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있어 이 말은 ‘고품질’ ‘신뢰’ ‘기술력’ 그리고 ‘정직함’을 의미했다. 독일 기업은 절대 소비자들을 속이거나 기만하지 않으며, 항상 올바르고 정직하다는 인식 또한 강했다. 때문에 자동차, 화학제품, 기계장치 등 제조업 강국인 독일이 생산하는 제품은 무조건 믿을 수 있었으며, 이는 곧 독일이라는 국가 브랜드의 신뢰로 이어져 왔었다. 더욱이 ‘메이드 인 저머니’ 제품은 21세기 화두인 ‘친환경’을 대표하는 보증서와 다를 바 없었으며, 이런 까닭에 더 나아가서는 유럽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이자 자부심으로 인식되어 왔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폴크스바겐 공장에서 직원들이 퇴근하는 모습. 전문가들 사이에서 폴크스바겐그룹의 배출가스 조작 파문이 기업 하나에 그치지 않고 독일 자동차 산업 전체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독일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위기에 처했다. 바로 ‘폴크스바겐 스캔들’ 때문이다. 지난 9월 18일, 미 환경보호국(EPA)이 발표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폴크스바겐의 디젤 차량 모델 가운데 일부가 지난 수년간 배출가스량을 고의적으로 조작해왔으며, 이를 위해 불법 소프트웨어를 장착해 사용해왔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독일 브랜드를 믿고 자동차를 구입했던 소비자들은 충격을 넘어 배신감에 휩싸인 상태. 유례없는 리콜 사태와 소송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단순히 폴크스바겐이라는 한 기업의 위기가 아니라 독일 경제의 위기, 즉 ‘메이드 인 저머니’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우선 이번 사건의 핵심, 즉 폴크스바겐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부터 살펴보자. 문제는 배출가스 저감장치에 있었다.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과 달리 연소 시 건강과 환경에 치명적인 질소산화물을 대량 배출한다. 때문에 지금까지 디젤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최대한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줄이는 데 주력해왔다.
이런 점에서 그간 폴크스바겐은 소비자들에게 ‘클린 디젤’을 홍보해왔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는 모두 거짓말이었다. 미 환경보호국이 실시한 이번 검사 결과에 따르면 폴크스바겐 디젤 자동차가 배출하는 질소산화물의 양은 허용 기준치보다 무려 40배가량 더 많았다. 이런 속임수가 가능했던 것은 배출가스량을 조작하는 불법 소프트웨어 덕분이었다. 시험 주행 때는 배출가스 정화장치를 최대한 가동해 오염물질이 적게 배출되도록 하고, 평소 주행 때는 정화장치를 꺼 유해가스를 그대로 배출하는 식이었다.
현재 해당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리콜 차량은 전 세계 1100만 대(폴크스바겐 500만 대, 아우디 210만 대, 폴크스바겐 상용차 180만 대, 스코다 120만 대, 세아트 70만 대 등)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미국에서 리콜 명령을 받은 자동차는 2008~2015년 판매된 골프, 제타, 비틀, 파사트, 아우디 A3 등 약 48만 대다.
막대한 규모의 리콜이다 보니 벌금 액수 역시 천문학적이다. 미국에서만 180만 달러(약 20조 원)가 넘는 벌금이 부과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한 대당 4400만 원 꼴인 셈이다. 또한 도요타의 열 배 이상 되는 어마어마한 액수이기도 하다. 미국을 넘어 스위스와 네덜란드에서도 해당 차량의 판매가 금지되는 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는 상태. 주가 폭락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대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개인 차주들의 집단 소송도 제기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결국 마르틴 빈터코른 회장이 물러나는 등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은 쉬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스캔들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가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독일 기업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 두이스브루크-에센 대학의 페르디난드 두덴회퍼 교수는 “‘메이드 인 저머니’라는 말은 곧 품질과 신뢰를 의미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믿음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폴크스바겐 스캔들을 바라보는 독일인들의 시선은 외국 소비자들의 그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문제는 다른 기업도 아닌 폴크스바겐이 비리를 저질렀다는 데 있었다. 이유인즉슨 지금껏 폴크스바겐이라는 브랜드가 독일 국민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우선 이름부터가 그렇다. 1937년 나치 정부 시절 ‘국민차’를 만들고자 했던 히틀러의 주도 하에 설립된 ‘폴크스바겐’은 이름 자체가 바로 ‘국민(폭스) 차(바겐)’일 정도로 독일인들의 자부심이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후 골프, 비틀 등 폴크스바겐의 자동차들이 독일 경제를 재건하는 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기 때문에 폴크스바겐에 대한 독일인들의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규모 면에서도 ‘국민차’로 손색이 없긴 마찬가지다.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123억 달러(약 14조 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최근까지 자동차 생산량에 있어서는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브랜드 자문회사인 ‘인터브랜드’에 따르면 폭스바겐의 기업 가치는 100억 유로(약 13조 원) 정도며, 이는 독일 브랜드 가운데 5위에 속하는 것이다. 이는 폭스바겐 그룹이 아우디, 포르셰, 람보르기니, 부가티, 벤틀리, 스코다, 세아트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공룡 기업인 까닭이기도 하다.
폴크스바겐 공장 정문 앞에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한 회원이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에 항의하며 ‘더이상 거짓말은 안돼!’라고 적힌 포스터를 붙들고 서 있다. AP/연합뉴스
독일 일간지 <빌트>는 폴크스바겐을 가리켜 ‘독일 산업의 보석’이라고 묘사하면서 폴크스바겐의 성공신화가 이번 사건으로 무너지질 않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바람은 현재로선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태의 영향이 폴크스바겐에 그치지 않고 독일 자동차 산업 전체로 번질 수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현재 일자리 일곱 개 가운데 한 개는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자동차 산업과 연관이 있다”라고 말했다.
일자리 문제는 전 세계에서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독일 자동차가 폴크스바겐 그룹의 자동차란 점과도 관련이 있다. 폴크스바겐에 근무하는 근로자는 전 세계 60만 명가량이며, 부품회사 근로자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수백만 명에 달한다. 폴크스바겐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의 시민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폴크스바겐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며, 이런 까닭에 볼프스부르크는 현재 독일 내에서 1인당 급여가 가장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자동차 수출이 독일 경제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자동차 산업이야말로 독일 경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독일 자동차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2000억 유로(약 262조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수출에 의존하는 독일의 산업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번 스캔들이 왜 치명적인지 더 잘 알 수 있다. 독일은 수출품이 국내총생산(GDP)의 45%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규모 면에서는 전 세계 3위의 수출대국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주된 수출 품목은 다름 아닌 자동차다. 자동차 산업은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약 2.7%를 차지하고 있으며, 독일 수출의 20%가량은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이다. 그리고 매년 서유럽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절반이 독일 자동차이며, 이 가운데 1위는 폴크스바겐이다.
이와 관련, ING수석 경제학자인 카르스텐 브르제스키는 “갑자기 폴크스바겐이 그리스 위기보다 독일 경제에 더 큰 위협이 됐다”면서 “앞으로 몇 달 동안 북미에서 폴크스바겐 매출이 줄어들 경우, 폴크스바겐뿐만 아니라 독일 경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그는 “지금까지 그리스 사태, 중국발 증시 쇼크 등 어떤 악재에도 굳건히 버텼던 독일 경제가 위험에 처했다”면서 “아이러니한 것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위협이 찾아왔다는 사실”이라고 촌평했다.
그렇다면 과연 폴크스바겐은 이렇게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회복한다면 그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이 점에 있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전문가들은 한번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특히 자동차 산업의 경우가 그렇다고 말한다. 이유는 자동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등 심사숙고하는 경향이 강하고, 또 자동차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과거 급가속 페달의 결함으로 홍역을 앓았던 도요타나 시동키 불량으로 260만 대의 리콜을 단행했던 제너럴모터스(GM)의 경우와는 성격부터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1997년 ‘엘크 테스트(돌발상황대처 테스트)’에서 A클래스 신형 모델이 잘 뒤집어져 해당 모델을 리콜했던 벤츠나 1980년대 급발진 사고를 기록했던 아우디의 경우와도 다르다고 말한다.
이번 사건의 문제는 소비자들을 고의적으로 속여왔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능의 결함으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소비자들을 속여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미 국가공공이익연구협회의 에드 미르츠빈스키는 “GM은 결함이 있는 자동차를 팔았다. 하지만 폴크스바겐은 계획적으로 결함이 있는 자동차를 생산했다”라고 말했다.
반면 낙관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전문가들도 많다. ‘코메르츠방크’ 회장이자 경제학자인 외르크 크레머는 “독일의 자동차 산업이 한꺼번에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회사 하나 때문에 산업 전체가 영향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독일 경제장관인 지그마 가브리엘은 “폴크스바겐은 빠른 시간 안에 완벽하게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독일 제품은 좋은 품질을 상징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으며, 경제학자인 홀거 슈미딩은 “디젤 자동차의 생산과 수출이 급감한다고 해도 독일의 GDP는 0.2% 이상 하락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독일의 국가 이미지가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국가브랜드지수를 처음 도입한 사이먼 안홀트는 “이번 사태로 오히려 독일의 이미지는 실추되는 것이 아니라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지난 12년간 국가 이미지를 연구 조사해온 결과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국가 이미지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가령 도요타 스캔들을 겪은 후에도 일본이라는 국가 이미지는 실추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한 안홀트는 “독일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천천히 지금과 같은 국가적 명성을 쌓아왔다. 이렇게 견고하게 쌓아올린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다른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배출가스를 조작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라고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