘공천 룰’ 싸움을 본격화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오픈프라이머리’, 일명 완전국민경선제를 두고 서지만 속을 좀 더 들여다보면 다르다. 과거처럼 ‘전략공천’, 당헌당규의 표현대로라면 ‘우선추천지역’을 유지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박근혜 대통령을 위시한 친박계와 김무성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가 ‘파이(pie)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친박계는 전략공천을 많이 해 자기 사람들을 많이 심겠다는 쪽이고 비박계는 전략공천이라는 예외지역 없이 똑같이 가자는 쪽이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대구·경북(TK) 민심의 향배가 키를 쥘 것이란 분석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대구·경북에서는 더는 새누리당 텃밭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민심도 부풀어 오르고 있다. 박 대통령이 9월 7일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인사하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TK 민심을 살펴보기 전에 왜 이 ‘공천 룰’이 전략공천의 핵심 문제인지부터 풀어보자. 새누리당은 친박계가 주류이지만 그 수가 적다. 최대치로 잡아 40여 명 정도로 분류된다. 이 속에는 원조친박 등 친박 핵심과 주변부 친박, 범친박 등이 포함돼 있다.
비박계는 비주류지만 다수파다. 19대 국회에서 새로 만들어진 김무성계와 유승민계, 비박계, 소신파를 중심으로 한 중립계 등을 뭉뚱그려 비박계로 분류한다. 비박계 내부의 공통점은 친박계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점, 그리고 필요하다면 친박계의 반대편에 선다는 점이다. 비박계가 다수파인 것은 19대 국회 이후 실시된 새누리당 내 원내대표 경선, 전당대회, 국회의장 경선, 상임위원장 경선에서 모조리 드러났다.
김 대표는 여야 동시 오픈프라이머리, 즉 여야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체육관 등 큰 공간에 당원과 일반유권자를 모아 총선에 나설 자당 후보를 투표로 뽑자고 주장해 왔다. 미국식 완전오픈프라이머리다. 명분은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자는 것이며 18·19대 총선에서 자신과 같은 꼴을 당하는 이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 녹아 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전략공천 20%를 추진하고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선거인단을 구성해 여론조사로 자당 후보를 뽑기로 하면서 이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은 물 건너갔다.
그래서 김 대표는 체육관 선거는 불가능해졌더라도 일반 유권자에게 공천권을 주자는 취지를 살려 ‘안심번호’를 활용한 100% 여론조사로 자당 후보를 뽑는 플랜B를 제시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친박계가 들불같이 반대하고 나섰다.
아무래도 여론조사라면 인지도 위주의 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 현역 국회의원이 유리할 것이란 것도, 과거에 국회의원 경력이 있는 지역 인사나 명망가가 유리할 것이란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당내 소수파인 친박으로선 현재 여당의 계파 지형이 그대로 20대 국회에서 재현된다면 차기를 도모하기 어렵게 된다. 19대 총선에서 낙천, 낙마한 인사들도 대부분 친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인 탓에 그들의 국회 재입성도 친박계로선 눈엣가시다.
2016년 4월 총선 이후 2017년 12월에는 19대 대선이 있다. 집권여당을 장악해야만 ‘포스트 박근혜’를 친박계가 옹립할 수 있고, 그래야만 박 대통령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런데 여론조사 경선이라니!’ 친박계로선 여우를 피하고 늑대를 만난 격이 됐다.
TK 정치권과 지역민심은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속에서 친박과 비박의 전쟁을 바라보고 있다. 이 ‘전략공천’의 핵심부가 바로 TK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에서 내리 4선을 하면서 대구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 됐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 고향도 경북 구미다. TK에서 출마하려는 새누리당 후보는 모두 구미에 들러 절을 하고 갈 정도로 TK는 박 대통령 자산이자 여당의 텃밭이다.
TK는 지난 18대 대선에서 80·80(80% 투표율과 80% 득표율)을 이룬 유일한 곳이다.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라는 TK의 ‘오로지 박근혜’가 나온 배경이다. 그래서 역대 선거마다 새누리당은 TK 민심을 주머니 공깃돌 만지듯 했고, 낙하산 인사를 숱하게 꽂으면서도 판을 싹쓸이했다. 그래서 TK 의원들은 지역민보다는 중앙 정치권에 잘 보이려 애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최근 TK에서는 ‘우리를 졸(卒)로 아느냐’라며 더는 새누리당 깃발만 보고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란 민심도 부풀어 오르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3수에 도전하는 김부겸 전 새정치연합 의원이 대구의 정치1번지 수성갑 지역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듣보잡(?)’ 권영진 후보(안동 출신)가 대구시장에 당선된 것으로 확인까지 됐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TK 한 의원은 “지난 총선 때, 그리고 직전 대선에서 보았던 대구 민심이 더는 아님을 확인하고 있다”면서 “‘유승민 사태’를 거치면서 박 대통령을 다시 봤다는 분들도 계시고, 또 어떻게 박 대통령을 배신할 수 있냐고 말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더는 누구에게도 그리 맹목적이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박 대통령이 대구경북과학기술원과 서문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역 국회의원은 부르지 않고 TK 출신 청와대 관계자 4명을 대동한 것을 두고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 박 대통령이 직접 전략공천을 할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있느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또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반대하는 친박계 김재원 의원(청와대 정무특보)까지 대구 출마설이 회자하면서 대구의 공기가 좋지 않다는 말도 들린다.
그런 와중에 대구에서는 12명 국회의원 중 2명을 남기고 모조리 물갈이될 것이란 말이 크게 돌면서 뒤숭숭하다. 친박계 3선의 서상기, 재선의 조원진 의원을 남기고 전부 바뀔 것이란 구체적인 이름까지 적시돼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물갈이론은 10명이 모조리 친박 일색 인사들로 전략공천될 것이란 소문과 다름없어 반감여론도 거세지고 있다고 한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지역구인 대구 동구에서는 “박 대통령을 배신한 국회의원은 물갈이해도 된다”는 쪽과 “유승민같은 인물을 우리도 키워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고 있다. 게다가 유 의원의 대항마로 꼽히는 이재만 전 동구청장에 대해서도 동구갑(류성걸)이든 동구을(유승민)이든 친박계가 안내(?)하는 곳으로 출마한다는 소문이 퍼져 지역여론이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TK 여론이 이런 까닭에 TK 정치권도 묘하게 나뉘어 있다. 안심번호를 활용한 여론조사가 현역에게 유리한 이유로 김 대표를 응원하는 쪽이 있고, 아무래도 ‘박근혜 정서’가 크니 친박계를 향하는 기류도 있다. 모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박 대통령 사진을 연이어 올리면서 구애에 나섰다. 반면 다른 의원은 의정보고서에 박 대통령 사진을 전부 빼고 업적으로만 승부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추석을 기점으로 TK 의원 일부가 따로 모여 향후 정국의 향배를 논의했다는 후문이다. 유승민 사태 이후 물갈이설, 청와대 차출설까지 돌면서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옥죄자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한다. 현 정부를 향한 TK의 충성여론이 어떻게 바뀌느냐, 혹은 유지되느냐가 관건이다.
텃밭 중의 텃밭이 움직일 때 ‘김의 전쟁’으로 불리는 김 대표 승부도 결판이 난다. 아무래도 TK를 무시해서는 총선도 대선도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