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씨를 심은 것 같은데 어느 날부터 불행이 밀어 닥쳤다. 이자를 많이 준다던 곳은 다단계 금융 사기였다. 상가분양 역시 속았다. 갑자기 은행대출이 안된다면서 잔금을 안내면 받은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몰수하겠다고 했다. 도의원에 출마한다고 돈을 꾸어간 집은 선거에서 떨어지고 거지신세가 됐다. 돈을 꾸어간 교회권사는 치매에 걸려 누구시냐고 되물었다. 어느새 가난이 닥쳐왔다. 강남의 아파트를 팔고 강북의 변두리 쪽방신세로 전락했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돈 조차 없었다. 앞으로 남은 세월 어떻게 살아갈지 막연한 신세가 됐다.
돈이 있어도 지킬 능력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있다고 무조건 움켜쥐어도 문제가 있다. 평생 먹지 않고 입지 않고 돈을 모은 영감을 보았다. 그에게 돈은 신이었다. 그 결과 노년에 수백억을 은행에 예금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항상 빈궁했다. 음식점을 가면 남들이 먹다 남긴 소주를 가져다 마셨다. 은행에서 공짜로 주는 켄터키 치킨과 굴비에 그는 감격했다.
돈을 움켜쥘 줄밖에 모르던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어깨를 잡아챘다. 고치기 불가능한 암에 걸렸다. 죽음 앞에서 돈은 의미가 없었다. 단 한 푼도 저승으로 가지고 갈 수 없었다. 갑자기 그는 배신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 돈을 전부 바다에 빠뜨려 버리거나 불태우고 싶었다. 그때 사회사업을 한다는 사람이 나타나 그를 아버지같이 모시겠다며 재단을 설립하자고 했다. 그는 가진 돈을 다 주어버렸다. 재단이 설립되고 엉뚱한 사람이 재단이사장으로 앉았다. 무늬만 재단이지 사회사업에는 관심 없는 탐욕스런 사람들의 모임이 됐다. 노인의 인생이었던 돈으로 사기꾼들은 호화로운 호텔 파티장에서 와인 잔을 부딪쳤다.
뒷골목 작은 법률사무소를 해오면서 실제로 본 풍경들이다. 가난에 젖어있던 사람들은 가난의 고통을 덜 느낀다. 그러나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빈궁의 나락으로 떨어지면 흔들리는 영혼을 어쩔 줄을 모른다. 사람마다 존재의미와 소명이 있다. 돈이 다가 아니다. 과수원을 하던 노인은 마지막까지 마음을 담은 사과 만들기에 진력했으면 어땠을까. 사기꾼 재단에 돈을 던져버린 할아버지도 진작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행복하지 않았을까. 돈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마지막까지 하는 게 보람인 풍토가 되었으면 좋겠다. 평생 글을 쓰거나 농사를 짓거나 아니면 작은 공방에서 물건을 만들거나 하면서 말이다. 보람은 물질적 정신적 가난을 밀쳐낼 수 있으니까.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